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바른 방향 설정

by 책선생

세상에 태어난 한 아이는 두 사람이 만나 만든 씨앗이다. 이 씨앗은 부모라는 토양에서 자란다. 그리고 국가라는 각기 다른 계절과 날씨의 변화 속에 살아간다. 각각의 씨앗은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다르듯이 아이는 모두 다른 재능과 기질을 갖고 있다. 토양에 뿌려진 씨앗은 잘 자라도록 계속된 돌봄이 없으면 싹을 틔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싹을 틔우고 자라 풍성한 잎을 만들어 꽃을 피우고 다시 열매 맺기까지 부단히 돌보아야 한다. 간혹 잡초와 같이 특별히 가꾸지 않아도 잘 자라는 것도 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그것 나름대로 자연이 돌보는데 인간에게는 그것이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부모라는 환경이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이 국가의 교육 시스템과 안전망이 중요하다. 우리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고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의 규칙과 국가의 규칙을 따르며 산다. 그리고 이후에 자신의 삶의 규칙을 나름 만들어 살기는 하지만, 인생의 결정적 시기는 대체로 부모와 살고 국가 주도의 교육을 받으니 그 이후 내 삶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살기란 사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는 모습들이 대략 다 엇비슷한 것이다. 씨앗은 모두 다르지만 씨앗의 자랄 환경이 대략 비슷해서다.


그래도 더 자세히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어떤 아이들은 사과가 되고 어떤 아이들은 벼가 되고 어떤 아이들은 화초가 되고 어떤 아이들은 소나무가 된다. 또 어떤 아이들은 잡초가 되어 살아간다. 비슷한 토양과 날씨에도 각자 다른 씨앗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이들은 결국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러니 어떤 인간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모나 또는 국가의 교육은 그 책임이 막중하다. 그들의 역할에 따라 어떤 사과, 어떤 벼, 어떤 소나무가 될지 성장의 정도가 결정된다. 그러니 부단히 공부하고 숙고하여 한 인간을 정성 들여 키워내야 한다. 부담스러운 말인 줄은 안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을 알기만 하면 아주 간단하고 쉽다. 부모 자신이 자신에게 대해 먼저 공부하고 행복한 인간이 되는 것이 첫 번째다. 그러면 특별히 대단한 가치관과 교육관이 없더라도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그대로 배우고 부모처럼 건강하고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단, 국가의 교육이 본질에서 벗어난 우리나라 같은 환경에서는 부모의 교육관이 매우 중요하다.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휩쓸려 아이도 고생하고 부모도 경제적, 시간 전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국가의 교육이 본질에 가까우며 시스템이 경쟁적이지 않는 나라의 경우는 아이 키우는 일이 특별히 어렵지 않다. 그냥 학교를 다니며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잘 받으면 된다. 여기에 아이 개인 역량에 따라 각자 원하는 진로를 선택하면 된다. 우리처럼 타고난 재능과 기질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의대열망'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이 문제의 원인을 부모의 그릇된 욕망이라고 진단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참으로 억울하고 또한 맞지 않는 분석이다. 부모는 아이를 가장 사랑하고 가장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행복하길 원한다. 그런데 부모의 그릇된 욕망이 '의대 열망'으로 아이를 몰아넣는다고 비난받는다. 물론 그런 부모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대다수의 한국 부모들은 그냥 아이가 보통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길 원한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그 보통의 삶이란 것이 이 나라에서는 굉장히 어렵다. 경제 성장이 멈춰버린 나라에서 교육 수준은 이전 세대보다도 높아졌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적어진 탓에 자발적 실업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또한 사회 안전망이 '가족'이외는 없는 나라다 보니 보통의 삶을 누리려면 직업의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니 한때는 '공무원 열풍' 불었고, 이젠 그저 안정적인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명문대에 갔음에도 재수, 삼수, N수를 해서라도 '의대'를 가기 위해 20대의 젊음을 소비한다. 이런 사회 현상 속에서 불안과 걱정이 많아진 부모들은 미리미리 아예 초등시절부터 '의대' 가기에 유리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애쓴다.


사실 이것은 국가 시스템, 즉 국가 공교육의 문제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내는 부모들의 책임이 아니다. 자신의 노후보다는 매달 지출해야 하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밖에 없는 이 불안한 현실 사는 부모들의 처지는 공감 못하고 눈감은 채, 국가는 그저 부모의 욕망만을 탓하며 공교육만 믿으라고 한다. 시대의 변화에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여전히 지엽적인 교과서 이해와 암기에 몰두되어 있는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말이다. 공교육에 관계된 이들도 정작 자신들 역시 공교육에만 의존하지 않으면서.




이런 국가 교육 시스템 속에서 한국의 부모들은 반드시 교육 관한 올바른 방향 설정을 해야 한다. 이 방향 설정이 잘못되면 정말 막대한 돈과 시간을 낭비하면서 스스로 내 아이를 망치는 주범이 될 수도 있다. 시행착오를 겪고 후회해도 아이의 성장 시계는 이미 돌아갔고 되돌리기 힘든 경우도 있다. 그러니 육아나 교육에 대한 공부가 이 나라에서는 부모가 되기 위한 필수다.


어떤 이는 그냥 아이를 무조건 믿으라고 한다. 이 말은 일부 맞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처럼 밥이나 먹이며 학교만 보내면 끝인 세상이 아니다. 그때는 모두가 그랬고, 지금은 모두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아이를 체스판에 체스말처럼 움직여서도 안된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전부 체스판의 말처럼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자신들의 갈길을 부모에게 물어 온다. '이제 어디로 가?' '이제 뭘 해?' 그럼 체스를 두는 사람인 부모는 아이를 요리조리 옮겨놓는 식이다.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믿으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가장 쉽게 육아를 하는 부모는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잘 알고 열심히 매일을 최선을 다해 산다. 자기 삶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한다. 말했듯이 이 경우는 특별한 교육관 따위는 없어도 아이들이 뭐든 알아서 잘한다. 부모라는 훌륭한 인생 모델이 있으니. 현명한 이들은 특수한 한국의 교육 현실을 꿰뚫어 보며 불필요한 사교육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경쟁에 나 몰라라 하지도 않는다. 공부의 본질을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으며 아이와 충분한 대화를 갖고 사교육을 시킨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삶에 대한 만족과 자신감으로 부모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권위'라는 말의 뜻을 많이 오해하고 있는데, 그것은 '권위적'이란 말과 혼동하기 때문이다. 권위가 있는 것과 권위적인 것은 엄밀히 다르다. 권위는 어른으로서의 합당한 지도력을 가지고 아이가 자발적으로 따르는 것을 말하지만, 권위적인 것은 '여러 힘'으로 일방적으로 명령으로 아이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어른의 권위와 부모의 권위를 갖는다면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친밀감을 갖기 위해 애써 아이와 친구가 될 필요가 없다. 애초에 부모는 아이와 친구가 아니다. 더욱이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 부모와 아이의 위치는 다르다. 어린 시절 아이의 일은 전적으로 부모의 선택으로 결정되며 책임 역시 부모가 진다. 친구는 동등한 관계를 말한다. 하나 다시 강조하지만 부모와 아이는 동등하지 않다. 언제나 힘을 가진 쪽은 부모다. 그러니 그 힘을 정당하고 책임감 있게 써야 권위가 생긴다. 소리치고 때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권위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 그리고 교육관을 점검해 보길 권한다. 스스로 ' 나는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 '나는 어떤 게 제일 중요한 사람인가.' '내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되길 바라는가' 이것은 꼭 구체적일 필요는 없다. 말 그대로 방향설정이다. 머나먼 인생 여정을 가야 하는데 이상향이라도 목적지에 깃발을 꽂고 가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과 같이 동일성을 중시하여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다 같이 휩쓸리지 않아도 되고, 국가 공교육 시스템의 불만으로 찾아간 사교육 시장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언젠가 이 땅에서 살다 간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또 현재를 사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 덕분에 산다.
그러니 내 삶에는 내 노력만 더해진 게 아님을 기억하자.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평소에 내 아이들과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굉장히 전쟁의 역사라고 부를 만큼 수많은 전쟁을 아주 최근까지 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인간이란 존재가 다른 동물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싶은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좋은 쪽으로 발전해 왔고, 합의해 왔다. 이건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난 동화적 결말인 "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믿는 쪽이다. 인간은 끝내는 좋은 것을 선택하고 다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한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생존에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관으로 난 아이들에게 경쟁에서는 최선을 다해 이기고, 그것에서 얻은 명예는 갖되 실질적 이득은 같이 나누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길게 설명하면 잔소리가 되고,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그래서 책을 소통의 도구로 삼는 것이다. 딱딱한 형식의 글쓰기보다 비유와 상징이 내포된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훨씬 교육적 효과가 좋다. 세계관이나 가치관이니 교육관은 거창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는 추상적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굉장히 구체적이고 재밌있는 데다가 그래서 더 이해하기 쉽다.


앞서 앞으로 고전이 될 거라 장담했던 <<푸른 사자 와니니>>에서 와니니라는 암사자는 약하게 태어나 자기보다 어른 사자들에게도 밀려 우두머리 사자 눈에는 살 가망성이 없어 보였다. 결국 우두머리 마디바가 어떤 사건을 빌미로 '쓸모없는 아이'라며 아직 어린 와니니를 내쫓는다. 살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그 어린 암사자 주위로 포식자들이 어슬렁거리며 와니니가 죽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와니니는 힘 약한 떠돌이 숯사자들과 무리를 이루어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홀로 살아가기에는 부족하나 함께 살아가기에는 충분한 하나의 무리 만들어간다. 급기야 쓸모없는 아이라 불리던 와니니는 자신을 내쫓았던 우두머리 마디바 무리를 오히려 돕게 되고 마디바는 와니니에게 다시 무리로 돌아오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더 이상 옛날의 어린 암사가 아닌 와니니는 당당한 눈빛으로 제안을 거절하며 포효한다.


이 이야기를 함께 읽으며 아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덧붙인다. 너희는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완벽해지려고 할 필요가 전혀 없어. 너희는 그냥 너희 그대로 살아가면 된단다. 노력이란 걸 하려면 완벽해지려기 보다는 '너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고' 애쓸 필요는 있지. 너희들이 해야 할 최선이란 그런 거야. 너희가 못하는 무엇인가는 다른 누군가의 재능으로 채워져. 그리고 다른 누군가 못하는 것은 너희의 재능으로 채우면 돼. 한 생명은 늘 다른 생명에 빚지며 살아왔고 그 순환은 영원할 거야.


이렇게 책 속에는 삶의 진리로 가는 길이 있다.


진리로 가는 길로 인도할 사람은 다름 아닌 부모다. 내 아이가 진정 건강하고 행복한 어른이 되길 원한다면 부모의 불안으로 학원으로 가는 길 대신 진리로 가는 길로 안내하는 것이 어떨는지. 본질적인 진리에 도달하려면 한 권의 책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면서 아이와 그곳에 도달하게 된다. 도달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독서의 힘으로 학습 역량은 따라온다. 이것이 부모가 해야 할 교육의 방향설정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의 불안을 이겨낸 진정한 부모의 권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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