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보다 힘든 것
랩실에서 보내온 시간 중 가장 버거운 일이 무엇이었을까.
실험보다 어려운 건 언제나 '사람'이었다.
복잡한 실험 설계나 수치보다,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일어난 미묘한 갈등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었다.
랩실은 매 학기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구조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20여 명으로 구성된 고정된 규모 안에서 사람은 계속 바뀌었고,
그 흐름 속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겪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람을 보면 판단이 빠르게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꽤 높은 적중률을 보였다.
반전은 거의 없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다. 틀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겪어온 경험을 토대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게 되었다.
랩실이라는 공간은 일반적인 조직과는 또 다른 특수성이 있다.
모두가 학위를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미완성의 전제'가 깔려 있다.
그 전제 아래에서는 어떤 부족함에도 면죄부가 쉽게 주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단순한 성과보다도 ‘어떤 태도로 배우려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사람들을 크게 세 집단으로 나누어 보게 되었다.
잘하는 사람 15%, 평범한 중간집단 50%, 그리고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소수의 집단 35% 정도.
내가 생각하는 '잘하는 사람'의 조건은 단순하다.
예의 바름,
성실함,
책임감,
그리고 일머리.
모두 당연한 말 같지만, 실제로 이 네 가지를 고르게 갖춘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이 중 절반 이상만 충족하더라도, 실수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실수에 대한 태도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중간 집단의 사람들은 이 네 가지 중 하나 정도는 장점으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큰 갈등은 없지만, 특별한 인상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나름대로 정의한 '부정 집단'은 조금 다르다.
아래와 같은 특징 중 하나만 있어도, 나는 그 사람과의 거리를 두게 되었다.
저급한 단어 사용
일머리가 심각하게 없음
여왕벌 기질
강약약강 태도
자기애가 과한 나르시시즘
반복되는 문제행동, 소위 '갱생 불가 빌런'
이런 유형의 사람들과 일하면서 나는 처음엔 참 노력했다.
좋게 말하려 애썼고, 함께 맞춰가려고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느낀 건 하나였다.
사람은, 대부분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애쓰지 않기로 했다. 이건 단절이 아니라 거리 두기다.
관계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말 그것만이 최선일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질문이 있다.
나는 이 사람들 사이에서 후배였고, 동등한 위치의 동료였으며, 이제는 선배로 존재하고 있다.
후배일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잠겼고, 동료일 때는 ‘같은 집단에 속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버겁게 느껴졌다. 선배가 되어서는 이 사람이 조직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타이르기도 하고, 때로는 정색하며 단호하게 표현도 해보았다.
변화를 믿고 시도했던 많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 결과는 대개 같았다. 한동안 달라진 듯 보이다가도 결국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곤 했다.
사람은 정말 변하지 않는 걸까.
그런 노력이 결국 의미 없는 일이었던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내 자리에서 해야 할 역할을 다하지 않은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이 고민은 지금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질문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 글은 그 시간을 기록해 두는 일이다.
나처럼 긴 시간을 조직 안에서 보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감각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