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각종 회의와 보고의 나날

보고의 민족, 대학원생

by 선인장

제안서가 통과되고, 연구가 시작된다.
그와 동시에 각종 회의와 보고도 함께 시작된다.


처음에는 ‘착수보고’,
연구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 ‘진도보고’,
일 년 단위의 경과를 정리하면 ‘연차보고’,
모든 과제가 끝나면 ‘최종보고’.


그리고 그 중간중간 또 다른 이름의 회의들이 끼어든다.
‘킥오프 회의’, ‘월례회의’, ‘자문회의’, ‘성과점검회의’ 등등.
회의를 위한 회의, 보고를 위한 보고가 이어진다.


누가 이 모든 걸 준비하냐고?
교수님 한마디에 달린 대학원생이다.


물론 모든 과제가 이렇지는 않다.
어떤 과제는 1년에 한 번 보고서만 내면 끝나고,
어떤 과제는 위에 나열한 모든 단계를 다 거쳐야 한다.
더 힘든 건, 그런 과제를 한 개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경험상, 연구재단이나 출연연 과제처럼 자율성이 높은 과제일수록 보고가 적은 편이다.
기업 과제는 기업 성격마다 다르지만, 비교적 짧고 빈번한 상황 공유 회의가 많은 편이고,
보고서 작성과 회의가 가장 많은 건 단연 ‘용역과제’다.
주관기관 입장에서는,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관리하려는 개념인 듯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학생’인 우리가 이런 보고를 이렇게 많이 해야 할까?


대학원생만 ‘학생’이다.


이 연구의 책임자인 교수님, 이 연구를 필요로 한 기관의 담당자들은 모두 ‘직장인’이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책임을 수행하고 있고, 보고 역시 그 일환이다.


그 사이에서 가끔 괴리감을 느낀다.


이런 구조는 어딘가 기묘하다.
책임 없는 실무자이자, 발언권 없는 수행자.
그게 대학원생이라는 이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학생’은 수행자일뿐 책임자가 아니다.

(물론 학생에게 책임을 묻는 못난 교수님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이 ‘학생’이라는 신분 아래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수를 줄여나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언젠가 책임을 진짜로 지게 될 그날을 위해.


실제로 박사 졸업 후 사회로 나가면, 과장급 이상의 직함이 주어지는 경우도 많다.
방금 전까지 ‘학생’이었던 사람에게 그런 타이틀이 붙는 이유는,
이런 과정을 이미 충분히 겪어왔으리라는 신뢰가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학생’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걸 배우는 과정이라지만,
실은 사회 시스템에 들어가기 전에,
책임과 권한이 분리된 구조에 먼저 적응하는 훈련을 받는 건 아닐까.


물론 그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학생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금세 밑천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아무튼 간에,

실험이 하고 싶어서, 공부가 좋아서 대학원에 온 사람들이
이런 회의와 보고 속에서 종종 괴로워하는 모습을 봐왔다.
“왜 이런 걸 해야 하냐”며 의문을 던지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언제 누가 대학원이 실험과 공부만 하는 곳이라 했던가.
그건 그저 본인의 생각이었을 뿐이다.


현실은 이렇다.
그리고 이 길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미리 보는 현실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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