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석사시절, 미생물의 시간에 맞춰진 인간

잠은 죽어서 자자고? 죽기 전에 자라

by 선인장

그래도 학부연구생을 해온 시간이 있는데…

그건 정말 일부였다.


물론 실험 방법을 익히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놀랐던 건, 학부생이 퇴근한 이후에도

밤에도 너무 많은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우선 ‘미생물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시작이었다.


많은 실험들이 있지만 이 실험이 포함된 시기들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다.


어떤 시료에서 단일 균주를 확보하고,

이 균이 맞는지 동정하고,

확인되면 그 균의 생활사를 파악한다.

그 이후에야 본격적인 실험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생활사 파악이라는 게… 정말 체력적으로 힘들다.


간단히 말하면, 내가 분리해서 동정한 a라는 세균이 있다.

이 세균이 어떤 조건에서 몇 시간에 걸쳐 성장기를 거쳐 사멸기로 들어가는지

그 시간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최적의 컨디션의 균을 반복적으로 일정하게 실험에 활용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파악하려면 2~3일 동안, 3시간마다 실험을 반복해서

데이터를 누적해야 한다.


하… 하루까지는 어떻게든 한다.

하지만 30시간 정도 지난 시점부터는 정신력으로 버틴다.


그래도 이 일만 하다면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다른 일들을 하면서 이 작업을 병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미생물을 다루는 실험은

사람이 직접 몇 날 며칠을 들여야 겨우 결과 하나가 나온다.

그 결과라는 게, 그래프나 표로 정리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균이 정상적으로 자라서

이제 실험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전부다.

(물론, 실수나 변수가 없이 성공했을 경우에 한해서다.)


그리고 실험을 하려면, 모든 게 멸균 상태여야 한다.

이게 생각보다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한 번 엎어지면 며칠, 운이 좋으면 일주일,

그 이상이 그냥 없던 일이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결과를 제때 내야 하는 상황에선

몸과 마음이 정말 힘들어진다.


물론 이런 시행착오는 경험으로 쌓여 도움이 되긴 한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실험만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잡무… 잡무가 너무 많다.


돈을 쓴 것을 증빙하기 위한 각종 서류

교수님의 각종 대외활동 보조(가끔은 사적인 부탁도 있다.)

회의 준비

수업 조교 준비

학과 행사 관련 업무

재고관

툭하면 오는 안전점검

학부생 교육

그 외, 기타 등등


미생물과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참 쉽지 않은 나날이었다.


미생물의 생장 곡선을 따라가면서, 내 일상은 파열되었고,
실험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실험 외적인 일에 쏟아야 했다.
‘대학원생’이라는 직함은, 실험실 안팎의 모든 일을 당연하게 요구한다.
그게, 지금까지 버티며 깨달은 이곳의 구조다.


그렇게 버티며 얻은 결과는… 참혹했다.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겠다. 다만, 이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만 전하고 싶다.


“제발, 몸 챙겨라.”


나는 한때 ‘잠은 죽어서 자면 되지’라고 믿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니다.


죽기 전에 자라.
후회하기 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몸을 망쳐가며 버티는 건 미련한 일이다.
일보다 먼저 지켜야 할 건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부디 잊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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