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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빛 아래 선 우리는···.

빛 아래 설 너에게 17.

by 다우

한울은 놈의 멱살을 잡아 끌어올렸다.

쿠로 키츠네의 발이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멱살을 움켜 쥐고 있는 한울의 팔을 떼어내려, 그는 필사적이었다.

퉤, 하고 한울의 얼굴에 침을 뱉은 걸 보면, 분명···.


한울은 아무런 반응없이 쿠로 키츠네의 멱살을 잡은 그대로, 건물 외벽으로 걸어갔다.


“잘못 했습니다. 사,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


건물 밖으로 내던져 질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쿠로 키츠네의 바지가 젖어갔다. 얼룩이 분명한 그 모습에, 호국은 미간을 찌푸렸다.


멀리서 헬리콥터가 날아오고 있었다.


한울은 쿠로 키츠네의 멱살을 놓지 않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푸른 빛으로 색이 곱게 달라졌다. 지겨운 어둠 사이로, 밝은 해가 분명히 보였다.


요란한 소릴 내며 아슬아슬하게 착륙한 헬리콥터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여럿 내렸다.


그들은 소총을 손에 쥐고 있는 등 전원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 중 포마드로 유독 머릴 깔끔하게 넘긴 사내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아는 체를 했다.


넥타이를 약간 느슨하게 매고 있던 그는, 옷차림만큼이나 격이 없게 인사 해 왔다.


“여어, 한울!”


“적당한 때에 왔군. 서 팀장.”


“아침 해가 뜰 무렵까지 일을 마무리 지어주기로 했었잖아. 약속에는 철저한 사람이란 걸 익히 아니까···.”


한울은 그의 발치에 쿠로 키츠네를 던져놓았다. 놈은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형편없이 망가진 모습에 놀랐는지, 서 팀장은 휘파람을 불었다.


“말 그대로 살려만 놨군.”

“그래. 의뢰 내용대로 죽이지 않고, 생포했고···.”


“역시 대단해. 부탁했던 내부 비밀 문건들은?”


서 팀장의 물음에, 뒤에 서 있던 호국이 품에 감춰뒀던 외장 하드와 USB 여럿을 넘겼다. 한울 역시, 주머니에 넣어뒀던 USB를 건넸다. 스즈키씨와 히나로부터 받았던 회계자료였다.


“뭐가 많네···.”


서 팀장은 두 사람으로부터 받은 물건들은 조심히 박스 안에 넣었다.


무장한 사람들은 바닥에서 허우적대는 쿠로 키츠네를 끈으로 묶고, 수갑까지 채웠다.


“이제 놈을 헬기로 옮기는건가.”


“아니, 자네들이 타고 돌아갈 헬기야.”


한울의 어깨를 두드린 서 팀장은 멀리 미한리의 경계를 손 끝으로 가르켰다.


경찰차를 비롯 다양한 차들이 속속 당도하고 있었다.


“자네들이 헬기를 타고 돌아가는 동안, 우린 이 곳에 남아서 어지러운 마을을 정리할거야. 특수 요원들도 한 부대 들어왔으니, 폭력적인 신도들도 쉽게 제압할 수 있을거야. 교주 녀석은 차로 압송할 거고···.”


“팀장님, 상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이야기 도중, 검은 양복을 입은 부하직원이 서 팀장에게 다가와 핸드폰을 건넸다. 서 팀장은 양해를 구한 뒤, 전화통화에 열을 올렸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한울에게 돌아온 서 팀장은 작게 속삭였다.


“VIP께서 무척 만족스러워 하셨네. 자네에대한 신임이 아주 굉장해.”


서 팀장은 엄지와 검지를 맞댄 뒤 동그란 원을 그려보였다. 막대한 보상을 약속한다는 의미였다.


서 팀장의 시선이 아름다운 리아에게 닿았다.


“저 여자는 누구야, 호국 외에 동료가 늘은 건가?”


한울은 서 팀장을 따라 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사랑스럽게 휘날리고 있었다. 서글픈 표정으로 미한리를 내려다보는 리아는, 지켜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동료라기보다는, 이번 임무로 얻은 가장 큰 보상이라고 할 수 있겠군···.”


알듯 말듯한 한울의 말에 서 팀장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한울은 리아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꼈던 걸까, 리아가 한울 쪽을 돌아보았다.


허공에서 눈길이 맞물린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옅게 미소지었다.


호국과 리아, 그리고 한울은 안내와 도움을 받아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요란한 소릴내며 헬리콥터가 하늘로 날아오르자, 찬란한 아침 햇살이 창에 어렸다.


어찌나 햇빛이 강렬한지, 깨끗하게 닦인 하늘, 눈부신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리아는 헬리콥터 아래로, 비행음을 듣고 하나둘 모여드는 미한리의 주민들을 응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 예배를 보기 위해 심례당으로 향하는 것 역시 보였다.


“···흑호교의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될까요.”


그녀의 중얼거림에 옆에 앉아있던 한울이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스스로의 삶을 좀 먹던 어둔 밤이 지나고, 밝은 빛을 되찾았음을 깨닫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히, 분명히 그들 모두는···.”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따사로운 빛은 본디 우리의 것이었으니까. 미한리의 주민들은, 우리들은 분명···.


리아는 헬리콥터 창 밖으로 햇살에 흠뻑 젖어들었다. 다시 되찾은 빛, 그 소중한 아침에 감사함을 느끼며.


* * *


호국은 운전대를 잡고서, 콧노래를 불렀다.


뒷좌석에 앉은 한울은 턱을 괴고 차창 밖을 내다볼 뿐.


한참 운전에 집중하던 호국은 룸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한울을 넘겨 보았다.


“얌마, 리아씨의 첫번째 연극 작품을 보러가는 기쁜 날인데 왜 그렇게 가라앉아 있냐.”


한울은 대답없이 옆에 놓인 풍성한 꽃다발을 살짝 움켜쥐었다.


“리아씨가 이번에 맡은 역이 뭔지는 몰라도 액션 스킬이 가미 되어야 한다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고 하더라.”


“허리 아픈 건 좀 괜찮아 졌는지···”


“저번에도 전화했을 때도 물어봤어. 운동을 쉬지 않아서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라고.”


호국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전방을 주시했다.


한울은 사랑스러운 향기를 풍기는 꽃다발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심각함을 벗지 못하자, 호국은 분위기를 바꿔보려, 카오디오를 켰다.


오디오에서는 단신 뉴스가 흘러나왔다.


[ 헌금 액수에 따라 신도들에게 코인을 배부하는 등, 불법 다단계를 일삼은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구속 처벌되었습니다. 당국은 금융법 위반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으며···. ]


한울은 꽃다발을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잠시 단신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 교주는 여 신도들의 성 착취 혐의도 받고 있으며, 검찰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호국은 소리내서 쿡쿡 웃었다. 뉴스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 일본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 정당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정치부 기자 사토 히나, 스즈키 토모야씨가 공익 제보한 문건에 따르면···. ]


반가운 이름들이 차례로 들려옴에, 한울도 소리내어 크게 웃었다.


차는 소극장 가까운 곳에 세워놓고, 호국은 차에서 느긋하게 내렸다. 연극 시작까지는 아직 1시간 정도 남은 상태···.


한울은 뭐가 그리 초조 한지 꽃다발을 품에 안고서, 진작에 내린 상태였다.


“얌마, 너 평소랑 좀 다른데?”


단정한 코트와 반듯한 정장 차림, 머리도 신경써서 빗어넘긴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호국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쓸 데 없는 소리.”


한울의 퉁명스런 대답에 호국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극장은 지하 층에 있었다. 좁은 계단을 딛고 내려가야 했고, 무대도 작은 편이었다.


하지만 벽면 가득한 포스터에는 리아의 예쁜 얼굴이 여러 각도로 담겨있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내용이었네.”


호국은 팜플렛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리아씨는 독립군 역이야. 게다가 여자 주인공인가본데···.”


“그렇지, 리아는 언제나 히로인이지.”


한울의 중얼거림을 흘려들은 호국은, 팜플렛을 그에게 들어보였다.


“생각보다 훨씬 더 재밌겠는데?”


한울은 말 없이 꽃다발을 가볍게 움켜잡았다. 싱그러운 꽃향기가 코 끝을 간지럽혔다.


관객들이 하나둘 입장해서 자리를 채우고,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자 불도 꺼졌다.


적막감이 흐르고,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조명 하나가 켜졌다.


그리고 빛 아래에 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그녀는 댕기머리를 하고서, 관객석을 바라보았다.


호국이 반가움에 손을 흔들었다, 한울은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울을 발견한 건지 리아의 입가에 미소가 언뜻 보인 것도 같다.


리아는 짧게 숨을 들이킨 뒤 대사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관객들은 숨을 들이켰다. 그녀가 읊는 대사가 독립선언서의 내용임을 알아차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한울은 리아를 처음 만날 당시, 가련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몇 되지 않는 별빛 아래에서, 오들오들 떨며 다리 난간에 서 있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청춘은, 새벽의 검은 절망이 아닌, 사회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바르게 찾아 굳건히 두 발로 섰다.


그녀 눈 앞에는 더 이상 서러운 강물이 입을 벌린 채 기다리지 않았다.


감동하고 압도당한 관객이 감탄 어린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리아는 또렷한 발음으로 대사를 쉼없이 낭독했다.


“이 선언은 오천 년 동안 이어 온 우리 역사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을 모은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리아는 품에서 작은 태극기를 꺼냈다. 그녀의 등 뒤로 분장을 한 연극배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비장한 표정이었다.


리아는 세상에 공표하듯 단단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시대의 흐름이며,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 독립을 가로막지 못한다.”


한울은 작게 그녀의 말을 따라 되뇌었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를···.”


연극 시간은 꽤 긴 편이었지만, 내용이 재밌어서 무척 짧게 느껴졌다.


극이 끝나자마자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리아는 땀으로 번들거리는 이마를 닦았다.


그녀의 함박 미소는, 가슴 속 작은 응어리마저 하나 남기지 않고 시원하게 녹여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무대 뒷 편에서 한울과 호국이 리아를 찾았다.


리아는 분장을 지우지 않은 상태로 그들에게 달려나왔다.


“리아씨, 축하해요!”


호국은 큰 소리로 인사를 건냈다. 쑥쓰러워 하는 리아에게, 한울은 내내 소중히 안고 있던 꽃다발을 건냈다.


리아는 풍성한 꽃다발을 품에 안고서 그 향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다들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무대 위에서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얼마나 힘이 났는지 몰라요.”


리아의 말에 호국이 너스레를 떨려다가, 한울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한울은 오랫동안 준비해 온 말이 있는 것처럼 조금 여유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리아와 한울이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자, 호국은 큼큼 소릴 내며 자리를 피해주었다.


“오늘 더욱 예쁘더라···.”


한울의 말에 리아는 사르르 눈웃음을 지었다.


“하려던 말이 있었는데···.”


한울이 말끝을 흐리자, 리아의 붉은 입술이 달싹였다.


“저도 주인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주인님이라···.”


리아의 말에 한울은 싫지 않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두 뺨이 점점 달아올랐다. 리아는 입술에 달콤함을 담았다.


“한울님, 지금 혹시 만나는 사람이 없으시다면···.”


그녀의 말을 이해한 한울은 리아의 뺨에 손을 가져다댔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있어.”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리아의 입술에 자신의 감정을 포갰다.


리아는 그를 거절하지 않았다. 천천히 입을 벌려 그를 상냥히 맞이했다.


오랫동안 호흡을 나눈 두 사람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몸을 떼어냈다.


“리아야, 나와 사랑할래?”


한울의 물음에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아의 목소리가 기분좋게 귓가에 닿았다.


“이미, 이미 오래 전부터. 당신을 마음 속 깊이···.”


머리 위로 무대의 밝은 조명이 마치 새로운 날들을 비추는 태양처럼 빛났다.


일말의 어둠도 허용치 않는 장엄한 빛 아래선 두 사람.


서로의 심장에서 행복이 피어오름을 느끼며, 한울과 리아는 마음을 가지런히 포갰다.


이 세상 어떠한 것도 두 사람의 틈을 가르지 못하도록, 서로의 심장에서 피어오른 기쁨이 연리목처럼 맞닿아 자라도록···.



< 빛 아래 설 너에게 > 마침







'빛 아래설 너에게'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4년 8월 15일, KBS 방송사에서 있었던 00시 기미가요 송출에 분노하여, 하루 만에 구상, 충동적으로 집필을 시작했던 소설이었습니다. 일본을 적으로 두고, 깨부수고 싸워 끝내 이기는 소설을 쓰고 싶었으나, 일본에게 막연한 적개심을 갖기보다는,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스스로의 모든 기량을 펼치는 것이 2020년대의 애국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어, 남성향 판타지 소설임에도 1화부터 히로인의 이야기가 주인공보다 더욱 많이 언급된 기이한 소설을 내놓게 됐습니다. 어둠 속의 리아가 끝내 화려한 무대 조명 아래 섰듯, 한국의 젊은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자릴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틋하게 집필했습니다. <빛 아래 설 너에게>에서 ‘너’는 한민족, 우리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말합니다.


소설을 집필하며, 어머니께 "글을 수단으로 삼지 말아라. 어떤 이유에서든 타인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해선 안된다."는 꾸지람을 재차 받았습니다. 하여, 멋진 일본인 여성 사토 히나와 차분하고 섬세한 일본인 남성, 스즈키 토모야씨 캐릭터롤 추가로 만들었습니다. 번영을 위해 더 이상 타민족을 착취하지 않아도 일본은 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 또한 일본인 스스로 자신들의 어둠을 정화해 자정할 수 있다는 메세지를 함께 담기 위함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았는데, 작가의 역량 부족으로 재밌게 읽으셨을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부족한 작품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앞으로 더 재밌는 글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몸이 가볍고 마음이 편안한 날들 되시길 바라며.

웹소설 작가, 신지연.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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