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느린 사람이라 서울이 힘들었다
이중섭의 황소는 중학교 미술 시험에 늘 등장하던 단골 소재였다.
똑같은 그림을 외우고 또 외우던 시절엔 그 안의 고독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20대의 2년은 유난히 힘들었다. 첫 사회생활은 버거웠고, 타지 생활의 답답함과 잇따른 취업 실패는 내 마음을 오래 눌러놓았다. 못난 나를 달래느라 흘려보낸 시간들이 자책으로 굳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사실 서울에 대한 기억이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다.
15년도, 갑작스럽게 서울로 올라왔을 때 나는 아버지와 유독 많은 마찰을 겪었다.
나는 ‘돌을 두드리듯’ 천천히 수렴하는 사람이고, 아버지는 모든 걸 확장하며 모험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한 달 내내 냉랭했다.
“올라가라.”
그 말은 명령처럼 들렸고, 서울 중구 신당동으로의 이주는 거의 추방처럼 느껴졌다. 충청도에서 대학까지 마친 나는 가족과 멀리 떨어진 적이 없어 서울이 작은 수용소처럼 느껴졌다. 매일 내려가고 싶었고, 방 안에 틀어박혀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동들만 늘어갔다.
원래도 나는 예민한 아이였다. 작은 점프조차 간신히 내려왔고, 체육 시간엔 늘 꼴찌였다. 한 번은 열심히 연습해서 5등을 했는데, 그마저도 분해서 며칠씩 울었다. 친구는 2~3명만 있으면 충분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편했다. 머릿속은 일찍부터 복잡했지만 글쓰기는 자신 있었다. 독후감과 일기는 늘 잘했고, 국어·역사·사회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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