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교육 17번째 이야기, by 임태희)
대학입시를 바꿔야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하고 절실한 시대 과제가 있을까? 어느 언론인은 " 대학입시를 바꾼다는 것은 대한민국 전체를 바꾸는 것"이라며 "총성 없는 혁명"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총성 없는 혁명이라 더욱 어렵고, 더욱 절실한 싸움이라는 의미였다.
그동안 수많은 교육현장에서 관계자들을 만났고, 치열한 토론과 간담회를 거듭했다. 대학입시가 왜 변하지 못하는지,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인지 결론은‘공정한 평가 방법의 부재’였다. 우리 현장의 역량은 이미 충분하다. 이제 누구나 신뢰하고 인정할 수 있는 평가 체제를 구축하고 제도화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2025. 3. 27,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이 자리에 계신 모든 교육감님께서는 각자의 교육 철학을 가지고 대한민국 미래 교육을 위한 정책과 개혁 방안들을 추진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이 대학 입시 앞에서는 다 물거품이 되고 있습니다. 현장의 역량은 충분합니다. 이제 대입 개혁의 핵심인 공정한 평가 체제를 구축하고 제도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경기교육이 앞장서겠습니다.”
경기교육의 대입개혁방안이 발표된 이후 이어진 나의 발언에 회의장에는 일제히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전국 시·도교육감들은 경기교육의 구체적인 방향과 의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다. 오랜 시간 해결하지 못했던 교육 현안에 대한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접근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한 교육감은 “40여 년 교육자로 살아왔지만, 오늘이 가장 보람되고 의미 있는 날”임을 언급하며 대입 개혁을 위한 경기교육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교육에 있어서는 진보,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학입시에 대한 현장의 고민은 절실했다. 그동안 왜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는지. 방법을 찾고, 대학을 설득하고, 제도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안 되면 투쟁이라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없었던 상황은 나 자신을 더욱 재촉했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더 이상 ‘입시’라는 틀에 갇히지 않도록, 아이들이 더 이상 ‘점수’ 하나로 정의되지 않도록, 학생들이 ‘서열’이 아니라 진정한 ‘성장’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대입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 그것이 곧 대한민국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대입 제도는 고등학교 교육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대입의 평가 방법이 바뀌지 않으면, 수업의 방식이나 교육의 내용도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어렵다. 학교 교육 전체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교육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대입 개혁의 핵심 과제인 ‘공정한 평가 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해 왔다. 대학의 상황과 교육 현장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고, 평가 방식과 평가 항목 등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경기교육이 개발한 시스템은‘AI 기반 서·논술형 평가’이다. 이 평가는 경기교육의 온라인 학습 플랫폼인 ‘하이러닝’을 통해 활용된다. 2025년 7월부터 새롭게 적용된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현재 중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경기교육은 타 시도보다 한 발 앞서 서·논술형 평가를 강화해 왔다. 그러나 당시의 논술형 문항은‘정답 맞히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사고력보다는 암기력 중심의 채점이 이루어졌다. 경기교육의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는 학생 개개인의 논리적 사고력과 창의력, 문제해결력, 자기 주도성을 평가하는데 초점을 둔다. 학생들은 이제 정답을 맞히는 대신, 자신만의 논리적 근거를 기반으로 다양한 답안을 창의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하면서 우려했던 부분은 바로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이었다.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우리 사회는 기준은 매우 엄격하다. 수능에서 한 문항의 오류만 발생해도 평가원장이 책임지고 물러나는 현실에서 “과연 이 새로운 평가 방식이 제대로 정착하고 신뢰받을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경기교육은 이러한 우려를 인식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 체계를 설계했다. 이 시스템은 학생의 본질적인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절차는 다음과 같이 3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AI가 학생의 답안을 교사가 만든 루브릭에 근거해 자동으로 채점한다.
둘째, 교사가 평가 결과를 다시 검토하고 확인한다.
셋째, 채점의 근거를 분석한다.
이러한 평가 시스템은 공정하고 일관성 있는 채점, 학생 맞춤형 피드백 제공 등 평가 전 과정을 표준화하여 원스톱(one-stop) 지원을 한다.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룬 부분은 ‘AI의 채점이 실제 교사 채점과 얼마나 일치하는가’였다.. 그래서 시스템 도입 전까지 시범운영연구회를 운영하며 검증을 반복했다.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AI 채점 결과와 교사 채점 결과의 상관계수는 모두 0.9 이상을 기록했다. 이는 ‘AI가 교사 수준의 판단을 재현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 시스템의 도입은 교육 현장에서도 뚜렷한 변화를 불러왔다. 교사는 채점 부담에서 벗어나 학생 지도와 수업 준비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학생들은 즉각적이고 명확한 피드백을 통해 스스로 학습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학생들에게 학습의 동기를 부여하고, 교사들에게는 창의적이고 깊이 있는 수업 설계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2025년 7월 2일, 경기도교육청에서 ‘2025 디지털 전문 교원 아카데미 성과 나눔 발표회’가 개최되었다. 교원 및 교육전문직원 등 총 500여 명이 참석한 행사에는 하이러닝, 경기온라인학교, 디지털 시민교육,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 하이코칭 등 5개 정책실행 연구회의 중간 성과가 발표되었다. 다양한 교육정책을 소개하는 부스 중에서 참석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분야는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 분야였다.
해당 부스에서는 평가의 운영 원리와 적용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평가 운영 원리와 기능을 체험한 참가자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학생들은 “이제 AI가 구체적인 피드백을 주니까 왜 그런 점수를 받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AI가 이해할 수 있게 글을 더 반듯하게 쓰게 되었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장의 교사들도 “서·논술형 문제를 채점할 때마다 시력과 집중력 문제로 어려움이 많았는데, AI 덕분에 그런 부담이 확 줄었다”,“창의적이고 깊이 있는 다양한 논술 문제를 내고 싶었지만,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 논란 때문에 어려웠지만, 이제 걱정하지 않고 다양한 문제를 낼 수 있게 됐다”라고 호평했다.
행사에 참여한 기자가 직접 시스템을 검증한 결과도 인상적이었다. 고의로 근거 없이 모호한 답안을 제출했음에도 AI 시스템은 정확한 피드백을 제공했다.
기자는 기사를 통해 상세히 검증한 내용을 기술하며 “객관성과 공정성을 모두 확보하는 것은 물론, 학생별로 부족한 점을 정확히 안내해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사고력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교사 역시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위한 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AI 활용으로 확보된 물리적 시간을 수업 준비 및 세심한 학생 지도·관리에 사용함으로써 보다 교육이 교육다워질 수 있는 기회의 제공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게 되었음을 시사했다.
<기사 출처 : AI 활용한 ‘학생 맞춤교육’의 미래를 엿보다 https://naver.me/GA8nyMRT>
공정한 평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를 출제할 것인가’, ‘평가 기준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이른바 정교한 평가 기준, 즉 루브릭(rubric)이 필요하다.
특히 절대평가 체계 안에서 어느 수준을 기본(Basic), 표준(Standard), 핵심(Core)으로 정할지 기준이 필요하다. 즉 최우수, 우수, 보통, 저조, 미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 평가 척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 기준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이미 많은 교사가 수업 속에서 축적해 온 경험의 산물이다. 다만 제도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경기교육은 교사들의 경험을 데이터화하고 합의 가능한 최소한의 기준을 도출하여 현실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 정도면 된다’라는 교사의 공감이 형성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공정한 평가의 기준이 될 것이다.
이러한 평가 기준이 확립되면 각 대학은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입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어떤 대학은 최우수 학생을, 어떤 대학은 보통 이상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과목에 따라서도 우수 이상의 성취를 기대하거나 미달만 아니면 된다고 할 수 있다. 각 대학은 자율적인 선택으로 폭이 넓어진다. 중요한 것은 각 대학의 판단과 기준을 존중하면서도, 기준 자체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틀 안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는 단순한 평가 체계의 개편을 넘어 대한민국 교육의 본질적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다. 평가가 변하면 수업이 변하고, 수업이 변하면 학생들의 학습과 미래가 달라진다. 이를 통해 창의력, 문제해결력, 자기 주도적인 역량을 갖춘 미래 인재 양성이 가능해진다.
교육 혁신은 한 지역, 한 기관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대학과 학교,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의 참여와 협력, 그리고 무엇보다 신뢰가 필수적이다.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교육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우리의 도전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