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오랜만에 가다.
힘든 나날들을 좀 환기시키려 서울로 몸을 실었다. 진품 작품이니 티켓팅이 힘들 것 같았지만, 다행히 어렵지 않게 예매를 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촬영은 불가능했지만, 설날 연휴와 겹쳐 어지러운 인파 속에서 파도에 휩쓸리듯이 찬찬히 감상할 수 있었다.
반고흐의 자화상을 보는 순간, 머리가 띵해지면서 왜 그가 사후에 천재 화가로 평가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멍하니 5분 넘게 자화상을 응시했다. 자화상에는 처연함, 슬픔, 위로… 그런 단어들이 겹쳐 보였고, 삶을 더 이상 흐트러지지 않게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던 ‘그’의 얼굴이 있었다.
그 속에서 묘하게도 ‘너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느껴졌다. 살면서 하고 싶은 일도 모르고, 늘 어둠 속에서 방황하던 내게 반고흐는 ‘창작자’로서의 위로를 건넸다. 그는 외로움의 끝에서 그림이라는 행위로 자신을 구원했듯이, 나 역시 글이라는 행위로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었다.
그날 전시장을 나서며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수많은 관람객들 속에서도 마음 한켠이 이상하리만큼 고요했고, 반고흐가 남긴 붓끝의 떨림이 내 안 어딘가에 닿은 듯했다. 그는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만 팔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지금도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고 살아 있게 한다. 그 사실이 내게는 어떤 구원의 말처럼 느껴졌다.
세상에는 이해받지 못하는 시간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 시간조차 헛되지 않다는 것. 결국 자신이 믿는 무언가를 묵묵히 이어나가다 보면 그 안에서 의미가 피어난다는 것을 반고흐는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그가 붓으로 자신을 구원했듯, 나 또한 글로써 나를 건져 올리고 싶었다. 언젠가 나의 문장들이 누군가의 어둠 속을 잠시나마 비춰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전시를 보고 돌아오는 길, 창문에 비친 도시의 불빛이 마치 그의 화폭 위 별빛처럼 반짝였다. 삶은 여전히 버겁고, 마음은 여전히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의 나를 써 내려갈 것이다. 반고흐가 자신의 고독을 그림으로 남겼듯, 나 또한 나의 고요와 불안을 글로 남기며 조금씩 나아가리라.
그의 그림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나의 글 또한 누군가의 마음 한켠에 닿아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