아이가 책을 읽기 바란다면 우선적으로 책을 아주 잘~ 골라야 한다.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책은 널려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 어떤 책이 재밌고, 또 내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 어떤 책인지 알기란 어렵다. 그러니 자꾸 정체불명의 '추천도서목록''필독서 목록'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실제로 검색을 해서 인터넷에 떠도는 소위 초,중,고 필독서나 추천도서 목록들을 찾아보았다.
초등은 주로 학교에서 어떤 기준에 의해 만들었는지 모를 책 목록이 주류를 이루며, 중등은 교과 연계 도서, 고등은 생기부에 채워 넣을 책이나 수능연계 도서들이 주로 필독서로 올라와 있다.
그 목록들은 어떻게 하면 책을 읽고 아이들이 똑똑해질까, 아니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체로 어떤 기준과 맥락으로 작성되었는지도 모를 추천도서 목록이 대부분인데, 진짜 저런 책들을 추천하면 아이들이 읽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왜 아이들이 책을 멀리하고 어른이 되서도 책을 읽지 않는 지 자명해진다. 그야말로 대환장파티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 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필독서 목록이 일명 <서울대 추천도서>였다. 이 목록의 출처가 어디인지도 모른채 인터넷을 떠다니고, 퍼 나르는 사람마다 누구는 이걸 '서울대에서 추천했다' 또는 '서울대 지원자들이 많이 읽었다'하고, 또 어떤 누구는 '서울대생들이 가장 많이 읽었다'라고 하는 식이다
서울대가 이런 책들을 본교 학생들도 아니고, 전국의 고등학생들에게 추천할 가능성은 적다. 서울대가 이런 책 정도는 읽어야 지원이라도 해 볼 수는 자격이 된다고 했을까? 아니면 이 정도는 읽고 들어오라고 겁박하는 용도로 작성했단 말인가!
책 목록의 구성을 통해 추측컨대 이 목록은 사교육 시장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서울대를 가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생기부를 채울 '그럴듯한 포장지'로 딱이기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서울대 정도를 지원 할 기본 능력이 있다 손 치더라도 저 책 목록은 고등학생들이 스스로의 독해력으로 이해하며 읽기란 힘든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짧은 수능 지문을 읽어내서 만점을 맞는 일과 어떤 사상가와 작가의 책 한권을 온전히 이해하며 읽는 것은 너무도 다른 차원의 일이다. 저 책들로 생기부를 채우려면 사교육 선생님들의 해석과 도움이 필요하다.
'서울대가 권장하는 책'은 실제로 존재하기는 한다. 서울대학교 기초 교육원에 들어가면 서울대생들의 교양을 위해 작성해 놓은 100권의 목록이 있다. 한국문학 17권, 외국문학 31권, 동양사상 14권, 서양사상 27권, 과학기술 11권으로 5개 분야에 걸쳐있다. 궁금하면 한번 들어가서 확인만 해보시라 아이들에게 권하진 말고.
그렇다면 실제 서울대생들은 한해 동안 어떤 책을 주로 읽었을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은 저런 책쯤은 교양으로 읽지 않을까? 그리고 저 책을 읽고 진지하게 학생들끼리 지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을까? 그래도 '서울대 학생'들인데, 혹시 저 목록이 진짜 '서울대생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이지 않을까?
이것이 진짜 '서울대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목록이다. 20권 중에 절반이 넘는 책이 소설책이고, 소설책 중에 대부분이 고전이 아닌 최근의 베스트셀러들이며, 전체 책 중에 1위는 최근에 가장 핫했던 <<불편한 편의점>>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인터넷에 떠도는 '서울대 추천도서'와 겹치는 책은 <<사피엔스>>와 <<정의란 무엇인가>> 외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들이 주로 책을 읽는 가장 큰 목적은 '휴식으로서의 즐거움'이란 것이다.
그러니 초,중,고 아이들에게 교과와 연계되어 있는 책들을 권하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패션으로서의 독서를 권하는 것이 더욱 책 읽기와 멀어지게 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인 것이다. 기,승,전, 학습으로만 귀결되는 어른들의 마음과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아이들은 점점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매체를 선택할 게 너무도 뻔하다.
내게 책을 읽으러 온 한 아이가 읽던 책이 재밌었는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왜 우리 엄마는 이런 책을 사주지 않을까요?"
아이가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 지 눈치로 알 것 같았다. 평소에도 왜 역사나 과학 책은 읽지 않냐고 컴플레인을 하는 엄마였다. 왜 지금 단계에서 이야기 책을 읽히는 게 중요한 지 설명해도...믿지 않고 의심하기를 반복한다.
일주일 내내 온갖 학원을 다니느라 허덕이는 아이가 그나마 재밌게 책을 읽고 있는데도 '학습'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저 재밌게 읽기만 해도 독해력이 올라가고 모든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조언도 그 엄마에겐 늘 들리지 않는 메아리였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과 다르게 아이는 매번 즐겁게 책을 읽고 오고, 가져간 책을 잘 읽어올 뿐 아니라 학교 친구들에게 책 과제로 내준 책을 빌려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