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레이스에 함께 뛰는 페이스메이커
아이의 시험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시간, 그 공기의 무게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2년이라는 시간을 수험생 딸의 곁에서 보내기 전까지는, ‘그래서 결과가 어떻대?’라며 과정보다는 결과에만 무심코 관심을 두던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그 어둡고 긴 터널을 건너고 나니,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결과를 향해서가 아닌, 그 힘든 과정을 꿋꿋이 버텨온 아이의 등을 향해 먼저 말을 건네게 되었다. “정말, 고생 많았다.”라고. 감히 이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넬 수 있기까지, 그 시간들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워킹맘의 하루는 늘 아이들에게 미안함의 연속이었다. 평일에는 온전히 시간을 내주기 어려웠기에,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미안함을 갚고 싶은 마음에, 주말이 되면 기꺼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대치동 주민’이 되었다.
주말의 대치동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면서도 눈은 책에 고정한 아이들, 삼삼오오 모여 어려운 문제를 토론하는 아이들. 그 치열하면서도 반짝이는 공기 속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처음에는 학원 상담조차 어색해서, 아이들 스케줄표를 수첩에 빼곡히 적어 들고 가야만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그런 경험들이 쌓여, 어느새 아이의 길을 함께 고민하고 방향을 찾는 든든한 ‘전략가’가 되어가는 내 모습이 보였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치열한 시간을 보냈기에, 얼마 전 아들 문제로 낙담한 친구에게 확신을 가지고 말해줄 수 있었다.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그 학교, 꼭 성적으로만 가는 길이 있는 건 아니야. ‘논술’이라는 또 다른 문이 있다는 건 확인해 봤어?”
바로 내 두 딸이 그 ‘논술’이라는 문을 통해 꿈에 그리던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고에 다녔던 막내딸이 수시 원서 여섯 개를 모두 논술 전형으로 쓰겠다고 했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어머님, 지금까지 우리 학교에서 논술로만 대학을 간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너무 위험한 선택입니다.”
30분이 넘는 긴 통화였다. 선생님의 걱정 어린 목소리 너머로, 저는 책만 펼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던 딸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떠올렸다. 학교 성적표에는 다 담기지 않는 아이의 강점을, 엄마인 나는 누구보다 선명하게 보고 있었다.
수시 원서를 쓰던 날, 딸아이는 미리 준비해 둔 지원 리스트를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보통의 아이들처럼 성적에 맞춰 학교를 정하는 대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꿈을 꾸는지에 대한 오랜 고민의 결과였다. 선생님의 걱정 어린 전화는 바로 그 뒤에 걸려왔다.
전화기 너머 선생님께 차분히 설명했다. 우리 딸이 왜 ‘6 논술’을 써야만 하는지, 아이가 가진 책에 대한 사랑과 글에 대한 재능이 얼마나 큰 힘이 될 것인지에 대해 진심으로 말씀드렸다. 그리고 우리는 흔들림 없이 소신껏 원서를 썼다.
결론부터 말하면, 딸은 보란 듯이 논술로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입시 전문가가 있다. 하지만 내 아이의 지난 18년의 모든 순간을 지켜보고, 그 아이가 무엇에 웃고 무엇에 우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반짝이는지를 아는 최고의 전문가는 바로 ‘부모’다. 학교라는 시스템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내 아이의 강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가장 좋은 길로 연결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정확한 컨설팅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