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아래 설 너에게 10.
조심하세요, 윗 층에는 기이한 힘을 가진 자들이 있어요. 스즈키가 해준 말을 곱씹으며, 한울과 호국, 리아는 3층으로 향했다. 계단을 딛을수록 지치는지, 리아의 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리아의 뒤에서 계단을 오르던 한울은 농담스럽게 말을 건냈다.
“업어줘?”
“아, 아녜요.”
리아가 얼굴을 붉히자 한울은 쿡쿡 소리내며 웃었다.
3층의 문은 다른 층과는 달리 유독 묵직했다. 문이 열릴 때의 쇳소리는, 심장을 긁는 무언가가 있었다. 기이한 분위기와 그로인한 불편함은 해당 층에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고 나서 더욱 가중되었다. 3층처럼 4층 역시 텅 빈 상태였다. 한울은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느꼈다.
5층의 비상문 문고리를 잡았을 때, 건물 안쪽에서 두꺼운 목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만큼 기묘했다. 한울은 숨을 크게 들이켜고, 호국에게 말을 건냈다. 까닭모를 느낌, 날 선 직감이 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그는 품에서 부채를 꺼내, 바르게 고쳐 쥐었다. 한울의 숨소리가 조금 들썩이고 있었다. 호국과 눈을 맞춰 합을 짠 후 한울은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고, 리아까지 모두 세 사람은 서 있던 그 자리에 우두커니 못 박히고 말았다.
송곳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 거대한 형상이, 팔의 두께는 성인 남성의 허리와도 같고, 키는 도합 3미터는 될 법한 끔찍한 괴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괴물은 거칠게 숨을 내 뱉으며, 세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검푸른 몸을 하고 있었는데, 피부 색이 마치 죽은 자의 그것과도 같아, 경악스러울만큼 음산하고 공포스러웠다.
“주, 주인님. 저게 뭐예요···.”
겁에 질린 리아가 자신도 모르게 한울을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한울은 부채의 살을 펼치고 괴물을 올려다보았다. 호국은 손목에 끼고 있던 염주알을 돌리며, 끊임없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연호했다.
“덩치나 생김새가··· 오니, 아무래도 일본의 도깨비 같지?”
호국이 숨을 꿀꺽 삼키며 묻자, 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니는 커다란 손으로 리아를 단박에 낚아챘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하늘로 던져졌다. 한울은 즉시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리아를 빠르게 받아냈다. 허리가 지끈 거렸는지, 리아는 짧게 신음을 내뱉었다.
오니가 커다란 주먹으로 한울의 머리통을 박살내려는 순간,
한울이 자신의 머리 위로 부채를 빠르게 펼쳐 단단한 바람을 일으켰다. 오니는 주먹을 내리치려다가, 공기의 저항에 부딪쳐 통증을 느낀 듯 괴성을 내질렀다. 오니의 고함소리에 윗층에서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심각하게 쿵쿵대며 격렬한 반응이 이어졌다.
“윗층에도 오니가 있는 모양이지?”
엷게 웃은 한울은 리아를 등 뒤로 숨겼다. 그리고 팔을 뻗어 오니의 눈 앞에 부채를 펼쳐보였다. 오니는 눈 앞에 작은 부채가 살랑거리자, 약이 올랐던 듯 발을 굴렀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울리고, 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주저앉아만 있었다. 천장에서는 균열이 일어난 것처럼 시멘트 가루가 자꾸 떨어졌다.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내 손에는 무엇이든 베어버릴 수 있는 검이 있으니.”
한울은 부채의 살을 펼친 채, 대각선으로 가볍게 부채를 흔들었다. 그러자, 칼날같은 바람이 오니의 목 언저리에 닿아 분수처럼 피가 쏟아졌다.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도 깊은 상처가 생기자, 오니는 놀라 자신의 목을 감싸쥐고 사정없이 발을 굴렀다. 한울은 빠르게 달려, 오니의 주변으로 큰 원을 그렸다. 부채의 살은 여전히 45도로 틀어져 날선 바람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팔과 다리, 그리고 목이 잘린 오니는, 동강난 모습으로 바닥을 굴러다녔다. 한울은 오니의 뜨거운 피를 뒤집어 쓰고, 조각난 몸 틈으로 걸어나왔다. 붉은 피로 범벅이 된 모습이 앞선 오니의 모습보다 더 큰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한울은 손등으로 피로 물든 얼굴을 대강 훔쳐내곤 짧게 말했다.
“꾸물거릴 필요없지, 다음 층으로 가자.”
6층에 올라간 호국은, 양 손 가득 부적을 꺼내 들었다. 몸은 분명 하나인데, 남녀의 형상으로 머리가 둘, 팔이 넷, 다리가 넷인 괴물이 엉금엉금대며 돌아다니고 있던 것이다. 한울이 피곤했던지 뒤에 서서 어깨를 두드리고만 있자, 호국은 문제없다는 듯 흔쾌히 나섰다. 그녀는 괴물이 가진 8개의 팔다리에 하나씩 부적을 붙였다.
호국이 손가락으로 수인을 맺자, 괴물에게 달라붙어있는 부적에서 푸른 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괴물은 고통스러운듯 울부짖었지만 호국은 좀 더 복잡한 모양의 수인을 맺었다. 그녀가 손동작을 바꿔감에 따라, 괴물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심각하게 뒤틀었다. 푸른 빛은 파직거리며, 전기 배선이 합선 돼 불꽃이 튀어오르는 소릴 냈다.
“어떻게 된 건가요?”
뒤에서 웅크리고 있던 리아가 작게 물었다. 호국의 손동작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괴물의 극렬한 고통도 덩달아 끝날 줄 몰랐다. 옷을 비틀어 오니의 핏물을 짜내던 한울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말했잖아,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고···. 사이비 종교를 조사해달라는 내용의 간단한 임무에, 나라에서 제일가는 퇴마사. 그리고 무당들도 오줌을 지리는 재발법사인 우리가 투입된 이유가 뭐겠어.”
호국은 마지막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괴물은 과실처럼 짓이겨져 터져버렸다. 사체의 파편이 입안에 튀었던지, 호국은 퉤, 이물질을 뱉어냈다. 법복의 소매로 입을 닦아낸 호국은 등 뒤의 리아를 돌아보았다.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기이한 존재들에게는, 똑같이 세상의 것이 아닌 기이한 힘으로 대응하는 수 밖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7층에서는 쌍둥이 오니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들은 온전한 여성의 형태를 갖추고 있어, 이번에도 호국이 나서야 했다. 한울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아무리 오니, 괴물이더라도 여성의 몸에는일체 손대지 않는다는 것이 신조라고. 호국은 투덜거리며 부적을 날렸다. 꼴에 무슨, 이라는 빈정거림이 귀에 때려박히듯 분명히 들렸지만 한울은 호국의 불평불만을 가볍게 무시했다. 호국의 불덩어리에 오니 자매는 검게 그슬려 버렸다.
커다란 거인 남녀를 마주하자,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합을 맞췄다. 8층의 오니들은 덩치가 컸지만 상당히 날쌨는데, 한울과 호국은 각각 한 명씩 맡아 제 기량을 펼쳤다. 한울의 부채가 거인남성의 배를 깊게 찔렀다. 폭이 그리 깊지 않을텐데, 거인의 등 뒤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한울은 놈의 뱃속에서 부채를 꺼내 핏물을 말리려는 듯 빠르게 파닥였다. 검은 부채는 피를 머금고 더욱 색이 짙어졌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던 리아는 소름이 돋았다. 벽조목이라고 했던 부채는 어쩌면 벼락을 맞아 검게 그슬린 것이 아니라 피를 많이 머금어서···.
호국은 거인여성의 입 안에 부적을 던져넣었다. 거인 여성이 부적을 뱉어내려 입을 여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수인을 맺자, 입 안의 부적은 폭탄처럼 거인의 몸 안에서 터져버렸다. 폭발해버린 머리통과 반 쯤 터진 눈알들이 데구르르 발치 앞에 굴러왔다. 호국은 물러버린 거인의 눈알을 발로 꾸욱 밟았다. 밟힌 눈알들은 공처럼 이리저리 튀어오르고 굴러다녔다. 호국은 눈알들을 쫓으며 제자리 걸음을 했다.
“먼저 정리했으면 좀 돕든가 하지, 구석에서 장난치고 있네.”
한울의 퉁명스런 말에 호국은 씨익 웃어보였다.
“나보다 네가 낫잖아.”
리아는 숨을 꼴깍 삼켰다. 그녀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진 것을 본 한울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짚히는 구석을 찾은 듯 물음표를 건내왔다.
“왜, 리아야. 우리가 무서워?”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리아에게, 한울은 팔을 벌리고 섰다. 리아는 멈칫했다가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리아가 가까이 다가오자 한울은 그녀를 덥썩 끌어안았다. 리아는 히끅, 이상한 숨소릴 냈다. 바들바들 떠는 그녀를 한울은 더욱 힘주어 껴안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세게 안긴 리아는 눈을 꼬옥 감았다. 그러자, 한울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애틋한 그 소리에, 리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무섭지 않···.”
리아는 한울의 등 뒤에 팔을 둘러 그를 조심스레 껴안았다.
“무섭지 않아요.”
한울은 리아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는 그녀를 품에서 놔주었다. 리아의 낯빛이 본래대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나서, 한울은 9층으로 향하는 비상구를 찾았다. 호국은 거인의 눈알들이 밟아도 잘 터지지 않자, 발치의 눈알을 세게 걷어차버렸다. 웃는 얼굴로 걸어오는 호국을 보고 리아는 자그맣게, 괜찮아, 무섭지 않···, 괜찮아, 하고 중얼거렸다. 호국이 리아의 뺨을 잡아서 부드럽게 당기자, 리아는 그제야 조금 무서움이 가셨는지 예쁘게 웃어보였다.
9층에는 7명의 오니군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앞 줄의 오니 두 명은 큼지막한 방패를 들고 있었다. 중간 줄의 오니들은 거대한 칼을 휘두르고 있었고, 세번째 줄의 오니 두 명은 엉성한 활을 들고 있었다. 화살은 그 촉이 의뭉스러울만큼 무뎠다. 그리고 한참 뒤에는 근엄한 표정의 오니 장군이 세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호국은 씨익 웃어보였다.
“그래, 이 정도는 됐어야지. 이제야 좀 재밌겠는데?”
한울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오니들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당황한 오니들과 달리, 한울은 오니들을 향해 부채를 파닥이며 계속해서 걸어나갔다. 격렬한 바람에 의해 오니 군단이 홍해처럼 갈라지자, 한울은 부채를 그대로 던져, 맨 뒤에 앉아있는 오니 장군의 이마에 부채를 내리 꽂았다. 오니 장군의 머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그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 쓰러졌다. 오니 장군이 맥없이 숨을 거두자, 호국이 벌컥 화를 냈다.
“모처럼 재밌을 것 같았는데, 한울 이 녀석아. 왜 초를 쳐?”
“전쟁터에서는 조무래기들을 제끼고 장군의 목을 따야 승패가 나는거야.”
담담하게 대답한 한울은, 오니 장군의 발치로 걸어가 떨어진 부채를 주웠다. 그리고 자신의 양 쪽으로 갈라져서, 서 있는 오니들에게 비스듬한 칼바람을 보냈다, 오니들은 즉시 몸이 반으로 갈라진 채 쓰러졌다. 호국은 양 볼을 부풀렸다.
“이럴 거면 날 왜 데려왔냐!”
“거 참, 더럽게 종알거리네.”
한울은 몸이 반으로 잘린 오니들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눈이 뒤집힌 그들은 대꾸는 커녕 몸이 싸늘하게 식어만 갔다. 호국이 뾰로퉁하게 입술을 내밀자, 한울은 부채로 녀석의 이마를 내리찍으려는 제스쳐를 취했다. 호국은 두 손으로 부채를 움켜쥐고, 필사적으로 부채날이 이마에 닿는 것을 막았다.
호국과 장난치듯 티격태격하던 한울은, 오니의 시체만 가득한 9층에서 맥이 빠진다는 듯 중얼거렸다.
“오니말고 다른 것들은 없어? 기껏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실망시키지 말라고.”
그의 중얼거림을 들었다는 듯, 윗층에서는 스산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그 음습한 울부짖음에, 한울의 눈이 맑게 빛났다. 그는 검은 부채를 고쳐쥐었다. 몸에서는 온통 지독한 피비린내가 났지만, 한울의 입은 분명 웃고 있었다. 이 정도의 피로는 부족하다는 듯, 아직 갈증이 난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