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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엔진 경고등 자동차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내 삶에 켜진 빨간불

by 달빛서재

새 차를 살 때면, 사람들은 종종 ‘복불복’이라는 말을 한다. 어떤 이는 아무런 말썽 없이 주인의 발이 되어주는 착한 녀석을 만나고, 어떤 이는 뽑은 첫날부터 속을 썩이는 예민한 녀석을 만나기도 한다. 마치 상자 속 선물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그 안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그 상자에서 ‘꽝’을 뽑고 말았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던 워킹맘에게, 자동차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아이들을 태우고 어디든 달려가 주는 든든한 발이자,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잠시나마 나를 지켜주는 아늑한 안식처였다. 오래전 새로 뽑은 차 역시 네게는 그런 소중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 차가 보내온 이상한 속삭임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늘 묵묵하던 그 녀석이 네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계기판에 떠오른 낯선 주황색 불빛, ‘엔진 경고등’이었다. 처음엔 ‘피곤해서 잘못 봤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그 불빛은 마치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생명체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꼭 ‘나 좀 봐주세요, 나 지금 아파요’ 하고 네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불안한 마음은 점점 커져갔다. 한 번은 아이와 함께 강남대로 한복판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주황색 경고등이 번쩍 켜지며,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경고음까지 울렸다. 순간, 이대로 차가 멈춰버릴지도 모른다는 아찔한 공포가 온몸을 덮쳤다.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아이와 단둘이 갇혀버리는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매일같이 나를 위로해 주던 운전대가, 어느새 제게는 극심한 스트레스의 근원이 되어버렸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 보이지 않는 진심


하지만 자동차 회사의 서비스센터는 제 마음과 달리 너무나도 태연했다. 나는 몇 번이고 센터를 찾아가 불안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언제나 똑같았다. “글쎄요, 점검해 봤는데 별다른 원인을 찾을 수가 없네요.” 엔진 경고등뿐만 아니라, 자동차는 여기저기서 자잘한 문제들을 일으키며 계속해서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나중에는 더 큰 사업소에 예약을 하려 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차는 접수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정말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네 목소리는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차를 잘 모르는 여자 운전자’의 예민한 불안쯤으로 여기는 듯한 그 태도에, 나는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잊고 있던 약속, 그리고 나의 결심


그렇게 지쳐가던 어느 날 밤이었다. 문득, 차를 살 때 받았던 계약서의 한 문구가 머릿속을 스쳤다. ‘엔진 및 동력계통 5년 또는 10만 km 무상보증.’ 제조사가 내건 소중한 약속이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보증 기간이 남아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들의 안일한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만 끌어서 이 보증 기간만 넘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이 거대한 벽 앞에서 작아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 아이와 나의 안전이 달린 문제 앞에서, 소비자의 마땅한 권리를 온전히 찾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번에도 나의 무기는 ‘꼼꼼한 기록’이었다. 나는 소비자원(1372)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동안의 모든 이야기를 차분히 설명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소리가 났는지 찍어둔 수많은 사진들, 서비스센터 방문 기록과 담당자의 이름, 그들이 했던 말까지 전부. 제 서툰 목소리 너머로, 흔들림 없는 사실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작지만 소중한, 나를 위한 승리


그러자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소비자원을 통해 제 이야기가 전달되자, 서비스센터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그들은 네 차를 정밀 검사했고, 마침내 ‘엔진 결함’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몇 달간 애를 태우던 문제의 진짜 원인이 밝혀지는 순간, 안도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거봐, 내 말이 맞았잖아. 우리 차가 아픈 게 맞았잖아.’


이것은 단순히 차를 고친 경험이 아니었다. 부당함 앞에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내 삶의 문제를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손으로 직접 해결해 나가는 용기를 얻은 귀한 성장의 시간이었다. 나의 작은 목소리가, 나의 꼼꼼한 기록이, 나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은 소중한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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