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평일 아침 여덟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내심 꺼려지곤 했다. 그 시간에 바깥은 휑했다. 아이들은 다 학교에 있고 어른들은 출근해 있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나는 대신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가는 것을 즐겼다. 또는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누비며 놀 만한 사람을 물색했다. 조그만 여자애가 그렇게 혼자 돌아다니면 어른들은 물었다.
“학교 안 갔니?”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할아버지, 마트 아주머니, 식당 아주머니, 버스 아저씨… 처음에 나는 별 경계심 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저는 학교 안 다니고 홈스쿨링 해요.”
대부분은 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오늘만 학교 안 갔겠거니, 하고 일상적으로 던진 질문일 뿐인데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오니 당황하는 분도 있었다. 더러 홈스쿨링은 어떻게 하냐며 캐묻는 분들도 있었다. 내 또래 아이를 두었을 법한 아주머니들이 그랬다. 이따금 학교 공부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을 만나면 조금 찜찜한 마무리를 짓기도 했다. 학교를 안 간다면 무슨 문제가 있으리라, 하는 듯한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뿐만 아니라 친척도 마찬가지였다. 명절에 친가에 가면 늘 듣는 말이 "너는 학교 언제 갈 거냐" 였다. 일부 어른들은 학교를 가야만 비로소 정상적인 아이가 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10년간 홈스쿨링을 하는 동안 이 질문은 참 끈질기게도 받았던 것 같다. 내가 고등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 그 소식을 반기셨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몇 년간 홈스쿨링을 하며 어느새 나는 학교 안 갔냐는 질문을 싫어하게 되었다. 남들 학교 갔을 시간에 혼자 밖에 나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설사 나가더라도 사람을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기에, 필연적으로 사람을 마주치는 상점에 들어가는 것은 정말 달갑지 않았다. 그것은 내게 일어난 조금 충격적인 사건 때문이기도 했다.
평화롭던 평일 낮이었다. 누군가 현관문 벨을 눌렀다. 인터폰에 방문자의 화면이 떴다.
"경찰입니다."
경찰. 무슨 일일까. 느닷없이 집 초인종을 울리는 경찰 아저씨 두 명은 어린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엄마 역시 놀란 얼굴로 문을 열었다. 나는 엄마 뒤에서 그들을 내다보았다.
경찰 아저씨들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의 성함도 알고 있었다. 아동학대. 얼핏 그 단어를 들은 것 같았다. 이후 엄마와 그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른다. 경찰 아저씨들은 금방 떠났고, 공포에 질렸던 나는 안도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그날 오전에 나는 심부름으로 무언가를 사러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편의점에 갔다. 친절한 편의점 아저씨는 내가 왜 학교에 가지 않고 심부름을 왔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평소대로 대답했다.
"저 학교 안 다니고 홈스쿨링 해요."
"뭐? 학교 안 가고 컴퓨터 한다고? 심부름도 하고?"
"아뇨, 홈스쿨..."
"아이고... 너 몇 동 몇 호에 사니?"
"네?"
"몇 동 몇 호에 사냐고."
낯선 사람 앞에서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아저씨의 귀가 좋지 않았던 것인지. 아저씨는 내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속사포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내 이름, 부모님 성함, 아파트 동호수. 나는 이런 것을 왜 물어보는지 영문도 모른 채 우물쭈물하며 겨우 대답했다. 그리고 매우 찜찜한 기분으로 편의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경찰은 신고를 받고 우리 집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별 문제 없이 마무리된 사건이었지만 어린 나에게는 꽤나 충격이었다. 이전에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져 내심 자랑스럽기까지 했었지만, 학교에 안 가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겪으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내게 물어왔다. 학교 안 가고 뭐하냐고. 내 대답은 달라졌다.
"오늘 학교 안 가는 날이에요."
근방 초등학교가 세 군데였기에, 그 중 하나는 쉬겠거니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거짓 반 진실 반. 오늘뿐만 아니라 매일이 나에게는 학교 안 가는 날이라는 말은 삼켰다. 사실 진짜 학교에 가지 않은 이유가 궁금한 사람들은 얼마 없었을 것이다. 학교에 왜 안 갔냐는 질문은 "너는 지금 학교에 있어야 한다" 라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었을 뿐이다.
중학생 나이 즈음에는 대안학교를 다닌다고 말하고 다녔다. 내가 참석하는 홈스쿨링 모임이 대안학교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말할 때마다 기분이 찝찝했지만, 홈스쿨링을 한다고 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내 나이라면 마땅히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어야 할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다소 외로웠던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이 되어서야 눈치보지 않고 밖으로 달려나가 놀았다. 그러나 동네 아이들에게도 학교를 다니지 않는 나는 신기한 존재였다. 간혹 제 엄마에게 가서 "쟤는 학교 안 다닌대" 라며 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를 보는 엄마들의 눈빛은 일단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그럴 때면 나는 차라리 나도 우리 초등학교 이름을 말할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곤 했다.
나는 내가 홈스쿨링을 하는 것이 좋았다. 다만 홈스쿨링을 잘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불편하고 힘겨웠다. 무슨 문제가 있나 싶은 의심 어린 시선, 당황한 시선, 안쓰러워하는 시선, 신기해하는 시선... 그럴 때마다 해명하듯 설명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냥 회피하거나 체념하기를 택했다. 대충 둘러대서 넘기거나, 그런 시선을 빤히 느끼면서도 모른 척하거나.
지금 다시 그런 상황에 부딪친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아이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스트레스. 홈스쿨러로서 겪게 되고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내성적이었던 나에게는 특히나 좋게 떠올릴 수 없는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