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친형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빈자리를 대신한 사람은 아버지와 두 살 터울이던 C 아저씨였다. 아버지는 그를 형처럼 의지했고, 우리 가족은 친척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가족 같던 사람이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 날 C 아저씨는 아버지를 찾아와 가볍게 돈 자랑을 했다.
“얼마 전에 큰돈이 입금됐어.”
그 말은 장난처럼 들렸지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마침 그 무렵, C 아저씨의 딸 P 양이 찾아왔다. 코인과 주식 열풍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P 양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에게 투자 이야기를 꺼냈고, 그 권유는 단순한 추천이 아니라 거의 영업에 가까웠다.
“D 아저씨, 요즘 코인으로 대박 난 사람 진짜 많아요. 이거 안 하면 손해야요.”
아버지는 원래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코인은 잘 몰라서…”라고 조심스러워했지만, P 양이 구체적인 수익 인증까지 보여주자 마음이 빠르게 기울어졌다. 그 순간, 이미 게임은 시작되고 있었다.
2021년 3월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3억씩, 총 10억 가까운 돈을 투자했다. 전 세계적으로 암호화폐와 주식 시장이 광풍처럼 달아오르던 시기였다. 뉴스와 SNS에서는 대박 사례가 실시간으로 쏟아졌고, 사람들은 “지금 아니면 평생 후회한다”는 불안감에 쉽게 흔들렸다.
아버지도 그 흐름 속에 휩쓸린 사람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여보.”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아버지의 말이었다.
하지만 그 거액의 투자는 안전한 자산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올인’, 완전한 베팅이었다. 변동성 큰 시장에서 아버지는 점차 더 큰 리스크를 감수했고, 안정이라는 개념은 멀어져 갔다. 고모는 1억 4천만 원, 큰어머니와 작은 집도 각각 천만 원씩 투자하게 되었다. 눈앞의 ‘대박’만 바라본 채, 그 뒤에 숨겨진 위험은 철저히 무시된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P 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폭락과 손실 앞에서 그녀는 끝내 견디지 못했다. 장례를 마친 뒤 C 아저씨는 지방에서 아버지를 찾아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딸이 권했던 투자, 벌었던 돈과 잃어버린 돈, 그리고 그 돈 때문에 감당해야 했던 P 양의 고통까지… 그는 흐느끼며 말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형처럼 믿었던 사람, 그 딸의 죽음, 잃어버린 돈, 그리고 그 뒤에 남은 상처까지… 아버지는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고, 우리 가족도 함께 망연자실했다. 돈보다 더 깊은 충격은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원망이었고, 그것은 우리를 천천히 잠식해 갔다. 누구의 잘못인지 묻고 싶었지만,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이 사건은 내 일상 깊숙이 박혀 있었다. 출근해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해도 사무실 한구석에서 문득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미친 듯 뛰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이 불안과 두려움의 정체를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안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억 때문이다.
처음엔 아버지를 원망했다. 왜 그렇게 쉽게 믿었는지, 왜 그렇게 무모했는지, 왜 가족까지 끌어들였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원망하게 된 사람은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원래 귀가 얇고 남의 말에 휘둘리는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현실적이고 냉정하던 어머니가 왜 말리지 않았을까. 왜 함께 돈을 넣었을까. 나는 막막하게 물었다. “왜 그때… 왜 멈추지 않았어요?”
기억 속에서 부모님의 공허하고 미안한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런 밤이면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던 밤들이었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겠지만,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언젠가 이 아픈 이야기를 조금 더 단단하게 꺼내놓을 수 있기를 바라며. 나중에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어머니가 말리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말리지 못한 게 아니라, 말릴 수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이미 크게 흔들려 있었고, 혹시나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누구보다 아버지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사실을 알게 된 뒤, 나는 더 이상 원망할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그날의 선택 앞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려 했던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