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생애를 기준으로 보면 독서에서의 적기는 사실 따로 없다. 어린 시절 여러 이유로 책을 읽지 못했다면 성인이 되어 읽어도 무방하다. 독서는 시간이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마음의 문제다. 물론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진짜로 읽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난독증이 있거나, 독서 경험이 전무하면 책을 읽는데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방법이 있다. 난독증이 있다면 오디오북을 들으면 되고, 독서 경험이 없다면 자기가 책을 펼쳐봐서 읽을만하겠다고 생각되는 쉬운 책부터 읽으면 된다. 그러니 책은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책 읽는 습관을 성인이 아닌 어린 시절에 갖게 되면 여러 이점이 많기 때문에 어린 시절 독서를 강조하는 것이다. 사실 의무나 책임이 없는 그 시절에 책 읽고 공부하지 않는다면 언제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공부가 무엇인지 모르고 잘못된 방법으로 그것도 너무도 과하게 시키니 지겨워 나가떨어지는 것이지, 원래 학창 시절은 공부를 하는 게 맞다.
공부의 올바른 정의는 '내가 태어난 이 세상을 이해하고,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배워가는 과정이다.' 대학 입학, 좋은 일자리 찾기에 매몰되어 있는 한국식 공부는 너무도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그래서 학창 시절엔 공부에 손 놓다가 뒤늦게 이 공부의 올바른 정의를 알고는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진정한 공부를 하고 나서야 늦은 나이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리고 비로소 아~ 공부는 이런 것이었구나. '학교 다닐 때 이런 걸 배웠다면, 누군가 알려줬다면' 하고 아쉬워한다.
한국에서 초등5학년은 본격적인 학습을 시작하는 나이다. 영어학원과 자기가 원하는 예체능 학원만 다니던 한가한 아이들도 이 시기가 되면 본격적으로 '입시레이스'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다. 수학 학원이 추가되고, 요즘 국어가 어렵다는 소문에 논술이나 국어 학원을 다닌다. 그리고 집에서 풀 문제집들이 늘어난다. 수학은 기본개념은 기본이고 유형에 심화까지 해야 하고, 국어는 어휘와 독해 그리고 한자까지 해야 한다. 영어야 한국에서는 기본 사교육이니 별도로 말할 필요도 없지만 ,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문법을 끝내야 한다는 관행이 있어서 영어 문법 공부가 추가된다.
이쯤 되면 그동안 책을 읽던 아이들도 초등5학년이 되면 책을 읽지 않게 된다. 그런데 아이들을 가르친 오랜 경험으로 보아 온 초등5학년이나 6학년은 놀랍게도 지적인 성장이 가장 크게 일어나는 시기였다. 초등 5학년부터는 판단이나 사고 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해서 아이들의 추상적인 사고 능력이 늘어난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 온 아이들 경우에는 초등 5학년때부터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다. 사건 중심의 책을 주로 읽다가 이때부터는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의 책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많이 높아진다. 그래서 꾸준한 독서를 해온 아이들 경우에는 초등 6학년쯤이면 독서력이 성인 수준에 이르는 아이들도 있다. 그냥 재미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지적 호기심을 보이며 책에 담긴 의미에 관심을 둔다. 물론 초등시절 내내 책을 읽은 아이들 얘기다.
만약 유아기 독서를 놓치고 초등 4학년까지 독서라고는 수업 시간에 교과서 읽는 게 전부였던 아이라면 어떨까? 이런 아이들도 아이들 나름이긴 하다. 책은 읽지는 않았지만 부모가 소통이 잘되고, 여행도 자주 다니고 여러 경험들을 많이 한 아이들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읽기 때문에 글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사람은 살아온 시간에 비례해서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실제적 경험도 적은 데다 학습에만 몰두된 아이들의 경우에는 책은 또 다른 지루한 학습에 불과하기에 독서 지도하기 더 힘들다. 책이 학습이 아니라는 것부터 가르쳐야 하는 독서 유아기 상태인 것이다.
초등 5학년때는 이런 경험의 차이로 인해 아이들에 따라 기본 능력과 책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독서력 향상에 큰 차이를 보인다. 꾸준히 책을 읽어 온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간에 본격적으로 상당한 격차가 벌어지는 시기다. 하지만 이 시기를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교육 환경상 독서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다. 중등으로 올라가면 이제는 책 읽기와는 영영 이별하고 본격 '입시 예선 레이스'가 시작되고, 고등은 '입시를 치르는 본선'이 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디 초등5학년은 놓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아이 인생에서 가장 한가로운 시간, 그 어떤 의무나 책임 없이 책으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다. 그리고 이 시간을 책을 읽는 경험을 하고 올바르게 읽는 방법을 터득하면 곧 시작되는 '입시레이스'에 유리함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초등 5학년때 독서를 시작하면서 가장 유의할 것은 '책 선택'이다. 이미 머리가 굵은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힐 수도 없다. 그렇다고 아이 이해 수준에 맞는 책은 문자가 가득해서 부담스러워 포기한다. 그러니 책 선택이 독서 시작의 성패를 좌우한다. 사건 중심의 가볍고 재미있되, 읽기에 부담이 적은 책이어야 한다.
이럴 때는 에피소드형 책이 좋다. 전체적으로는 같은 주인공이 나오지만 책 한 권에 4-5개의 이야기가 단편적으로 나오는 책이 적합하다. 이런 책은 자연스럽게 아이가 두꺼운 책에 대한 거부감도 없으면서, 중간중간 쉬어 갈 여유도 있어 좋다. 하나의 이야기 끝나고 숨을 돌리고 다시 읽을 수 있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앞의 내용을 신경 쓰지 않고 매번 새롭게 읽을 수 있어 좋다.
그리고 이 시기에도 아이가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시작하면 좋다. 하지만 아이가 읽어주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책을 다 읽은 뒤 같이 대화를 해주는 게 좋다. 잘 읽었나 확인하는 대화가 아닌 아이가 어떤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는지 들어주는 게 목적이다.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어른에 대한 경험이 적다. 아이가 하는 시시컬렁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면 아이는 그 어른과의 대화를 즐거워한다. 그리고 할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 더 열심히 책을 읽을 것이다. 아이들 독서 지도에서는 책을 읽어주는 행위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아이들과의 대화라는 것을 잊지 말자. 가장 쉽고 효과적인 독후활동이란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만약 책을 꾸준히 읽고 있었던 아이라면 아이가 읽는 책 수준을 약간 올려보는 걸 추천한다. 이때도 역시 부모가 앞부분을 같이 읽어주거나 또는 할 수 있다면 챕터를 나누어 정기적으로 같이 읽고 대화를 나누는 것을 권한다. 혼자 꾸준히 책을 읽는 아이들도 자기의 일정 수준 이상은 읽지 않아서 독서력이 더 이상 향상되지 않고 머무는 경향이 있다. 읽다가 힘이 들거나 이해하기 어렵다면 당연히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책을 덮어버린다. 학습처럼 억지로 읽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니 책을 좋아하고 잘 읽는 아이들도 이럴 때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때 부모나 선생은 P.T 코치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자기 한계를 넘게 하되, 포기하지 않게 약간의 도움과 응원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