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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임무.

빛 아래 설 너에게 14.

by 다우

양 손에 히나의 너클을 좀 더 단단히 끼고서,

리아는 숨을 골랐다.

더러운 생쥐들이 한울을 중심으로 드글드글 모여들고 있었다.

리아는 두려움은 마음 한 편에 고이 접어두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한울님을 지키고 싶다면서요. 지키려면 해야지.

히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는 더러운 군중 속으로 몸을 날렸다.


리아의 정의, 뾰족한 너클에 얼굴이 얻어터진 생쥐들은,

성이 났는지 더욱 찍찍 거렸다.


그들의 눈매는 붉은 빛을 품는 등, 사납게 변했다.


한울은 즉시 부채를 바닥에 가까이 가져다댔다. 그리고,

부채를 유연하게 흔들어 물결같은 바람을 겹치게 만들어냈다.

일순간 건물이 휘청하는가 싶더니

20층 바닥이 일렁이며 타일이 전부 깨져나갔다.


대리석이라, 깨져나가는 모양새가 더 극적이군.


한울은 팔을 넓게 펼쳐, 부채의 바람을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생쥐들은 꿈틀거리는 바닥에 비틀대며 중심을 잡으려 했지만···.


균형을 잃은 생쥐들에게 리아의 참된 훈육이 시작되었다.

생쥐들은 리아에게 두 눈을 가격당해,

피범벅이 된 얼굴을 움켜쥐고 고꾸라졌다.


자비가 사라진 그녀의 변화에 한울은 눈을 몇번씩 크게 떴다.


한울 역시 지지 않기 위해,

물결치는 땅을 손바닥으로 짚은 채

단단한 하체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긴 다리를 휘둘러 그 자리에서

풍차와 같은 윈드밀을 돌렸다.


한울의 발에 얻어맞은 생쥐들은 이빨이 깨져나간 채 뒤로 넘어갔다.


리아의 뒤에서 덮쳐오는 생쥐는

해어도가 나서서 잘게 썰어버렸다.

토막난 생쥐들은 도로 종이로 변해버렸다.


“다들 즐거워 보이네.”


뒤에 서있던 호국이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말했다.


호국은 싸움이 일어나는 내내,

20층을 면밀히 살펴 금고를 찾아냈다.

생쥐 떼가 한울과 리아를 총 공격하는 동안,

호국은 금고를 발로 차 부숴버렸다.


금고 안에는 USB여럿과 외장하드, 마지막으로

도화단원들의 프로필로 보이는 누드 사진집이 들어있었다.

호국은 그 중 히나의 사진을 발견하고 10장의 부적 중 한 장을 써서

흔적도 없이 태워버렸다.


생쥐 떼가 전멸하자, 흉하게 찢겨진 종이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음양사들은 차분한 목소리로 다음 종이를 세 사람에게 날렸다.

종이들은 허공에서 독사로 변했다. 요사스런 색의 뱀들은,

혀를 날름거리며 한울과 리아의 다리에 몸을 감아댔다.


한울은 재밌었는지 헤에, 소릴 내며 부채의 살은 비스듬히 세웠다.

두 동강나는 뱀들은 꼬리를 돌돌 말고 죽어버렸다.

숨이 멎은 뱀들은 도로 종이 따위가 되었고,

음양사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즉시 다음 소환을 준비했다.


그때였다.


뱀에서 벗어난 리아가

가까이 앉아있는 음양사의 머리통을 너클로 세게 때려버렸다.

음양사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는데,

무려 관자놀이가 으깨져 있었다.


“어쭈, 제법인데···.”


한울은 기가 막히다는 듯 웃었다.

그 역시 음양사들이 다음 종이를 흩뿌리기 전에,

재빨리 놈들에게 덤벼들었다.


주술적 의미가 담긴 마법진을 구성한 듯,

각자 한 자리씩 요지부동 앉아있던 그들은

한울의 주먹과 발길질에 도망치기 바빴다.


“뭐야, 순 오합지졸이잖아.”


한울의 도발적인 말에도, 음양사들은 대꾸없이

저마다 방의 구석까지 달려가 벽에 등을 기댔다.


“아냐, 한울아! 저 녀석들은 지금···!”


외장하드를 챙긴 호국이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다급하게 외쳤다.


벽에 등을 붙이고 선 음양사들은 저마다 수인을 맺었다. 그들은,

한울과 리아, 호국을 포위한 듯 초록색의 결계를 만들었다.


결계의 안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돔 형상의 빛 덩어리에 갇힌 세 사람은, 재빨리 시선을 교환했다.


세 사람은 눈빛만으로 서로의 의중을 파악했다.


한울은 동쪽으로 향했다.

방의 귀퉁이에 몰려있는 음양사들은,

한울이 거침없이 덤벼들자 눈빛이 달라졌다.


리아는 남쪽이었다.

한쪽 귀퉁이의 몰려있는 음양사들을 향해 뛰어가며,

그녀는 해어도에게 북쪽을 도맡으라고 소리쳤다.


해어도는 주저없이 날아가, 북쪽 벽에 달라붙어있는 음양사들을 제압했다.


호국은 서쪽. 그녀는 주먹을 다부지게 말아쥐었다.


동서남북, 네 개의 방위에서 저마다 격렬한 전투가 일어났다.

호국이 맨 주먹을 사용한다면, 리아는 뾰족한 너클을 썼다.

신비한 힘으로 허공을 가르는 해어도처럼, 한울은 부채를 양껏 활용했다.


음양사들의 손에서는 온갖 괴물이 빚어졌다.


그들은 악령을 소환하거나, 두 눈에 잿가루를 뿌리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음양사들로부터 한대 크게 맞은 호국이

데굴데굴 구르다못해 끝내 쓰러지자,

한울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소리쳤다.


“멍청한 땡중 자식아, 정신차리고 제대로 안 싸워?”


호국이 잇샌 소리로 신음을 내뱉자,

한울은 부채를 하늘을 향해 뻗었다. 그리고는

팔을 최대한 높이 든 채 부채를 여러번 허공을 향해 저었다.


음양사들은 물론 리아와 호국 마저 입을 벌렸다.

건물 내부에서 강력한 기류가 일어나 구름이 빚어졌던 것이다.


“리아야! 당장 너클 벗어!”


한울의 외침에, 리아가 즉시 너클을 벗어서 멀리 던졌다.

그 순간,

구름에서 벼락같은 빛이 쏟아져 너클을 무자비하게 때렸다.


쇠로 된 너클은 타탁거리며 불이 붙었다.


리아는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색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한울 녀석, 도대체 어쩔 생각인거야···.”


호국은 천장의 구름에서 물방울들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가랑비를 빼닮은 얇은 물줄기는 점차 강해져 스콜같은 장대비가 되었다.


“모처럼의 수중전, 낭만있고 좋잖아?”


한울은 히죽거리며 웃었다.

물폭탄이 터진 듯, 물줄기는 끊임없이 쏟아졌다.


음양사들은 낭패감에 젖은 표정이 되었다.


허공에 종이를 날려보내서 주술을 걸어야 하는데,

그렇게 종이로 기괴한 생물들을 연달아 소환해야 하는데,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울님은, 주인님은 천재예요!”


리아가 흠뻑 젖은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걸 이제 알아차렸냐.”


한울은 부채로 음양사들의 머리를 세게 타격하며 말을 이었다.


흠뻑 뒤집어 썼던 핏물은 전부 빗물에 씻겨나가

한울의 말끔한 얼굴이 깨끗하게 빛났다.


“주인님이 신나게 놀아보자고 말했잖아!”


그의 호쾌한 말에 리아는 감격해서 손뼉을 쳤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빗물 속에서 한울은 춤을 추듯 유려하게,

적들을 섬멸했다.


호국이 음양사들을 향해 힘주어 달릴 때마다

바닥에 고인 물들이 튀어올라 반짝거렸다.


해어도는 리아의 주변을 크게 돌며,

덤벼드는 음양사들을 신랄하게 베어버렸다.

리아는 두 손으로, 젖어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얇은 원단의 옷들은 빗물에 흠씬 젖어,

리아의 몸, 그 날렵한 곡선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녀는 내리는 빗줄기가 상쾌하다는 듯 크게 기지개를 켰다.

천진난만하게 팔을 뻗는 리아, 그 주위를

해어도가 빠르게 날아다니며, 철통 수호했다.


음양사들의 비명과 울부짖음 속에서,

리아는 왜 인지 모를 후련함을 느꼈다.


한울은 그런 그녀를 틈틈히 주시하며,

미소지었다.

산산히 박살나는 음양사들의 머리통을

굳이 발로 걷어차 넘어뜨리기 까지 하며.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두 발로 제대로 서 있는 음양사가 한 명도 없었다.


적군을 완벽하게 섬멸한 한울은,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리아는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웃음을 보여주었다.

삶의 갈증이 모조리 녹아버릴 것 같은 청량감.

그 기분좋은 감각이 한울을 한없이 설레게 만들었다.


“그만 웃어.”


한울의 퉁명스러운 말에 리아는 소리까지 내며 웃어댔다.


“이러다간 정말··· 정 들겠다.”


한울의 말에 리아는 그에게 달려가 덥썩 안겼다.

빗 속에서의 포옹은, 찰박거려 즐거운 느낌이 들었다.


한울은 그녀를 거부하지 않고,

리아의 젖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바보야, 뭐가 그렇게 기쁜 건데.”

“주인님이랑 신나게 놀아서, 그래서, 그래서···.”


리아는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빗 속에서의 전투가, 기분을 무척 상쾌하게 해요.”

“이 녀석, 순 싸움꾼이었네.”


한울의 농담에 리아는 크게 웃었다. 그는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허리는···.”


한울은 리아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리아는 그를 밀어내기 보단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리의 통증은 괜찮냐고.”


리아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봐. 네 허리의 통증은 신병이 아니라 단순히···.”


기분이 얼마나 좋은 건지,

리아는 한울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한울은 눈을 조금 치켜떴다가,

다른 쪽 뺨도 내밀었다.

리아는 웃는 얼굴로 그의 맞은 편 뺨에도 입을 맞췄다.


호국의 큼큼 대는 기침소리로, 한울은 리아의 허리에 감았던 팔을 풀었다.


“드디어 마지막 층인 21층이로군.”


한울은 옷을 비틀어 물기를 짜냈다.

머리 위로 빗줄기가 거듭되어 의미없는 행동이긴 했다.


“단체로 감기 걸리기 전에 빨리 윗 층으로 가자.”


호국의 말을 신호로, 세 사람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21층으로 향했다.


곤란한 일들도 꽤나 많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어째 순탄히 풀린다 했다.


21층 문은 잠겨있었다.


한울은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발로 쇠문을 세게 걷어차기 시작했다.

쾅쾅거리는 엄청난 소음이 비상계단을 쩌렁쩌렁 울렸다.


“얌마, 발목 나가는 거 아니냐?”


호국의 말에, 한울은 일부러 더욱

발에 커다란 힘을 주어서 문을 걷어찼다.

그러자, 우그럭하고 쇠 문이 구겨지고 말았다.


리아는 두 눈을 깜빡였다.


“왜 21층만 문이 잠겨 있을까요?”

“무슨 상관이야, 강제로 여는 재미가 있잖아.”


한울의 장난스런 말에 리아는 골똘히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그를 따라 웃어 버렸다.


5분 정도 꾸준히 문을 걷어찼더니,

쇠문이 안으로 휘어서 얼추 열리게 되었다.


“집요하기가 이루 말할데 없어 소름까지 끼치는 놈, 너 얌마. 발목 괜찮냐?”

“뭐라는 거야, 땡중이···. 걱정을 할 거면 걱정만 하던가. 뭐가 소름이 끼쳐.”


한울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는 두 손으로 쇠문을 뜯어냈다.


철컹, 떼어낸 문으로부터 묵직한 쇳소리가 들리고,

곧 일렁이는 어둠이 나타났다.


도화단원의 숙소에서 맡았던 숨 막히는 달콤한 향기.

그리고 미미하게 흔들리는 촛불들···.


리아는 화려하게 치장된 방을 보며 몸을 떨었다.

그녀가 긴장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한울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당장 나와! 이 음습한 검은 여우!”


난데없이 천둥같이 소릴 지른 한울 때문에

호국과 리아는 얼마나 놀랐던지 번갈아가며 딸꾹질을 했다.


한울은 멈추지 않았다.


“나오라니까!”


고함소리를 끝으로 안 쪽에서 붉은 빛이 반짝였다.


“미개한 일족다운 훌륭한 등장이야. 나를 조금도 실망시키지 않는군.”


붉은 빛은,

안광이었다.


2미터는 족히 될 법한 크기의 검은색의 여우가 붉은 눈으로

한울무리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풍성한 털이 인상적인 꼬리는 여섯, 아니 아홉은 되어보였다.


“무례한 사내여,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고생이 참 많았네.

이토록 수고스럽게 나를 찾아온 까닭을 어디 한번 들어볼까.”


사람의 말을 하는 거대한 검은 여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을 종용했다.


리아는 부들부들 떨며 홀로 답했다.


“쿠, 쿠로 키츠네님이 맞으신가요?

위대하신 쿠로 키츠네님이 어쨰서

이런 무서운 형상으로···.”


여우는 희번뜩한 눈으로 리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아, 그래.

너는 나의 아이로구나. 아픈 몸을 치료해 달라며,

나를 몇번이나 접견했던 게 기억이 나.”


여우의 말에 리아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두 눈에 존경의 빛을 품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가 어째서 이런

불손한 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냐.

믿음의 부족이라 답하기에는 어리석음이 너무나 짙다.”

“아앗. 쿠로 키츠네님. 저는, 저는···.”


리아의 중얼거림에 한울은 그녀의 말을 잘랐다.


“우리 쪽에서는 받아갈 것이 있으니, 염병은 그 쯤 해둬.

음침한 검은 여우 자식아.”


상스러운 말에 여우는 말 없이 꼬리를 살랑거렸다.


“허름한 동물원에나 갇혀 있어야 할 녀석을,

관람료인 코인도 없이 접견을 해서, 기분이 나쁘냐?”


한울의 말에 여우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한울이 부채를 품에서 꺼내자, 여우는 그제야 입을 뗐다.


“너 재밌는 물건을 갖고 있구나. 극 양의 기운이 끓어넘치는 것으로 보아···.”


한울은 씨익 웃어보였다.


“왜, 내 벽조목 부채에 흥미가 좀 생겨?”


한울은 재빨리 부채의 살을 펼친 후 비스듬히 날을 세웠다.

칼과 같은 바람이 여우를 향해 날아갔다.


거대한 여우는 정통으로 맞은 것인지, 온 몸에 붉은 빛이 번쩍했다.


그러자,

거대한 검은 여우는 곧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여우 쪽이 본 모습인지, 사람 쪽이 본래 모습인지는 알 수 없었다.


“대화를 나누기에는 금수보다 이 편이 더 좋겠어.”


한울의 말에 그의 눈썹이 꿈틀했다.


리아는 이제야 본인이 알고 있던 쿠로 키츠네와 마주했다며,

꾸벅, 깊이 인사했다.

쿠로 키츠네는 리아에게 손짓을 해 보였다.


“이리온.”


리아는 즉각 그에게 걸어가려 했지만,

한울의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쿠로키츠네는 빙긋 웃으며 리아에게 재차 말했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야, 존엄의 명을 거스르지 말아라.”


리아는 교주님과 주인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자,

한울은 한숨을 내쉬고, 잡고 있던 손목을 놔주었다.


“여기 오기까지 보았던 많은 것들을 전부 잊어버린 사람같구나.”


한울의 말에 리아는 멈칫했다.


“흑호교가 어떤 곳인지 너도 이제 잘 알고 있잖아.”


그는 부채를 고쳐 쥐었다.


“네가 섬기는 교주 쿠로 키츠네는 오늘 밤, 내 손에 끝장날거야.

흑호교 내부 비밀 문건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놈을 생포하고, 그렇게

대한민국, 이 땅에서 사이비 종교인 흑호교를 영영 추방하는 것.

그게 내가 VIP로부터 이번에 맡은 진짜 임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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