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릴적엔 나라가 한창 경제 성장 중이어서 어른들은 성실하게 노력만 하면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굳게 믿었어. 전쟁후 30년이 지난 80년대는 절대적 가난을 벗어나는 것은 물론 88올림픽을 열어서 '한강의 기적'을 전 세계에 선보여 놀라게 했어. 여기까지는 너희들도 교과서를 통해서 배운 익숙한 내용일 거야.
근데 조금 더 생각해보렴. 이건 인류역사 어디에도 없었던 일이야. 이런 일은 앞으로도 없을거라 단언할수 있을만큼 엄청난 일이란다. 고작 한세대 전에는 온 국민이 삼시세끼를 걱정해야하는 지경이었는데, 한 세대만에 완전 다른 나라가 되었다는 이야기. 한국 전쟁때 한국에 와서 선교활동과 구호 활동을 하신 프랑스 신부님은 '유퀴즈'라는 방송에서 전쟁 후 한국은 '비참함'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는 거야. 그 신부님은 교황청에서 자신에게 한국으로 가라고 했을때 무척 기쁘셨다고 해. 진짜 신의 사랑이 필요한 곳으로 자신을 보내주신 것에 대해 감사했대. 참 놀라운 경지의 존경스러울따름인 마음이신것 같다.
그 신부님과 같은 조건없는 사랑과 도움과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부지런함이 만든 기적이 아니겠니. 그러니 우린 전후 윗세대에 정말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해. 우리는 역사에서 큰 업적이나 공을 세운 어떤 한 인물을 기억하기 쉽지만 사실 우리가 진짜 기억해야 할 사람들은 정작 따로 있어. 수많은 외침때마다 죽창을 들고 목숨걸고 나라를 지키다죽어간 수많은 무명씨들. 그리고 전쟁 후 처참했던 나라를 지금의 한국으로 만든 그 시절을 살아낸 모든 사람들을우리는 더 기억해야 한단다.
그들의 선의가 꼭 나라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닐었지라도 말이야. 자신의 가족을 위해, 자신의 자식을 위해 또는 자신의 배고픈 서러움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는 그 자체로 우리는 그 분들에게 존경심을 갖을 필요가 있어. 어찌 되었든 그들의 처절한 노력으로 우리가 지금 안전하게 편안히 살 수 있는 거니까.
엄마가 어릴적인 80년대 중반에는 공무원 초봉 월급이 30-40만원, 대기업 사원은 50-60만원 정도 했다고 해. 경제 성장이 워낙 가파르게 상승하던 때라 80대 초반과 80대 후반의 경제 지표나 물가가 많이 다르더라. 그래도 평균적으로 그 시대에는 저축을 하면 은행에서 이자를 10%까지 주던 시대였고, 3년짜리 정기적금은 25% 이자를 주던 시대였어.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돈을 보며 흐뭇해하던 할머니의 얼굴이 생각이 나거든. 어린 내 눈에 어른들은 지금처럼 많이 누리고 살지는 못했어도 모두들 희망차 보였어.
엄마는 아직 초등학생이었지만 나이차가 많이 나는 이모들은 그때 대학을 다니거나 직장에 다녔어. 그 시절은 지금처럼 꼭 '인서울'이 아니어도 괜찮았어. 대학의 서열화가 지금처럼 기형적으로 심하지 않았어. 그때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취업이 잘 되었으니 대학만 나와도, 그 중에 이름있는 대학을 나오면 직장을 골라가던 시절이었어. 큰 이모 같은 경우에도 서울의 한 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취직을 했으니까. 그때는 공부를 잘해도 집안 형편이 좋지 않으면 그냥 고등학교 진학을 끝으로 바로 취업을 하던 시절이었지. 그래도 괜찮던 시절이었어.
인생의 절반쯤 살아가며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에서는 그게 무척 중요한 것 같아. 어제보다 오늘이, 그리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을거라는 희망. 엄마 어릴적엔 그런 희망이 넘치던, 지금과는 너무도 달랐던 시대였어. 정말 성실하게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는 그런 시대처럼 정말 그렇게 보였으니까. '근면, 성실, 노력'은 종교와 같았다고 보면 돼. 그 신념이 나라를 개인을 구원했으니까.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그런 신념들을 열심히 학습했지. 그런데 좀 살아보니 성실함과 노력이 언제나 100% 통하지 않더라. 그 보다 더 디테일하게 삶의 방향이나 올바른 방법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시절 3대 가치를 실천하면 얻는게 많아지는 것은 지금도 통하는 삶의 기본인 것은 분명한 것 같아.
구국 영웅 이순신 장군 - 출처: http://bit.ly/1yDuidd
요즘의 만원의 가치는 엄마 어릴적 1000원의 가치랑 비슷했던 것 같아. 아니 1000원이면 짜장면 2그릇을 먹을 수 있었던 걸 보면 요즘의 만원의 가치는 1000원만 못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엄마는 딱 만원을 가지고 저녁 밥상을 차려볼까해. 콩나물 무침, 두부부침, 오뎅볶음, 계란찜까지. 생각보다 괜찮은 만원짜리 밥상이 차려질 것 같네. 하지만 쌀은 별도로 사지 않는데다, 여기에 엄마의 노동력을 최저임금으로 책정한다고 가정하면 장보고 재료 손질하고 조리하고 차리기까지 꼬박 2시간은 걸리니, 원칙적으로 만원짜리 밥상은 요즘 시대에는 불가능하지.
요즘 장을 보거나 외식을 하거나 가끔 캠핑을 갈때면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에 저절로 꼰대의 언어가 터져나온단다. "나때는 아이스크림이 50원, 짜장면이 500원이었는데...." 그러면 너희들은 "엥? 진짜? 50원이었다고?" 똑 같이 원이라는 단위를 쓰기는 하지만 지금의 돈과 그때의 돈은 많이 다른데도 너희들은 엄청 신기해하더라. 여튼 그때의 500원은 이순신 장군이 모델이었고 지폐였어. 1982년 이후에는 500원짜리 동전이 발행되면서 지폐와 동전이 같이 쓰였어. 여튼 엄마 어릴 적에는 500원이 꽤 비중있게 쓰이던 시절이었지.
아이스크림이 50원, 라면 한봉지가100원, 새우깡이 100원, 종이 인형과 종이 딱지도 100원씩이었으니 500원이면 이것저것 한참 골라 담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신이 났을지 짐작이 가지. 엄마는 따로 용돈을 받은 기억이 없어. 그때 그때 필요한 돈을 요구하면 주긴했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치 못한걸 어린 나도 뻔히 아니까 과자 사먹겠다고 돈을 달래진 못했어. 그러다 설날에 큰 목돈이 한번씩 들어왔는데 그때 세배돈으로 500원, 1000원씩 받았는데 다 모으면 꽤 큰 돈이 되었어. 세뱃돈 받는 날이면 요즘 너희들이 하는 소리로 '기분이 째져~' 500원짜리 지폐 한장으로도 살게 너무도 풍족하던 시절이었어.
얘들아~ 그나저나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서 걱정이다. 진짜 요즘은 모든 게 너~무도 비싸. 가격이 오르지 않은 것은 머리 위 태양과 쉼쉬는 공기밖에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엄마는 요즘 여름이와의 산책 시간이 특히 더 감사해. 아직까지는 지구에서 누리는 유일한 공짜니까.
아! 그리고 너희가 누릴 공공짜가 세상에 하나 더 있었네. '엄마의 사랑'도 너희가 사는 동안 누릴 '공짜'란걸 언제나 기억하렴. 모든 것이 '시장'에서 거래의 대상이 되는 요즘 여전히 너희에게는 귀한 공짜가 남아있다는 것을 든든한 위로 삼아 오늘도 근면 성실한 하루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