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에 난 디스크 파열로 2주간은 꼼짝도 못 하고 누워있어야 했었다. 주로 앉아서 수업을 하고 움직임이 매우 적은 생활 습관 탓에 터질 것이 터졌던 것이다. 의사가 처방해 준 여섯 알의 약을 먹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어도 통증이 몰려왔다. 그 2주 동안 누워지내며 허리 통증과 무료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 준 것이 넥플릭스에서 뒤늦게 만난 어떤 드라마 덕분이다. (책선생이라고 늘 책만 보지는 않는다. 더구나 극심한 통증을 느낄 때는 활자가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내용이야 사실 뻔했다. 뚜렷한 선과 악의 대결에서 선이 끝끝내 승리한다는 이야기. 하지만 뻔한 주제 전달에도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신선한 배경 설정과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조합이 아주 좋은 이 드라마를 연속으로 몰아 보았다. 허리통증은 잊은 채 눈이 벌게져서는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한편에서 끝내지 못하고 연이어 보았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마친 그 드라마는 다행히 시즌2도 제작되었고 올여름에 방송되었다. 드라마가 시작하는 시간에 알람을 맞추고 본방을 보겠다고 오랜만에 스마트 폰이 아닌 텔레비전 앞에 앉으니 어색했다.
드디어 시즌2의 1화 시작......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올 초 나를 버티게 해 준 감사함이 아니었더라면 1화도 끝까지 보지 않고 꺼버렸을 것이다. 시즌1의 신선함은 내용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개성적인 인물들은 다 잔뜩 힘만 준채 전형적으로 변해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갑자기 드라마가 왜 이렇게 되었지? 드라마 기사 정보를 찾아보니 작가가 교체되었단다. 어쩐지....
보통 기획한 드라마나 영화가 매우 흥행을 하면 시즌2가 제작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시즌2의 성공은 생각보다 어렵다. 시즌1의 명성으로 쪽박은 안 차도 작품성이나 흥행성이 시즌1만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더 허다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즌1에서 시작해서 주인공들과 시청자들이 같이 나이를 먹는 드라마는 더 귀하다. 그러니 아직도 사람들은 1980.10.21. ~ 2002.12.29까지 1088부작으로 종영한 전원일기를 이야기한다. 전례 없는 드라마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미국의 드라마는 시즌제가 일반적이며 매해 시즌1씩 만들어져 5년 8년 10년을 방영하기도 한다. 영화도 그 유명한 배우 톰 크루즈의 '미션임파서블 1(1996년)'을 시작으로 올해 7편이 나오면서 27년간 사랑받는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사랑받고 계속 만들어지는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책을 창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데 있다. 그래서 창작자나 제작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어쩌다 운명처럼 만나는 이런 잘된 작품이 나오게 되면 그 캐릭터와 내용을 살려 계속 창작물을 만드는 게 이득이다. 캐릭터들은 성숙해지고 내용은 깊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보게 되는 독자나 시청자들은 친숙한 드라마 캐릭터들을 정말 사랑하게 된다.
이렇듯 어떤 책이 단행본을 시작으로 연속된 이야기를 출간한다는 것의 의미는 재밌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시리즈를 기획하고 만들어진 책들도 있지만 이런 책들은 전집의 성격을 띠고 낱권 구매가 힘들다. 엄밀히 말해 전집이다. 하지만 단행본에서 출발해서 여러 권의 시리즈물로 구성된 책은 낱권 구매도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첫 번째 단행본이 재밌어서 많이 팔리고 그래서 연속된 이야기가 출간되는 식이다. 그렇게 시리즈물은 명작으로 남는 경우가 종종 있다.
초기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가 인기를 얻어서 시리즈가 된 책들은 한 권 한 권 만들어지는 공이 다르므로 내용도 알차고 아이들도 금방 눈치채는 어설픈 출판사 기획의도 따위가 없다. 순수 작가 개인 창작물로 개성 있으며 그래서 대체로 재미를 보장한다.
말했듯이 이런 시리즈물은 매우 귀하기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에 읽히면 더욱 좋다. 나이와 능력을 묻지 않고 언제 어느 때 읽어도 재밌는 책을 아무 때나 읽히면 안 된다. 좀 아껴 읽히길 권한다. 왜? 이런 책은 귀하기 때문이다. 이런 책은 오랜 시간 책 선생 노릇을 해온 나 역시 까다롭게 고르면 10종, 좀 너그럽게 잡아도 20종이 되지 않는다. 귀하신 몸이니 귀하게 읽어야 한다.
이런 재밌고 또 귀한 이 시리즈로 구성된 책은 독서 호흡이 아주 짧은 아이들이 독서 호흡을 길게 늘이는 단계에서 읽히면 좋다. 또는 책이라고는 만화책만 보거나 미디어에 너무 많은 노출이 되어 있는 아이에게 책을 좀 읽도록 하는 동기부여용으로 활용하는 걸 추천한다.
1권만 잘 읽어두면 배경과 주인공은 같고 이야기는 조금씩 계속 변주된다. 그래서 아이들 어떤 인기 있는 책 시리즈는 매권 같은 주인공의 익숙함으로 새 책을 처음 읽었을 때만큼의 집중력은 필요치 않고 내용의 친근함으로 쉽게 읽히며, 또한 매권 다른 사건으로 읽는 입장에서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떤 책을 권해야 할지 책 선택에 고민이 많다면 일단은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시작하거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둘 다 재밌어서 아이들이 많이 읽고, 서점에서 많이 팔린다는 증거다. 물론 한국 아이들의 독서력 수준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라 베스트셀러, 시리즈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어떤 것은 어른들이 보기에 일정 수준을 보장하지 못하는 책도 있다. 이럴 때는 그림보다 글이 많고 만화 형식에 가깝지 않은 순수 문학에 가까운 책을 고르기를 권한다. 아이가 이제껏 책을 아예 읽지 않았거나 관심이 전혀 없는 아이라면 글보다는 그림이 많고, 책의 내용은 무겁지 않고 최대한 가벼운 것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시리즈로 구성된 책은 빌리기보다는 구매하는 것을 권한다. 책이 인기가 있다 보니 대출되어 있는 경우도 많고, 각자 읽는 순서가 달라서 내가 원하는 순서의 책이 없을 가능성이 많다. 책은 한번 열정이 타 올랐을 때 연이어 읽는 것이 깊은 쾌감을 주고 , 그 쾌감을 다시 맛보기 위해 다른 책을 연이어 읽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어떤 책을 재밌어하고 다음 권을 사달라고 하면 사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책을 사달라고 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게 책 읽는 아이를 만드는 아주 좋은 신호임을 농치면 안 된다. 내 것이 되어야 더 애정이 생긴다.
만약 아이의 그 신호를 센스 있게 알아차렸다면 모든 시리즈를 한꺼번에 사지는 말아야 한다. 한 권을 다 읽으면 같이 서점에 가서 다음 이야기를 한 권씩, 한 권씩 사면 좋겠다. 한꺼번에 사면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현재 읽고 있는 이야기를 속독을 하거나 흟어 읽을 가능성이 높다. 재밌는 책은 한 권 한 권을 아껴 읽으며 책을 음미해야 더 재밌는 법이다. 그래야 구체적인 상상의 집을 짓을 수 있고, 책 속의 어휘도 내 것이 된다. 무엇이든 흔하면 귀한 줄 모른다.
이런 귀하신 시리즈 책은 초콜릿과 같다.
이런 책을 만났을 때는 강한 동기부여가 필요하거나, 독서 단계를 한 단계 높이거나 책 읽기 슬럼프가 왔을 때 읽도록 하면 좋다. 계속 강조하지만 시리즈 물보다 더 재밌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초콜릿 같은 강한 단맛은 반드시 식사와 과일 뒤에 먹어야 한다. 그래야 과일도 초콜릿도 모두 맛있게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