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가 열여섯, **이가 열네살이구나. 너희가 큰 만큼 엄마는 나이를 먹었지. 아직도 엄마 마음 속에 미처 다 자라지 못하고 그때 그 시절에 멈춰 서 있는 어린 나가 있는데, 엄마는 어느덧 엄마가 되어 어쩌다 어른으로 살고 있지. 이런 불균형이 어떨땐 참으로 불편해. 너희들 앞에서는 내가 좀 카리스마가 있는 엄마라서 힘들때 힘들다고 어리광부리고 투덜대는 일이 상상하기도 두려운 일이거든. 그래서 어른인척꽤나 애써온 시간들이었어.
사춘기 터널을 지나고 있는 너희와 지금 꽤나 평화롭게 지내는 비결이 그 애써온 시간들 덕분이란 생각이 요즘 많이 들어뿌듯하기도해. 사춘기가 되면 어떻다더라하는 구전설화들이 엄마들 사이에서는 많이 내려오던 터라 엄마도 꽤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사춘기에 돌입한 너희를 맞이했거든. 하지만 우려와 달리 지금 우리는 정말 꽤나 평화롭다.
전해오는 부모와 사춘기 자녀 사이의 다양한 갈등은 우리에겐 찾아 볼 수 없지. 대신 여전히 엉겨붙어 유트브나 넥플릭스를 보고 낄낄거리고, 같은 음악을 듣고 따라부르다가 확실히 우리 유전자엔 음악적 재능은 전혀 없음을 확인하고는 웃지. 같은 책을 읽고 각자의 생각들을 이야기도 하고. 우리의 반려견 여름이와 캠핑을 가서 우리가 사는 동네와는 다른 신선한 공기를 즐기고, 요즘은 모두가 포커에 빠져 이러다 가족 도박꾼이 되는건 아닐까 하고 우리끼리만 우스운 농담을 하니까 말이야.
너희와 이런 평화로운 시간이 꿈만같으면서도 엄마는 이런 우리의 풍경들이 낯설어. 엄마는 나의 부모와 이런 시간을 보냈던 추억이 내 기억의 방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야. 고백컨대 너희와 하는 모든 경험이 엄마는 모두 다 처음이란다. 그래서 엄마는 너희를 키우면서 많은 순간 기쁘기도 했지만 시시때때 슬펐어. 가여운 내 어린시절이 떠올라서. 이해받지 못했던 어린 나를 대신해서 화가났지. 때때로 올라오는 과거의 분노를 누르기 위해 나의 과거와 맞서 싸워야 했어.
얘들아~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일은 '자기 유년을 복기'하는 일과 같단다. 어쩔 수없이 그렇게 돼. 그러는 과정에서 자기 부모의 수고와 사랑을 더 이해하고 부모에게 더 잘하는 효자효녀가 되기도 하지. 하지만 엄마는 아니였어. 너희들을 키우면서 엄마는 매일 나의 부모에게 화가 났단다. '난 그때 혼나지 말았어야 했어' '난 그때 보호받았어야 했어' '난 그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칭찬받았어야했어' '난 그때 이런 관심을 받았어야 했어''난 사랑받지 못했었던 아이였구나' 이런 생각들로 너무도 괴롭고 또한 슬펐단다.
결정적으로 나의 부모는 그때 그러지말았어야했어
그래서 엄마는 결심했던 거야. '좋은 엄마가 되리라!' 꽤나 비장했지. 어찌나 힘을 주고 살었던지 지금도 그 힘이 잘 빠지지가 않아. 어쩌면 그게 엄마 자신이 되었는지 몰라. 너희 나이만큼 시간동안 그렇게 살아서 말이야. 그래서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의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이나 생각을 스스로 하게되면 잠이 오질 않으니 말이야.
하지만 요즘 엄마는 슬슬 비장함에서 벗어나 가볍고 유괘한 엄마가 되려고 해. 그게 진짜 좋은 엄마라는 걸 이제서 알았거든. 슬프고 아픈 기억들을 갑옷 삼아 비장한 장수가 되어 산 덕분에 너희에게는 든든한 엄마가 되어주긴 했던 것 같은데, 정작 나 자신은 행복하지 못했어. 늘 전쟁터에서 사는 기분으로 너희들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너희와 함께 유쾌한 발걸음으로 삶을 살려고 해. 이제는 엄마가 비장하게 너희들을 지키지 않아도 의젓한 어른으로 잘 성장하고 있으니 그 무거운 갑옷 좀 벗어도 될 것 같아.
하지만 엄마를 여전히 무겁게하는 그 비장함이 유년의 슬픈 기억들때문에 생긴것 같아서 다른 기억들을 찾아봤어. 내 유년에도 분명 아름답고 유쾌한 장면들이 기억의 방 어딘가엔 저장되어 있을거라고.진짜 있더라 다행히. 그리고 생각보다 꽤 많이 있었어. 구석에 있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먼지를 툭툭 털어냈더니 더 선명해졌고, 들여다보고는 혼자 키득키득 웃었더랬지.그리고 작은 위로가 되었지.
그래도 슬픈일만 있었던 건 아니였어.
그래도 슬픈일만 있었던 건 아니였어.
그래도 슬픈일만 있었던 건 아니였어.
근데 혼자 웃기는 아깝더라.그래도 슬픈일만 있었던 건 아니였어.
그렇게 들여다보면서 웃다보니 혼자 웃긴 조금 아깝더라.그래서 이제부터 엄마는 너희에게 그 이야기들을 조금씩 해주려고 해. 같이 웃자.너희들의 어린 시절과 엄마의 어린시절은 여러면에서 많이 다르단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너희와 달리 엄마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 남매뿐인 너희들과 달리 엄마는 형제가 다섯이나 되었지. 그래서 듣기에 더 신기한 일이 많을지도.
지금부터 엄마는 슬프고 아픈 기억에 눌려 가려졌던 유쾌하고 즐거었던 기억을 꺼내서 유년에 대한 깊은 오해를 풀어볼까 해. 그래서 과거와 화해하고 유령같은 슬픈 어린시절을 이젠 그만 떠나보내볼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