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박사, 진행 중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도 멀었다

by 선인장

지금은 박사과정 진행 중이다.

수료를 마치고, 졸업이 가까워진 시점이다.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싶다.


사실 석사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박사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석사를 마칠 무렵,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날 때려죽여도 박사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렇게 석사를 졸업한 해, 연구원 인턴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대학원을 마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과의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박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다음 해,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지금이다.


박사과정은 아직 진행 중이라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하나 확실한 건 석사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석사 때는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했다.

매일 버텨내느라 하루하루가 벅찼다.


지금은 ‘나는 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새로운 일이 주어져도 두렵지 않다.


물론 여전히 공부해야 할 것은 많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걸 점점 더 실감하고 있다.


때때로 “이제는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사람들을 본다.

나는 그 말이, 그 사람이 아는 것이 그뿐이라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아무튼 이제는 어떻게 빠르게 습득하고,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을지 안다.

무엇이든, 분야를 불문하고 관통하는 공통된 구조가 있다는 걸 느낀다.

언젠가 이 흐름을 더 정확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오히려 더 어려운 건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점점 관리자 역할을 맡게 되었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무겁게 느낀다.


내가 직접 하면 금세 끝낼 수 있는 실험이나 작업들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기다리고, 관계를 유지하며 조율해야 한다.

답답한 순간도 많다.

내가 100을 알려줘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정도는 정말 다르다.

물론 그 이유 중 일부는 내가 더 잘 가르치지 못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박사학위를 받은 선배들이 곧잘 하는 말이 있었다.

"박사를 왜 PhD라고 하는지 알아? doctor of philosophy, 박사를 취한 사람들은 철학자라는 거야."


이 말을 꽤 여러 명에게 들었다.

솔직히 예전에는 괜히 있어 보이려고 으레 하는 말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 정도 그 말에 공감이 되기 시작한다.

박사과정을 동안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하고 있는 삶에 대한 고찰이 매 순간 우리를 하나의 철학자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더 많은 걸 알아가지만, 그만큼 더 많은 걸 모른다는 걸 실감한다.

아마 이건 끝나도 끝난 게 아닐 거다.

결국 이 과정의 본질은 학위라는 해답이 아니라 버텨낸 시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과정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응원의 말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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