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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준 사람

당신만은 내 편이었다

by 달빛서재

스물넷, 네 인생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단단한 꿈을 안고 금형설계 학원의 문을 열었다. 교실 안은 온통 남자들이었다. 제도판 위에 복잡한 도면을 그리는 그들의 열기 속에서 여자는 단 두 명뿐이었다.


남성들의 세계로 여겨지던 그곳에서, 나는 주눅 들기보다 오히려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반드시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런 내 곁에, 유난히 말이 없고 묵묵히 자신의 도면에만 집중하던 한 사람이 있었다.


강산이 세 번하고도 남을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그는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바라본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하고 때로는 나 자신마저 흔들릴 때, 내가 가장 든든한 목소리로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이름, ‘내 편’. 오늘은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결혼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참으로 많은 길 위에서 헤매고 방황했다.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무엇이 되고 싶은 사람인지도 모른 채 세상에 뛰어들었다.


이 길이 맞나 싶어 한참을 걷다가 주저앉아 울기도 했고, 엉뚱한 길로 들어서 넘어져 무릎이 깨지기도 했다. 나의 젊은 날은 그렇게 수많은 갈림길과 상처로 얼룩져 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그는 우직한 나무처럼 ‘금형설계’라는 단 하나의 길을 의심 없이 걸어왔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았고, 그 길 위에서 자신의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했다.


지금도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가로 인정받는다. 그렇게 단단한 뿌리를 내린 그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방향을 잃고 폭풍우에 휩쓸리던 나는 다시 나아갈 용기를 얻곤 했다. 흔들리는 내 인생이라는 작은 배에, 그는 거친 바다를 비추는 등대와 같았다.


세상에 홀로 남겨졌던 가장 시린 계절



내 인생이 가장 어둡고 시린 계절을 지날 때, 그 등대의 불빛은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3년 전, 하루에도 몇 번씩 안부를 묻던 친정엄마가 아주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전화벨이 울리면 당연히 ‘딸아’하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는데, 세상이 무너진다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이미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던 나는, 이제 세상에 기댈 곳 하나 없는 완전한 고아가 되었다는 생각에 남편 앞에서 엉엉 울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가만히 안아주며 나직하게 말했다.


“나도 고아야.” 그 순간, 우리는 그저 부부가 아니라 세상에 단둘뿐인 동지가 되었다. 함께 고아가 된 우리는, 서로의 남은 세상이 되어주기로 침묵 속에서 약속했다.


하지만 슬픔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엄마가 떠나고 6개월 뒤, 아버지처럼 든든했던 친정오빠마저 허망한 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텔레비전에서 월드컵 축구 예선전 중계방송이 한창이던 그날 밤, 오빠는 지인들과 함께 있던 곳에서 사고를 당했다. 세상이 떠들썩한 함성으로 가득했지만, 나의 세상은 가장 깊고 차가운 침묵 속으로 잠겨버렸다.


응급실의 차가운 공기, 하얀 시트 위로 보이던 오빠의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그 후 6개월 동안 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웠고, 겨우 잠이 들어도 악몽에 시달리며 비명을 지르다 깨기 일쑤였다. 내가 속절없이 부서져 내리던 모든 순간, 남편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있어 주었다.


섣부른 위로나 조언 대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내 곁을 단단히 지켜주었다. 그의 존재는 소용돌이치는 슬픔 속에서 나를 붙잡아주는 유일한 닻과 같았다. 그 말 없는 온기, 침묵의 위로가 내게는 세상 그 어떤 말보다 큰 힘이 되었다.


오빠를 향한 애도의 시간을 힘겹게 통과하며, 나는 다시 나의 시간을 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퇴근 후, 나는 나만의 작은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공부를 한다. 한때는 욕심을 내어 새벽 늦게까지 나를 몰아붙였지만, 지금은 남편과의 약속으로 밤 12시까지만 책상에 앉는다.


나를 지켜주는 아주 특별한 방식


보통 우리는 12시에 함께 잠자리에 들곤 한다. 하지만 새벽 일찍 일어나 도면을 그려야 하는 남편은 보통 저녁 9시면 먼저 잠이 든다. 퇴근 후 집안일을 마치고 9시가 넘으면, 나는 남편이 깰까 조심스레 안방 책상에 앉는다.


9시 전까지 거실 소파에서 새우잠을 청하던 남편은, 꼭 12시가 되면 마치 알람이 울린 듯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한다. “이제 그만 자자.” 그 다정한 한마디에, 나는 비로소 치열하고 고단했던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그의 곁에 눕는다.


때로는 내가 먼저 지쳐 잠자리에 드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이면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약속처럼 말한다. “오빠,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칠흑 같던 밤, 홀로 공포에 떨며 잠 못 이루던 나를 기억하기에 건네는 그의 가장 따뜻한 약속이다.


‘네가 잠든 사이에도 나는 깨어 너를 지키고 있으니, 무서우면 아주 작은 소리라도 괜찮으니 망설이지 말고 나를 부르라’는 세상 가장 든든한 신호다.


당신의 든든한 편이 되어


이제 나는 더 이상 가위에 눌리지 않는다. 한때는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지독한 외로움에 몸서리쳤지만, 지금은 분명히 안다. 내게는 언제나 내 편인 그가 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두 딸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다시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나의 ‘내 편’이 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나를 지켜주었듯,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든든한 편이 되어주고 싶다.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그런 다정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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