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만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
날이 풀렸다. 산은 제 몸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고, 들판에는 생명이 꿈틀댄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괜히 마음이 먼저 열리는 날이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그 예쁜 길가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 놓여 있었다. 쓰레기 더미였다. 처음은 아주 사소했을 것이다. 담배꽁초 하나, 종이컵 하나. 누군가 급하게 버리고 간 흔적. 그것이 신호가 되어 또 다른 누군가가 봉투를 내려놓고, 그다음 사람은 아예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새 고장난 밥솥과 치킨 포장지, 귤껍질까지 서로 뒤엉켜 산처럼 쌓였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인간의 흔적만 흉하게 부풀어 있었다.
그들은 몰랐을까.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다만 이미 더럽혀진 자리에 자기 몫 하나쯤 더 얹는 일이 그렇게 큰 죄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미 무너진 질서 앞에서 양심은 언제나 쉽게 무장해제된다. ‘하나쯤이야.’ ‘이미 더러운데.’ 그런 마음들이 모여 결국 지나가고 싶지 않은 풍경을 만든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사람 생각이 났다. 사람 사이에서도 종종 비슷한 일이 벌어지곤 하니까.
어떤 이유에서든, 어떤 결핍에서든 사람이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그 마음은 곧 방치된 땅이 된다. 물론 처음부터 누군가가 함부로 하지는 않는다. 다만 무심한 말 한마디, 선을 살짝 넘는 행동 하나가 던져지고 그때 아무 말 없이 웃어 넘기면, 그 자리는 ‘넘어도 되는 자리’가 된다.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그런 기척을 잘 안다. 이 사람은 어디까지 괜찮아하는지, 어디까지 침범해도 되는지. 그렇게 한 마디, 두 마디가 쌓이고, 어느 순간부터는 대놓고 선을 넘는다. 예의는 생략되고 존중은 빠진다. 그제야 억울한 마음이 들어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느냐고 묻는다. 그 질문은 틀리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이 사람에게 쓰레기를 던지는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다. 다만 그와 동시에, 아주 불편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질문 하나가 남는다. 처음 그 자리를 허락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싫은데도 괜찮다고 말했던 순간, 불쾌했지만 갈등이 두려워 삼켜버린 말, 모욕에 가까운 언행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넘겼던 그 첫 장면. 안타깝게도 그 시작은,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을 타인이 대신 소중히 여겨 주기를 기대하는 일은 생각보다 드문 기적에 가깝다. 부모조차도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일인데, 하물며 타인이 어찌 알아서 해주겠는가.
사람의 마음도 땅과 같다. 방치된 곳에는 반드시 쓰레기가 모인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해야할 일은 거창한 다짐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선택이다.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기.
불편한 웃음은 짓지 않기.
선을 넘는 말 앞에서 조용히 자리를 옮기기.
그리고 기꺼이 미움받을 용기를 갖기.
그렇게 하나씩 치우고 하나씩 막아내다 보면, 어느새 아무나 쓰레기를 버리고 지나가지 않는 땅이 된다.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그곳이 거칠어서가 아니라, 이미 잘 돌보아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