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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Sep 27. 2023

2.  똥봉투에 똥 담기


엄마 어릴 적에는 매년 학교에서 손바닥만 한 작은 종이봉투를 나누어주었어. 그 안에는 얇은 반투명 비닐이 들어있었는데 그게 바로 일명 '똥봉투'라는 거야. 너희는 이름만 들어도 비위가 상하고 그게 뭔가 감도 안 올 거야. 그때는 위생상태가 지금과 같지 않았는지 학교에서 매년 기생충 검사를 했던 것 같아. 아이들은 그 봉투를 받아가서 다른 곳에는 그것을 묻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작은 비닐 안에 자신의 똥을 담아 선생님께 제출해야 해. 그러면 선생님은 그것들을 수거해서 어딘가로 보내 검사를 하는 것 같았어. 몇 주가 지나서 선생님은 몇몇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 앞으로 나오게 하고는 약 몇 알과 물을 건네며 그 자리에서 그걸 먹게 했지. 대놓고 키득거리는 많은 아이들 앞으로 불려 나간 '선택받은 아이들'은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수치심과 함께 알약을 삼켜야 했어.


몇 학년 때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해도 어김없이 그 연례행사가 돌아왔어. 엄마도 집에 가서 화장실 한편에 신문지를 깔고 제출할 물질을 추출했지. 그리고는 성냥개비로 아주 작게 그것을 떠서 반투명 비닐에 담았지. 혹시 냄새가 날까 봐 작은 종이봉투 입구는 풀로 바로 봉인을 해버렸어. 매년해도 하기 싫고 적응할 수 없는 일이였어.

똥봉투의 정식명칭은 '채변봉투'


그런데 왜 꼭 안 해오는 아이들이 있잖아.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가져온 똥봉투를 보고 나서야 기억을 해내곤  발을 동동 구르지. 그날 안내면 선생님은 꼭 당장 화장실 가서 해오라고 명령하시거든. 그러니 그때부터 아이들은 똥구걸을 하기 시작해. 자기 좀 나눠달라는 거야. 그게 안 통하면 마음이 급한 재기 발랄한 녀석들은 밖으로 일단 나가서 학교 숙직실에서 키우는 개똥을 퍼 담는 아이도 있었어. 그러면 어김없이 기생충이 인간의 것이 아닌 숫자가 나오고 선생님에게 등짝을 후려 맞고는 알약을 삼켜야 했지.


그날도 어김없이 똥봉투를 해오지 않는 아이들 서넛은 발을 동동 구르며 똥구걸에 나섰지만 어느 누구도 똥봉투를 다시 열어 자선을 베푸는 아이는 없었어. 그런데 그런 아이들 앞에 구세주가 나타났어. 말수는 없지만 엉뚱하기로 유명한 아이였는데, 발을 동동 구르던 아이들이 말수 없는 녀석 앞에서 똥구걸을 해오자 갑자기 책상 위에 검은 비닐봉지를 올려놓는 거야. 아이들 시선은 모두 그쪽으로 쏠렸어. 말수 없는 녀석은 봉투를 열었고 둥글게 만 신문지를 꺼냈어. 그리고 잠시 후 교실은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동시에 어떤 익숙한 것의 냄새로 진동하기 시작했지. 토악질을 하면서 교실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도 있었어. 하지만 녀석 앞에는 황금을 보듯 그것을 쳐다보는 녀석들이 있었고,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가는 나뭇가지로 일제히 그것을 자신들의 투명비닐로 옮겨 담기 시작했지. 이어 비명소리를 듣고 선생님이 달려 오셨고, 말수 없는 녀석은 죽게 혼이 났지. 조금만 떠오라고 했지 신문지에 이렇게 많이 싸 오라고 했냐면서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셨어. 사실 녀석은 어제 나눠준 똥봉투를 잃어버렸던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똥을 통째로 싸 온 거지. 숙제였으니까.


그렇게 2-3주가 지났을 거야. 선생님은 손에 서류 한 장과 한 손에는 약을 한가득 들고 오셨어. 그리고는 올해는 왜 이렇게 기생충 있는 녀석들이 많냐며 이름을 호명하셨지. 예상이 되지? 그래 그 똥을 통째로 싸 온 녀석을 비롯해 그 녀석의 똥을 퍼 담았던 녀석들이 모조리 불려 나갔어. 그리고 녀석들은 수치심과 함께 알약을 삼켜야 했고, 다른 아이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켜야 했어. 아! 자기 집 개똥을 퍼 담아 온 아이는 그 해 기생충 최고 기록을 세우면서 영광의 박수를 받았고.


나 때는 말이야~  아이들 수치심이 문제가 아니었어. 그때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시절이었지. 뱃속의 기생충을 잡아 족치는겠다는 어른들의 선의가 아이들의 자존심보다 우선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지금 같으면 '아동 인권침해'라고 난리 난리를 쳤겠지. 어느 시절의 방식이 더 옳고 그른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지금은 이게 맞고, 그때는 그게 맞았던 시절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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