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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by 달빛서재

이 책의 첫 페이지는, 솔직히 말해 ‘살아남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몸과 마음의 병으로 오래 아팠고, ‘우리 엄마처럼 살지는 말아야지’ 하는 아픈 다짐 하나를 붙들고 평생을 달려왔다. 글쓰기는 그런 나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숨구멍이었고, 상처투성이인 나를 스스로 안아주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딸의 고백, ‘엄마처럼은 못 살아’


그렇게 글을 쓰며 나 자신과 조금씩 가까워지던 어느 날이었다. 훌쩍 자라 이제는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친구가 된 두 딸과 이야기를 나누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듣게 되었다.


“엄마, 나는 엄마처럼은 못 살아. 엄마 삶은… 너무 치열했잖아. 존경스러워서 못 따라 하겠어.”


딸의 그 한마디가 내 마음에 쿵, 하고 내려앉았다. 장난기 섞인 미소 뒤에 숨겨진 딸의 진심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회사와 살림, 그리고 배움을 놓지 않으려 밤을 새우던 엄마. 그 모든 것을 해내면서도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엄마의 시간들을, 그저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는 고백이었다.


나의 아픔이 ‘존경’이 되던 날


나는 그 말 앞에서 한참을 먹먹했다. 내 평생의 숙제는 ‘엄마의 삶’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딸은 나의 그 고단했던 시간을 보며 ‘엄지 척’을 해주고 있었다.


내가 지워버리고 싶었던 나의 과거가, 사랑하는 딸의 눈을 통해 ‘존경’이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와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어쩌면 인생에서 진짜 성공이란, 이렇게 내가 걸어온 길을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따뜻하게 확인받는 순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처음으로 마음을 가득 채웠다.


스스로 찍었던 낙인과 화해하며


어느덧 유방암 수술을 받은 지도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병마와 싸우던 고통의 시간보다, ‘나는 암 환자’라는 낙인을 스스로에게 찍고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았던 시간이 더 아팠다.


그 낙인 뒤에 숨어 수많은 감정들을 억누르고 담아두었다. 이제는 이 글을 통해, 그 아픔과 응어리들을 하나씩 풀어낼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다짐


내 아이들에게는 내가 겪었던 결핍 대신, 더 많은 경험과 사랑을 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꿈꿀 수 있도록,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었다. 주위에서는 아이들에게 너무 올인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지만,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에 나 역시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 사랑하는 두 딸은,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관문 앞에 서 있다. 내년이면 분명 멋진 날개를 활짝 펼칠 것이라 우리 가족 모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의 세상으로 힘껏 날아오르는 바로 그날, 나 또한 나의 세상에서 오랫동안 미뤄왔던 나만의 꿈을 펼칠 것이다. 50이 넘은 지금, 나는 비로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이제는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제는 제대로 ‘자격’을 갖추려 한다. 내 아픔과 경험을 그저 한 개인의 푸념이나 신세 한탄으로 치부하는 세상의 시선 앞에서, 더는 주눅 들지 않기 위해서다. 제대로 배우고 공부해 단단한 전문가가 되어, 그 누구도 나의 이야기에 함부로 제재를 가하거나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도록, 나의 목소리를 온전히 지키고 싶다.


완벽하지 않은 당신의 지도를 응원하며


딸의 고백은 그런 나에게 ‘당신은 충분히 잘해왔다’고 말해주는 졸업장과 같았다. 이제 나는 안다. ‘내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반짝이는 트로피를 손에 쥐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걸어온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흘린 땀과 눈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알아주고, 마침내 나 스스로도 그 시간들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게 되는 것. 바로 그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도 나만의 지도를 그려나간다.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삐뚤빼뚤하지만, 오직 나만이 그릴 수 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지도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만의 길 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길을 잃은 것 같아 불안하고, 때로는 지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넘어져도 괜찮고,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 당신의 세상 또한, 당신이 내쉬는 모든 숨결 속에서 분명 더 단단하고 넓어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세상의 주인으로, 나의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갈 것이다. 나의 글이, 나와 비슷한 상처를 가진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공감이, 길 위에서 헤매는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


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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