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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홀 보상, 그 복잡하고도 인간적인 과정에 대하여

정작 찌그러진 것은 내 마음이었다

by 달빛서재

2년 전, 차가운 겨울비가 내리던 밤이었다. 와이퍼가 쉴 새 없이 창문을 닦아냈지만, 어두운 도로 위는 온통 검은 강물처럼 일렁였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마음을 다잡고 최대한 안전하게 운전하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쿵!’ 하는 둔탁한 굉음과 함께 차가 격하게 흔들렸다.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실감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계기판에는 타이어 공기압에 이상이 생겼다는 경고등이 섬뜩하게 떠 있었다.


가까스로 차를 갓길에 세우고 확인한 결과는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 타이어는 날카롭게 찢어져 있었고, 단단해야 할 알루미늄 휠까지 힘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늦은 밤, 보험사를 부르고 2차 견인까지 해가며 사고를 수습하느라 그날의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그날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찌그러진 휠이나 예상치 못한 지출이 아니었다.


차가 아니라, 마음이 찌그러졌다


다음 날 찾아간 정비소에서, 나는 더 깊은 상처를 받았다. 수리 절차를 문의하는 내게, 정비소 직원은 힐끗 쳐다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에이, 포트홀 사고는 원래 보상받기 힘들어요.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셔야지.”


그의 건조한 말투보다 더 아팠던 것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무심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 속에는 ‘여자가 뭘 알겠어’, ‘유난스럽게 뭘 이런 걸로 보상을 받으려고 해’라는 명백한 무시와 편견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내 차의 휠이 아니라 내 마음이 더 깊고 아프게 찌그러지는 기분이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마주하게 되는, 말없이 상대를 무력하게 만드는 바로 그 눈빛이었다.


나는 포기하는 대신, 지도를 그렸다


그날 밤, 잠들기 전까지도 정비소 직원의 눈빛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안된다’는 그 말이 정말 맞는지, 내 힘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부당함 앞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나의 존엄에 관한 문제였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사고 현장으로 다시 나갔다. 다른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짓밟힌 내 마음을 위해서였다. 경찰서에 정식으로 사고를 신고했고, 잠시 후 도착한 경찰관들의 도움으로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현장 사진과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길 위의 싸움’을 위한 나만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감정적인 호소 대신, 객관적인 자료와 정당한 절차라는 나침반을 따르기로 했다.


사고 위치와 차량 파손 상태를 담은 사진과 블랙박스 영상을 정리했다. 수리 견적서와 영수증을 날짜별로 빠짐없이 챙겼다. 사고 도로의 관리 주체인 시흥시청에 제출할 서류 양식을 찾아 꼼꼼히 준비했다.


막막했지만, 하나씩 절차를 밟아가니 안갯속 같던 길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게, 길은 열린다


며칠 뒤, 기적 같은 연락을 받았다. 시청 담당자로부터 타이어와 휠 교체 비용 전액을 보상해 주겠다는 답변을 받은 것이다. ‘원래 안 된다’ 던 세상의 말은 틀렸고, 포기하지 않았던 나의 믿음이 옳았다는 것을 내 손으로 직접 증명해 냈다. 그 순간의 기쁨은 망가진 차를 고쳤다는 안도감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더 크고 단단한 것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배웠다. 부당함 앞에서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배우고 문을 두드릴 때, 세상은 반드시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나의 정당한 목소리는, 그 어떤 편견과 무시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는 가장 단단한 무기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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