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학부연구생 시절, 열정페이였구나?

그 시절, 당연했던 비정상

by 선인장

그동안 내가 겪었던 굵직한 일들을 떠올려 본다.


학부연구생으로 보냈던 시간은, 지금 생각하면 극악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자각조차 없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 봐도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10년 전, 학부연구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누구보다 먼저 면담을 신청했다.


전공은 좋았다. 솔직히, 내가 바라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전공에 흥미를 느끼게 되자 자연스럽게 ‘이 전공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R&D 분야가 궁금하기도 했고,
교수님들마다 운영하는 실험실에 학부생도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인기 있는 랩실은 TO가 빠르게 마감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안에서 경험을 쌓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빠르게 면담을 신청했고, 결국 그 랩실에 들어가게 됐다.


출근은 오전 8시 반, 퇴근은 저녁 6~7시. 토요일도 출근.
주말이나 저녁에 샘플이 도착하면 실험 보조를 해야 했다.
방학도 없었고, 동일한 출퇴근 조건이 유지됐다.
인건비는 없었다. 명절에 용돈을 받는 정도?


지금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게 ‘당연한 문화’였기 때문이다.


내가 있던 랩실은 미생물 실험을 주로 다루는 곳이었다.
학부생의 일과는 배지 제조, 실험 전처리, 실험 종료 후 자리 정리 등등
대학원 선배가 밤늦게 배지가 필요하다고 하면, 만들어놓고 가야 했다.


그 생활을 3년 가까이했다.

주변 모두가 그렇게 생활하고 있었기에, 나 역시 그게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처우가 나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학부연구생 수 자체도 굉장히 줄었다고 한다.


학생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배움’이라는 명분 아래 노동의 대가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 관행,
분명한 문제다.


누군가 아직 이런 상황에 있다면 그 생활은 당연한 게 아니다.




20여 명의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인간관계는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느꼈던 건
“그래도 사람들은 괜찮았다”는 것이다(늦은 시간 배지 만들어 달라는 선배는 나빴다).


일은 고됐지만, 분위기나 관계는 꽤 좋았다.
처음으로 공동체 생활이란 걸 체험했던 시간.
그래서였을까—그 랩실은 유독 석사로 자대 진학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나 역시 여러 고민이 있었지만, 결국 이곳에서 석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만큼, ‘사람’은 중요했다.


그런데,
석사에 들어가서야 알게 됐다.
그렇게 단단해 보였던 유대 관계도,
사람 하나로 인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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