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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전

오리냐 토끼냐

by 닭죽


동해용왕이 병에 걸렸다. 바닷속 생물들은 매일 기도를 올렸지만 용왕의 병은 차도가 없었다.


상제님께 비옵니다


용왕님의 쾌유를 비옵니다.

바닷속 짐승들 모두가 비옵니다.

물결 따라 고래가 울고

해마 떼도 고개를 숙입니다


상제님, 부디 굽어살피소서.

깊은 바다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임금이 일어나시도록

생명의 숨결을 내려 주소서


조개는 입을 벌려 진주를 뱉고

문어는 다리 모아 기원합니다.

상제님, 우리의 이 간절한 기도

부디 들어주십시오


강원도 바닷가의 거처에 쉬러 와 있던 한 의선이 매일 들리는 시끄러운 기도 소리에 탄식을 했다.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군.”


의선은 용궁으로 향했다.


“나는 강원도에 사는 의술을 아는 신선, 허 아무개니라. 너희 용왕의 병을 고치러 왔다.”


바닷속 생물들이 절을 하고 기뻐하며 의선을 용왕에게 안내했다. 의선이 용왕의 안색을 살피고 진맥을 해보았다.


“용왕님 어디가 제일 불편하십니까?”


“요새 눈도 침침하고 허리도 아픕니다.”


“얼마나 되셨습니까?”


“한 달 정도 되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요새 피부도 가렵습니다.”


“어디가 가렵습니까?”


“손등이 가렵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아침에 눈뜰 때마다 기력이 쇠한 느낌을 받습니다.”


“얼마나 되셨습니까?”


“삼주쯤 됩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소화도 잘 안됩니다.”


“얼마나 되셨습니까?”


“이주쯤 되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귀도 잘 안 들립니다.”


“또 어디가 불편합니까?”


의선이 용왕을 상세히 진찰해 본 결과, 죽을 병도 아니고 중한 병도 아니며 그저 마음의 병 중에서 관심을 요하는 관심병이었다. 의선은 ‘흥’ 하고 마땅찮은 듯 코웃음을 냈다. 의선의 표정이 좋지 않자 바닷속 생물들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용왕님의 병은 고치기 어렵습니다.”


“의선님 제발 우리 용왕님을 살려주십시오. 보물이라면 뭐든지 드리겠습니다.”


“보물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의선은 이 용왕의 꾀병을 어떻게 고칠까 생각하다 그의 거처에 요사이 수가 많이 늘어난 토끼들을 떠올렸다. 토끼들은 그가 심어놓은 당귀, 감초 따위의 약잎을 뜯어먹기도 하고 여기저기 똥도 싸질러 놓았기에 이참에 토끼를 없애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육지에 토끼라는 동물이 있습니다. 이 동물은 매일 영초를 뜯어먹고 낮에는 해님 보고 눕고 밤에는 달님 보고 눕는 게 일인지라 몸 전체에 약성이 쌓여 배출되지 않으니 걸어 다니는 영약입니다. 진귀한 동물이지만 용왕님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약입니다.”


“토끼요?”


“육지에 사는 생물이니 바다 생물들께서는 보신 적이 없겠지요.”


금시초문이라는 듯 어리둥절한 바다 생물들을 위해 의선이 토끼의 생김새를 설명했다.




“하얀 털에 쌓여 있고 눈이 둥글고 순박하며 머리에 기다란 것 한 쌍이 달려 있습니다. 성질이 온순하지만 급하고, 새끼를 많이 낳아요. 다산과 번식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이 토끼를 잡아다 미역, 감태, 해삼, 전복과 함께 바닷물에 푹 삶으면 그 고기가 연하고 쫀득하죠. 맛도 좋지만 양기를 북돋고 음기를 다스려 잡병을 낫게 하고 원기를 보하는데 특효약입니다. 특히 그 간은…”


의선은 눈을 반쯤 감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용왕님께 정말 좋은 건데 어떻게 좋다고 자세히 말할 수가 없구려.”


용왕이 크게 반색하며 말했다.


“말씀만 들어도 병이 나은 것 같으니, 그 약이 정말 특효약인 것 같습니다.”


바다생물들은 기뻐하였다.


“누가 토끼를 잡으러 갈 것인가?”


용맹한 바다 생물들이 저마다 손을 들고 자원했다. 그 용맹한 무리 중 육지와 바다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자라가 뽑혔다. 자라가 용왕에게 절을 하며 굳게 맹세했다.


“제가 반드시 토끼의 간을 취하여 오겠습니다.”


자라는 동해바다에 인접한 강을 통해 육지로 헤엄쳐 들어갔다. 강을 통해 뭍으로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운 좋게 하얀 털에 쌓여 있고 순박한 눈을 지녔고 머리에 기다란 것 한 쌍이 달린 생물을 발견했다. 그것은 강가의 풀숲에 팔자 좋게 누워 있었다.



‘저게 분명 토끼일 것이다. 그림과 똑같이 생겼구나.”’


“선생, 나는 바다 용궁에서 온 별주부 자라요.”


“꽥꽥. 반갑습니다 별주부 나리. 바다 용궁에서 오셨군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곳이 별천지라지요?”


“아름다운 곳이지요. 나와 함께 가보겠습니까? 마침 용왕님 생신을 맞아 연회를 벌이고 있습니다. 벼슬도 드리고 맛난 식사도 대접하겠습니다. 용궁에 오시면 더 이상 흉포한 짐승들에 쫓길 염려도 없습니다.”


“그것 너무나 솔깃한 얘기입니다. 꽥꽥. 그런데 용왕님 생신이라면 선물을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요?”


“선생 자신이 선물인 것… 늠름하고 헌앙하신 선생께서 참석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저희 용궁에 큰 선물입니다.”


“좋아요. 좋습니다. 꽥꽥. 언제 떠납니까?“


“기다릴 게 무어 있습니까. 바로 함께 떠나시지요. 그런데 선생님 성함이 토끼가 맞으십니까?”


“토끼요? 저는 꽥꽥이라고 합니다. 꽥꽥.”


“그럼 토끼가 아닌 겁니까”


오리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혹시나 토끼가 아니라고 하면 용궁에 초대받지 못할까 봐 대충 얼버무렸다.


“뭐, 저희를 토끼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꽥꽥. 저는 꽥꽥대지만. 제 친구 중에는 톡톡이도 있고 끽끽대는 애도 있으니까요.”


자라는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의선의 설명대로 그린 그림과 오리의 생김새가 너무나 일치하였기에 의심을 버리고 오리와 용궁으로 갔다.


“오, 자라선생, 토끼를 잡아오셨군요.”


오리의 생김새를 본 바다 생물들은 모두 자라가 토끼를 잡아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리는 쭈뼛 거리며 용왕 앞에 섰다.


“용왕님 토끼를 잡아 대령했습니다.”


“잘했다. 네가 토끼로구나. 그림과 똑같이 생겼다.”


“네 용왕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꽥꽥. 자라가 말하길 용궁에 가면 잔치를 열고 제게 벼슬을 내릴 거라고 하던데 정말인가요?”


용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간을 내게 주어 내 병이 완치될 것이니 너를 용궁영단헌주로 임명하겠다. 영약을 관리하는 중요한 직책이니 너도 만족하겠지. 매년 너의 기일도 챙겨주겠노라.”


오리가 깜짝 놀라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렸다.


“간이요? 기일요? 꽥.”


“그렇다 내 병이 중하여 토끼의 간만이 나를 고칠 수 있다 하였느니라.”


“아닙니다. 저는 사실 토끼가 아니고 오리입니다. 꽥꽥. 토끼는 저와 전혀 다르게 생겼는데…”


용왕과 대신들이 그림을 가리켰다.



“아닙니다! 꽥꽥. 저것은 오리가 아닙니다. 토끼입니다. 토끼는 귀가 뾰족하고 주둥이가 업..꾸에엑엑..”


“그렇다. 너하고 아주 똑같이 생긴 토끼지.”


부리를 부여잡힌 오리가 더 이상 말을 못 이었다. 곧 뜨거운 가마솥이 준비되고 오리가 그 속에 들어갔다.


그날 용궁연회의 주요리는 오리탕이었고 별미는 오리간이었다.


“정말 부드럽고 맛있구나. 먹자마자 바로 눈이 밝아지는 듯하다.”


특별한 요리가 맘에 들은 듯 용왕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맛있게 배가 부르니 쇠진했던 기운도 회복되고 기분도 좋아지는 듯했다.


“만세, 만세, 용왕님 만세.”


용왕이 웃자 바다생물들이 만세 합창을 했다. 자라는 가장 앞자리에서 만세를 부르짖으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의선은 집 앞마당에 여전히 토끼들의 수가 줄지 않는 데다가 꽥꽥거리던 오리 한 마리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 걸 알았다.


‘여우라도 와서 물어 갔는가.’


자주보다 보니 정이라도 들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약육강식이란 자연의 순환인 것을. 그나마 용왕의 쾌유를 비는 노랫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끊어져 고요함을 되찾은 마음이 평안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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