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데이터 아닌 또다른 숫자의 세계
대학원으로 들어오면서 선배의 조언 중 하나
“통화요금 무제한으로 바꿨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한마디에 너무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런 기사를 본적이 있다.
연구현장 95% "연구행정이 연구에 영향",47% "현재의 연구행정 운영은 비효율적"
너무나 공감하면서도 의문이다.
47%만 비효율적이라 했다고? 그 이상이 아니라?
이 문제를 실제로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말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연구비…
이렇게 비효율적이고, 연구에 지장을 줄 정도로 행정처리가 많아지는 건
아무래도 아직까지도 간헐적으로 터지는 연구비 횡령 때문일 것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시스템은 점점 더 귀찮게, 복잡하게, 까다롭게 만든다.
결국 “돈을 허튼 데 쓰지 말라”는 메시지를 최대한 피곤하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너 경리학위 있으면 받아도 되겠다.”
대학원 다니면서 들은 말이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지만, 연구행정이 연구에 주는 영향은 예상보다 훨씬 크다.
때로는 연구에 명백하게 지장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행정을 모르는 사람은 과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해왔다.
“연구비개발관리지침”
진짜 토 나올 만큼 본 것 같다.
연구수당, 인건비, 간접비, 국내여비, 재료비, 회의비 등등.
여비 처리하려면 그날 유가를 확인해야 하고,
오피넷 사이트도 처음 들어가봤다.
온갖 계약 구비서류,
보증보험이란 것도 처음 알았고,
'천공'이라는 말도, 거기서 처음 배웠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전혀 모르던 행정과 회계의 세계가 펼쳐진다.
가장 힘든 건 이 모든 기준이 기관마다 전부 다르다는 점이다.
동일한 비목에 대해 갖춰야 할 서류가 같은 듯 다르고,
매번 다시 확인하고 수정해야 한다.
그나마 긍정적인 상황은
담당 산학협력단 직원이 경험이 많고 친절해서
필요한 구비서류를 바로바로 알려주는 상황이다.
이럴 때는 정말 “아, 이래서 산단 직원이 중요한 거구나” 싶다.
이러한 부분들이 산학협력단분들 존재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악의 경우,
내가 처음 담당하는 기관의 연구과제의 담당 산단 직원도 신참일 때다.
와 이건 정말..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상황, 은근히 자주 생긴다.
산학협력단 직원이 계약직이 많아서 그런걸까 생각보다 인원이 자주 바뀌었다.
어느때는 내가 그분을 알려주고 있을 때도 꽤나 있었다.
그럼 진짜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건가 싶은 생각이 진지하게 든다.
모든 행정서류들은 스캔하고, 인쇄해서 파일로 정리한다.
이 자료들이 언제 빛을 발하는가?
과제 종료 00일 전, 정산기간.
보통 과제는 공식 기간의 한 달 전쯤 실험이나 보고서 작업을 마무리한다.
과제수행 마지막달은 사실상 정산으로 정신이 없다.
정산기간엔, 우리가 정당한 이유로 이 과제를 위해 돈을 사용했는지
증빙서류로 증명해야 한다.
이건 보통 회계법인이 검토한다.
뭔가 오류가 있거나, 타당하지 않다 판단되면 이렇게 말한다.
“이 항목은 돈을 뱉어내라.”
그때부터는 소명자료를 모아야 한다.
타당하게 쓰였다는 걸 입증하지 못하면,
연구비 일부는 날아간다.
완전한 잔금 받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산단 직원과 트러블이 생기기도 한다.
(경험자들은 알 것이다.)
대학원 입학 전에는
이런 업무가 있다는 걸 전혀 상상도 못했다.
위에 말한 것 외에도
돈 관련 업무는 끝도 없다.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학교 주변 식당과 가게 절반 이상은,
랩실 선결제 문화로 굴러간다.
아무튼 한 연구실에서 보통은 여러 연구과제들을 하기때문에
그러다 보면 다루는 돈의 단위가
학생이 감당하기엔 너무 클 때도 있다.
내 손으로 몇 억, 몇십 억짜리 예산을 돌리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때 느낀 정신적 부담은 지금도 선명하다.
아무튼간에
이 일은 누가 하는게 맞는가?
교수님? 대학원생? 행정직원?
답은 없다.
나는 석사 시절, 모든 연구행정 업무를 학생이 하는 랩실에 있었다.
그래서 박사 컨택할 때 진짜 중요하게 본 조건이 하나 있었다.
“행정업무 담당 직원이 따로 있나요?”
만약 이게 와닿지 않는 대학원생이라면…
진심으로 부럽다.
당신의 환경이.
행정업무는 잘 보이진 않지만,
없으면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지금도 이 업무로 고통받고 있을 누군가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