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릴적엔 눈이 아주 많이 내려 발이 푹푹 빠져 걷기도 힘든 그런 날이어도 휴교를 하는 일은 없었어. 어렸던 엄마의 무릎까지 쌓인 눈은 신발 속으로 들어가 학교에 도착할때면 양말은 다 젖어 있었어. 그래도 걱정이 하나도 되지 않았던 것이, 그때는 석탄 난로를 때던 시절이었는데 선생님은 아이들이 오기전에 미리 불을 피워놓으셨어. 그래서 교실문을 열자마자 코끝이 빨개진 어린 우리를 맞이했던 것은 따뜻한 공기였고 , 양말이 젖은 아이들은 서둘러 난로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 젖은 발을 난로 가까이 대고 양말이 뽀송해질때까지 말렸지.
엄마 기억에 우리 학교는 난로에 주로 조개탄을 이용했던 것 같아. 석탄 가루를 응축시켜서 조개 모양으로 만들어서 조개탄이라고 부른다는 그것을 사용했고, 양동이에 한 가득 담아다 놓고 중간중간 선생님이 불이 꺼지지 않게 넣었지. 지금이야 갓 지은 따뜻한 밥과 사실사철 신선한 재료로 만든 반찬이 급식으로 제공되지만 그때는 모두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던 시절이었다고 했잖아.
출처: 소년중앙
겨울 철에는 아이들이 식은 찬밥을 먹게 되니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도시락통을 난로에 올려 놓게 했거든. 그리고는 점심 시간이 될 때까지 선생님은 수시로 도시락의 위치를 위아래로 돌려 놓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셨어. 아이들이 골고루 따뜻한 밥을 먹게 하시려고 말이야. 점심 시간이 지난 뒤에는 선생님은 도시락 대신에 양은 물주전자를 올려 놓아서 가습기 역할을 해주었지. 어떤 선생님은 보리차를 끓여서 온 교실에 구수한 냄새를 풍겨 기분이 아주 좋기도 했어. 끓인 보리차는 아이들도 주고, 선생님도 수업 중간에 마시기도 하셨지. 지금의 학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뭔가 뭉쿨한 사제간의 정이 있던 시절이었어.
아이들 중에는 최신식 보온 밥통에 싸오기도 했는데, 플라스틱 도시락에 밥을 싸왔던 엄마는 최신식 보온 도시락통을 가져온 애들도 부럽고, 양은 도시락에 밥을 싸오는 애들도 부러웠어. 보온 도시락은 따뜻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보다는 그럴싸해보여서 갖고 싶었던 거야. 사실 보온 밥통에 싸온 친구 밥을 먹어봤는데, 밥맛은 그닥 맛있지 않았거든. 그래서 엄마는 보온 도시락보다는 양은 도시락을 난로 위에 올려 데워 먹는 밥 맛이 더 좋아 할머니게에 양은 도시락에 밥을 싸달라고 졸랐지. 집에는 내가 쓸만한 양은 도시락은 없었고, 예전에 오빠가 쓰던 아주 커다란 양은 도시락이 있었어. 그런데 거기다 밥을 싸왔다가는 놀림거리가 될 게 뻔했지. 어릴때부터 빤한 가정 형편을 알고 있었던 터라 갖고 싶은 것을 사달라도 조른 기억이 없는 걸 보니, 그냥 그때도 새 양은 도시락을 사달라도 조르지 않고 포기했던 게 분명해. 그리고 그냥 괜찮은척 겨울에 플라스틱 도시락에 담긴 찬밥을 먹었던 약간의 서러운 기억이 있네.
저 난로의 화력은 굉장히 좋아서 난로 가까이 앉은 아이들은 두꺼운 겉 옷을 벗지 않으면 얼굴이 벌개져 땀을 흘려야 했고, 점심 시간 쯤되면 아이들 전체가 티셔츠만 입은 채 수업을 했던 기억이 나. 그리고 점심시간쯤 되면 밖과의 온도차로 겨울철 교실창문은 습기가 차서 뿌옇게 되어 밖이 보이지 않아서 밖을 보려면 소매로 쓱쓱 창문을 닦아내야 했지. 신기한건 저 뜨거운 난로가 교실 한 복판에 있는데도 어느 누구도 데이거나 난로로 인해 큰 사고가 난적이 한번도 없다는 거야. 옛날이나 지금이나 쉬는 시간에 난장판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말이지. 우리는 선생님이 딱히 주의를 주지 않아도 알아서 조심했던 거야. 가끔 난로에 스쳐 머리가 그슬리거나 옷이 눌려붙거나 하는 일들을 보고서 스스로 조심하는 법을 터득했던 거지.
요즘 너희들이 다니는 학교를 보면 안전을 무척이나 강조해서 그 어떤 조그만 위험도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 같아. 그래서 너희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긴 했더라만. 글쎄....엄마는 그것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서 말이야.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모든 위험을 치워버리는 것은 오히려 너희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배우는 기회를 오히려 뺏는 것이 아닌가 싶다.
칼이 위험하다고 칼을 숨기고 치우기보다는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게 맞고, 혹시 다치더라도 다음번에는 스스로 더 조심할테니 그것 나름대로 좋은 교육이라고 엄마는 늘 생각하거든. 아무리 어려도 인간에게는 스스로 위험을 피할 줄 아는 생존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는 편이거든. 그러니 안전하게만 크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너희들에게도 생명을 위협하는 행동이외에는 뭐든 다 해보라고 말하곤 하잖아. 어리고 생생한데 넘어지고 다치는게 뭔 대수인가 싶다. 성장에는 늘 고생이 따라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싶어.
참! 한번은 그런적이 있었어. 어떤 날도 눈이 많이 내려 양말이 모두 젖어 온 아이가 있었어. 그 아이 집은 또 유독 멀어서 초등학생 걸음으로 1시간 거리를 늘 걸어다니는 아이였어. 그러다보니 유독 양말이 홀딱 젖었고, 발은 꽁꽁 얼어 학교에 도착했지. 그 아이는 의자를 난로 가까이 놓고 앉아서 한발씩 양말을 말리기 시작했어. 그리고 난로 주변을 둘러싼 다른 아이들과 신나게 수다를 떨었어. 그런데 한창 수다를 떨던 어떤 아이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거야. 그 말에 아이들의 시선은 모두 양말을 말리던 아이의 발에 쏠렸고, 그 순간 아이들은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어. 정말 신기하게도 양말의 발바닥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맨 발바닥이 드러나 있었는데, 다행히 그 아이의 발바닥은 전혀 데이지 않았고 말짱했어. 신기하지? 정신줄 놓고 수다를 떠는 와중에도 자기의 안전거리를 기가 막히게 유지하는 본능적인 보호 능력이라니!
굴러가는 나뭇잎만 봐도 웃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얼마나 우스운 일이었겠어. 양말의 바닥만 사라진 그 아이의 발이, 그리고 그 발을 어리둥절 쳐다보았던 그 아이의 표정이, 또 일제히 그것을 보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던 겨울날 따뜻한 교실안의 풍경이 또렷해. 30년도 넘은 기억인데 참으로 생생한 걸 보면, 그 작은 소동이 아마도 꽤 행복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