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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1화. 수동댁의 낙화놀이

함안 무진정 낙화놀이 뒤에 숨은 아낙네들의 이야기

by 벽운

수동댁의 낙화놀이

인생은 낙화유수인가. 한번 왔다가 가는 인생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인지 세월 따라 어디론가 흘러만 간다. 한을 실어오기도 또 실어가기도 하지만 실어 오기만 하고 실어 가지를 못하는 인생은 참으로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여자로 태어난 것은 하늘의 뜻이던가, 하소연도 눈물짓기도 어려운 현실은 누구를 꼼짝없이 붙들어 매고 마냥 세월이라는 운명의 물결에 휩쓸려가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 그 울어서도 해결되지 않고 하소연해도 별 소용이 없는 여인의 한은 도대체 어떻게 하여야만 하는 것인가. 말이라는 것은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은 한을 녹여주는 명약이기도 한 것인가. 그 여인들은 배롱나무가 백일 간 피는 긴 시간 동안 사랑방에서 백일 간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다.


여항산을 바라보며 아담한 조남산을 기대어 이룬 마을, 바로 괴항마을이다. 함안 조씨 집성촌이며 국도변에는 인공으로 조성된 연못이 있고 바위 언덕 위에는 무진정이라는 유서 깊은 정자가 있다.

매년 사월초파일에는 낙화놀이로 인근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러 오곤 한다. 경치 좋고 유서 깊은 고장에는 드러나지 않은 애절한 사연을 안고 살아간 사람들이 있다. 그 여인들의 한이 맺혀 무진정 언덕 위의 배롱나무 꽃처럼 근 백일 간의 긴 시간을 나 보란 듯이 울고 있다.


수동댁, 그가 대표적인 여인이며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지금도 동네 골목마다 그 자취가 어려있다. 담장을 맞대고 촘촘하게 들어선 마을에는 수많은 택호를 가진 여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바로 옆집이 국산댁, 도천댁, 안촌댁이고 그 위로 낙골댁, 신촌댁이 살고 있다. 그리고 아랫동네에는 해동댁, 가동댁이 있고, 길건너에는 원북댁, 학동댁, 모산댁이 초가를 이루며 살아간다.

어느 봄날 수동댁의 시동생 재식이가 가족을 거느리고 부산에서 며칠 쉬러 내려왔다. 내송댁의 둘째로 천하 호걸인지 백수인지 분간이 안 가는 재담이 탁월한 사람이다. 수동댁은 시어머니의 분부에 따라 안방을 내주고 작은 방에 옥이 연이와 함께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되었다.


아랫마을로 마실 가던 낙골댁이 길모퉁이에서 수동댁을 만나자 한말을 건넨다.

“수동성님 오늘 얼굴이 어둡게 보이는데 무언일 있소”

“아이 별일은 엄꼬, 그냥 가심이 좀 막히는 것 같네”

“오늘 부산서 시동생 재식이가 여편네 하고 애들 데리고 내려와서 며칠을 묵고 간다 카이 좀 걱정이 되고 해서....”

“그라면 안방을 내주고 나와 시어멈, 옥이와 연이 넷이서 작은방에서 자야 하니 마니 불편하것지”

“그 넘의 재식이는 뭐한다꼬 저그 형수 마음도 모르고 며칠간 파묵고 간다 말인고”

“우짜건노, 피붙이 아들하고 며느리와 손주들이 오니 시어멈은 좋아하것지”

“아! 성님 남편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 살아계셨다면 동생 내려온다고 닭도 몇 마리 잡고 기분도 내었을터인데”

“그래 말이제, 고추 달린 아들 한넘 씨나 뿌리고 갔으면 좋으련만, 영문도 모르게 횡사하였으니 안타까바”

“아아 세월이 많이도 흘렀네, 6.25 때 참전하여 안 죽고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라 했는데, 몇 년 후 이수정 냇가에서 천렵하다가 전깃줄에 감전되어 익사하지 않았던가”

“성님! 그게 소문 들어 보니 방앗간 주인하고 몇 사람들이 전봇대에서 무단으로 전기를 끌어다가 물에 흘려 고기들을 감전시켜 건져 올리다가 그랬다 카던데요”

“아마 그 영향으로 아래쪽에서 천렵하던 서방이 찌릿하여 자빠져서 정신을 잃고 물에 잠긴 것이라고 봐야제”

“성님 그런데 당사자들은 그럴 일이 없다고 잡아떼고 경찰서에서도 다녀갔는데 확실한 물증이 없어 유야무야 되었다 카데예”

“아이고 그이야기 고만하자, 자꾸 그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니까 이자버리고 살아야제, 다 운명이라 생각하고....”


수동댁은 재식이가 내려온다 해서 마음이 안 좋은 데다, 낙골댁이 좀 거든다는 게 과거를 되새기게 하여 심기를 더 건드려 버린 셈이다.

“성님 위로 해줄라고 하던 말이 마음을 상하게 하여 미안하게 됐심더”

“아이다, 안 그래도 두 달 있으면 제삿날이 아니가. 일 년에 꼭 한두 번은 마음이 가라앉고 떠난 이녁이 보고 싶기도 하제”


수동댁과 낙골댁은 자주 만나 말 친구가 되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슬픔과 기쁨을 나누면서 살아갔다. 괴항마을은 유난히 과부들이 많고 서방이 돈 번다는 핑계로 객지로 나가버려 과부와 다름없이 살아가는 아낙들도 많았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안촌할매집에 진을 치고 사랑방 모임으로 서로의 처지를 하소연하며 다독이며 긴 밤을 보냈다. 부르러 오는 서방도 없기에 칭얼대는 어린애들만 데리고 오면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모임의 이름을 ‘백마부대’로 지어서 내걸고 아랫마을의 저녁 사랑방 모임과 함께 밤 시간을 서로 경쟁하며 장식하여 나갔다. 백마부대에는 수동댁, 낙골댁, 안촌할매, 광동할매, 신산댁(용한이 엄마), 원북댁이 주축을 이루고 가끔 신촌댁, 정동댁이 참석하기도 하였다. 사랑방 모임 이름을 백마부대라고 정한 것이 궁금하지만 뚜렷한 이유는 없고 백마처럼 귀티 나게 당당하게 살고 싶다는 뜻이 깃들어 있지 않나 생각된다. 또 하나 신산댁 용한이 아버지가 6.25 때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것도 숨어있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안촌할매와 광동할매는 시어머니 뻘 되는 연장자들이고 신산댁은 남편이 6.25 때 전사하여 외아들 용한이와 시어머니 학동할매를 모시고 살아간다. 어렵고 쓸쓸한 처지이지만 농담을 잘하고 욕도 잘했다. 아들 용한이도 아버지가 없지만 어머니를 닮아 재미있고 장난도 잘 치고 세상을 밝게 살아가는 편이었다.


원북댁은 수동댁, 안촌할매와 인척지간으로 편하게 친한 사이이며, 서방 근조가 지붕 갈기나 변소 치기 같은 큰일이 있으며 거들어 주기도 한다. 원북댁은 애들 복이 없어 다 키워 놓고 하늘로 보낸 애들이 몇이 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몇 년 전에는 대여섯 살이나 된 외동딸을 떠나보내기도 하여 항상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외아들 한석이는 애는 착하고 좋은데 공부를 잘 안 하려고 하고 자기 아버지를 닮아 노는 것을 좋아했다.


낙골댁은 아들이 넷이고 딸이 둘이라 겉으로는 든든하게 보이지만 낙골양반이 애들 공부시킨다고 전답을 다 팔아 부산에 무슨 서민금고에 자리를 얻어 일하다가 사기를 당하여 재산을 다 날린 상태라 애들 뒷바라지한다고 힘들게 살아간다.


백마부대에 오늘도 저녁을 먹고 난 뒤에 아낙들이 하나둘씩 시간차를 두고 모여든다. 안촌할매집 큰방은 대여섯 명이 앉기에 충분히 넓고 분위기도 아늑하다. 수동댁을 비롯하여 낙골댁, 광동할매, 원북댁, 신산댁이 다 모였다. 먼저 저녁 잘 먹었느니, 별일 없느니 수인사를 한다. 좌장격인 광동할매가 두루 돌아보며 표정을 살핀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수동댁이다.


“자네는 오늘도 표정이 어둡고, 마음이 안 편한 것 같은데 무언일이 있남”

“아니예, 항상 그렇다 아임니꺼”

“시동생 재식이가 여편네와 애들 몰고 와서 안방을 차지했다 안캄니꺼” 낙골댁이 대신 사정을 말한다.

“재식이가 내려오면 시어멈인 내송할매는 좋아할 끼고, 자네나 딸들은 불편하것제”

“참 재식이는 재주가 좋아 여편네들을 잘 꼬셔 지사람으로 만들지, 벌써 첩사이가 몇 인기고”

“그런데 저그 형수는 청상에 독수공방 하고 아들도 없이 서러운데 시위하듯이 설쳐대니 좀 꼴 볼견이기도 하지”

“아니예! 지가 시샘할 것도 아니고 복이 없다 보니 넘들이 그렇게 자꾸 입방아를 찧는가 봄미더”

“하여튼 재식이는 키도 훤칠하고 언변도 좋고 해서 여자들이 잘 넘어가지, 그것도 재주요 지 복이 아니건나”

“물개가 암넘을 많이 달고 다니는 것도 힘이 있고 보호해 줄 수 있는 능력이 되니까 그런 게 아니건나”

“설날 지내고 대보름에 동네 궐궁(농악놀이)을 칠 때 양반 복장을 하고 긴 담뱃대를 들고 춤을 추는 걸 보면 인물은 인물이더구만”

“그래도 형수인 지한테는 따뜻하게 대해주고 마을 사람들이 괄세를 못하도록 일부러 허풍을 떠는 것도 있겠지예”

“그래 재식이도 독수공방 하는 형수의 처지를 왜 생각을 못하건노마는 우짜든가 지금껏 그래왔듯이 넘어 가삐라”


옆에서 듣고 있던 신산댁이 같은 처지에 있기에 목을 끄덕거린다. 이를 보고 광동할매는 신산댁의 눈치도 조심스레 살핀다. 신산댁은 6.25 때 남편을 전장에 보내 백마고지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슬하에는 유복자인 용한이가 유일하고, 수동댁처럼 시어멈 학동할매를 모시고 산다. 그리고 시동생이 있지만 아내와 아들 애용이와 부용이를 남기고 돈 벌러 간다는 핑계로 도시에 나가서 무슨 짓을 하는지 돈은 부쳐오지 않고 어쩌다 명절에 한 번씩 나타나기만 한다. 신산댁은 원호대상자로 나라에서 나오는 약간의 지원금으로 시어머니와 외아들을 봉양하고 키워오고 있다. 이러한 처지가 수동댁과 다를 바 없지만 수동양반은 전사하지 않고 돌아왔는데 냇가에서 감전사하였기에 그 슬픔의 강도는 비슷할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다른 점은 신산댁은 개구쟁이지만 아들이 있다는 것이 일면 나을 것처럼 보이지만, 수동댁의 두 딸이 엄매하고 얘기도 하고 여름밤에 냇가에 가서 함께 목욕하는 게 부러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외아들 용한이는 가문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네 아이들 몰고 다니면서 싸움을 붙이기도,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이상한 음담과 패설도 하기도 하여 영 골치가 아픈 게 아니었다. 아마 방앗간 둘째 아들의 영향을 좀 받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자기 아버지가 있으면 동무도 형뻘들도 가려서 만나라고 교육시켰겠지만 그렇지를 못해 안타까웠다. 용한이 엄매 자신이 홀몸이라 외로워 어릴 적에 동네 아낙들과 독수공방 외로움에 대해 얘기하고 남녀상열지사에 대해 주워들은 이야기를 엿듣고 배운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는 수동댁은 두 딸이 착하고 그런 골치 아픈 점이 없는 것은 다행인지도 모른다.


수동댁은 남편을 잃고 난 후 독수공방의 외로움에 사내의 품이 그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점을 알아챈 시어머니 내송할매는 한시도 쉬지 않고 일을 시키고 나무라고 심지어 욕을 퍼푸어 대며 며느리를 못살게 굴었다. 천성이 그런지 억울하게 큰 아들을 잃은 분을 삭이지 못함인지 하루 한시도 그 험한 입을 가만히 쉬지를 못했다. 어쩌면 며느리가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혹독하게 일을 시키고 욕을 퍼부어 대면서 정신줄을 놓지 않도록 하는 깊은 뜻이 담겼는지는 알 수가 없다.


오늘도 저녁을 먹고 동네 아낙들이 안촌할매댁 백마부대로 마실을 나왔다. 먼저 나온 수동댁이 방을 청소하고 안촌할매와 함께 아낙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원북댁이 조그만 소쿠리에 삶은 새끼 고구마를 담아왔고, 신산댁은 시원한 동치미를 한 냄비 가져와서 광동할매의 사랑방 강좌를 기다린다. 광동할매는 진사 딸로서 한글을 배워서 글을 읽고 쓰기를 잘한다. 며칠 전에는 장화홍련전을 읽어 주어 아낙들이 눈물을 한 움큼씩 흘리기도 하였는데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지가 기다려진다.


“오늘도 농사일 한다고 낮에 고생들이 많았제, 남자 인력이 없는 수동댁이 힘들었것제”

“예, 오늘도 저 산성 언덕배기 밭에 심어놓은 콩에 물 주러 간다고 똥장군을 짊어지고 몇 번을 날랐지예”

“그 병아리 오줌만큼 씩 모종에 하나나 부어주니까 해거름에 내려 올 즈음 보이 파릇파릇 생기가 돕디다”

“그래 논이 없으니께 밭이라도 부쳐 먹어야 가족들을 안 굶기고 살아가겠지, 우리 동네에 제대로 논밭이 있는 집이 몇 군데가 되것노”

“저 안 골목에 있는 동네 부자 월촌댁이나 봉남댁, 관동댁, 주동댁 정도나 있지 나무지는 소작을 하거나 하천 자갈밭이 대부분 아니건나”

“최고 부자인 월촌댁 양반은 애들 공부도 안시킨다 카데이, 재주도 없는 놈을 공부시키면 있는 재산 다 까먹는다고 농사일을 가르친다면서 하는 말이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문자까지 써가면서 말이제”


“요새 밥을 지대로 먹는 집은 없고 보리밥에다가 김치와 호박이파리 섞어 넣은 된장이 전부이지, 그러니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랑방에서 너무 자주 방구를 끼어 공기가 탁하지 않나”

“그래도 밥 세끼 꽁보리밥이나 고구마밥이나 먹는 집은 개안은 편이지예, 영양실조로 얼굴이 노랗게 황달이 들고 헛배가 불러 올라 올챙이 같은 애들이 부지기수 아니것심니꺼”하고 조용하던 낙골댁이 입을 연다.

“애들이 배가 고파 뒷산에 올라가 소나무 껍질(송곳)을 먹고, 냇가에 나가 소래를 잡아 삶아 묵고, 잔디밭에 나는 필기(피피)를 먹고 고픈 배를 달래지예”

“지금은 그래도 낫다, 일제시대에는 공출로 곡식을 다 빼앗아 가서 보리밥이나 수수밥도 먹기가 힘들었섰제”

“자자! 오늘 우리 아낙들이 궁금하게 있으면 묻고 부탁해봐라”

“지 아들 용한이가 서울로 돈 벌러 가서 부쳐온 편지인데 좀 읽어 주이소”

“편지는 낙골댁이 잘 읽으니 오늘 한번 잘 읽어 주어 봐라, 감정도 잘 섞어가면서 말이제”

“작은 어머이 내가 읽어도 될랑가 모르겠심더, 우짜든 둥 한번 해보겠심니더” 하고 용한이 엄마가 건네준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어머니 전상서, 어머니 혼자서 할매 모시고 농사일한다꼬 고생이 많으시지요. 저는 어머니의 염려 덕분에 서울에 조그만 공장에 나가 기술을 배우고 적은 돈이지만 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추석에는 내려가지 못하고 설날에는 가겠습니다. 모아둔 돈을 조금 전신환으로 보내드리니 잘 쓰시기 바랍니다”

“아 등기 편지 봉투 안에 우체국 돈표가 들었더만 야가 취직을 해서 번 돈을 지할매하고 어미 쓰라고 보냈구만”

“용한이가 이젠 사람이 다됐네, 어머니 전상서로 쓰고 할매와 어미를 걱정하는 거 보니, 우쨌던 애들은 저그 에미 품을 떠나봐야 고마움을 아능기라”하고 광동할매가 편지 읽기의 중간 소감을 말하자 여기저기서 치사가 자자하다.

“아! 신산댁이 축하한데이, 용한이가 이제 어엿한 일꾼이 되어 돈을 벌고 있구만, 그것도 서울로 가서 말일세”

“옛날부터 말은 제주도로, 남자는 서울로 보내라 안카덩가, 다음 설날에 내려오면 허연 얼굴로 동네 딸애들 마음을 좀 울렁거리게 하것네”


“아이구 고맙게 시리 축하를 너무 잘해주시니 감당이 안되네예. 그래서 한턱낼까 하니 한 길가에 있는 남순이네 점빵에 가서 과자라도 사서 먹을까 합니더”

“머할라꼬, 원북댁이 가져온 고구마와 자네가 가져온 동치미로 야식을 해도 충분하니 그 돈 한 푼이라도 에끼 쓰라이”

“예 잘 알겠심더, 오늘은 말로 인사하고 다음번에 한번 대접하겠심니더”

“그라면 나머지 편지를 계속 읽어 나가게, 다음번 내용이 아주 기대가 되는데....”

“사랑하는 어머니, 저가 어릴 적에 장난도 많이 치고 공부도 열심히 안하고 해서 실망시켜 드린 게 후회가 됩니다. 외롭게 살아오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오늘도 불효자는 가슴이 미어집니다.

(중략)

어머니 저가 기술을 잘 배워서 돈을 많이 벌어 장가도 가고 서울에 집을 사서 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지나가는 가게에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도나츠와 생과자가 보이길래 멀어서 보내드리지 못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부디 몸 건강하시고 저 걱정은 하지 마시고 든든한 아들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천리타향 서울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불효자 용한이가 올립니다“이렇게 해서 낙골댁은 편지를 다 읽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 용한이가 정말 그렇게 썼단 말인교, 야가 서울 가드마는 언제 벌써 사람이 되었을꼬, 구절구절 들으면서 눈물이 나네”


용한이 엄마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한다. 지난 시절 아버지 없다고 설움 받던 자식이 대견하게 성장하여 감동적인 편지를 써서 보냈으니 울음이 멈추지를 않는다. 같이 있던 아낙들은 축하하면서 손뼉을 치고 또 한편으로 눈가를 훔친다. 이모두다 자기들의 이야기이고 바람이 아니겠는가.


“어허 낙골댁 그 편지 나도 좀 읽어 보게 이리 주본나”하고 광동할매가 편지를 받아 든다. 천천히 눈으로 읽어 내려가다가 어느 한지점에 멈춰 웃음을 은근히 짓는다. 분명 편지 내용에는 없는 글자를 몇 군데 만들어서 낙골댁이 읽어나간 것이다.


괴항마을은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뚜렷한 선도 없이 갈려 있다. 아랫마을과 이수정은 타성들이 좀 섞여있고 윗마을은 백마부대를 중심으로 광동할매를 모시고 밤마다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랫마을에는 방앗간이 있는데 주인 양반이 재산이 좀 있고 아들들이 튼실하다고 위세를 부린다. 동네에는 일제시대 징병으로 못 돌아오고 6.25 때 전사하거나 보도연맹사건으로 홀몸이 된 과부들이 많았다. 이러한 사정을 아는 방앗간 주인은 힘없고 외로운 그들을 옭아매었다. 동네를 슬슬 돌아다니면서 주색잡기를 하였으나, 그의 나쁜 행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는 못했다. 오래전에 수동양반이 이수정 냇가에서 천렵하다가 감전사하였는데 혐의점이 분명한데도 쉬쉬하면서 넘어가지 않았던가. 그래도 윗마을에는 신촌양반이 있어 그의 비행을 성토하기도 하고 면전에서 언쟁을 하는 등 위기일발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신촌양반은 시골장차를 타고 인근의 5일장에 생선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해 갔다. 슬하에는 장성한 아들 세 명이 있어 물리적 힘에 있어서는 제일인 집이다. 그 자신은 일제시대에 탄광에 징용으로 끌려가 해방이 되자 귀국하여 일본에 대한 감정이 매우 안 좋았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그는 해방 후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조그마한 배를 일행과 함께 대절하면서 선금만 주고 잔금은 마산에 도착하면 준다 하고 하여 무사히 도착하였다. 일본 선주가 나머지 뱃삯을 요구하자 배를 빼앗고는 선주는 현해탄을 헤엄쳐 가라고 하자, 선주가 살려주이소 하였다. 신촌양반이 다시 나서서 절충하기로 선금은 받아서 되었고 배도 돌려줄 테니 잔금은 너희 나라 정부에서 받아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반면에 방앗간 주인은 징용도 안 가고 해서 배경에 대해 의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 그리고 신촌댁과 담을 경계로 있는 낙골댁의 시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병을 얻어 해방을 못 보고 돌아갔기에, 두 집은 서로 정서적으로 통하고 의기가 투합하였다.


어느 날 마을에 이장선거를 하였는데 방앗간 주인이 간신히 당선되었다. 많은 돈을 쓰고도 자칫하면 떨어져서 망신을 당할뻔하여 반대표에 대한 분석을 하여 윗마을의 몇몇 집을 의심하여 홀대하기 시작하였다. 방안갓에 가면 삯을 많이 받기도 방아순서를 뒤로 돌리기도 하여 은근히 보복을 하였다. 그래서 용기 있고 대찬 신촌양반이 큰 소리로 외치면서 “이넘들 뭐해서 돈 좀 벌었는지 모르겠는데, 행실을 바르게 해라, 너그들은 타지에서 온 타성들이고 우리는 본토인 어계 선조와 무진정 할아버지의 후손들이다. 상놈들 아이가!”하면서 아래동네를 보고 외쳤다. “그라면 우리 두 집이 한번 붙어볼래. 니하고 나하고 단둘이 붙으면 상대도 안되니, 너그 아들도 셋이고 우리 아들도 셋이니 우리는 구경 한 번 해볼까”하고 넌지시 싸움을 걸었는데 방앗간에서는 겁을 먹고 응답이 없었다. 신촌댁 집안이 아니라면 당장 달려와서 박살을 내고도 말 안하무인이 말이다. 정말로 신촌댁의 아들들은 장골들이었다. 큰 아들 만출이는 장대한 체구에 노동으로 단련된 근육으로 함안 씨름대회에 나가 황소를 몇 마리 타오기도 하였다. 둘째 정찬이는 날렵한 동작으로 복싱하듯 상대방을 꼼짝 못 하게 하고 막내 정만이는 좀 어리지만 그 깡다구가 정말 대단하니 방앗간집에서 겁을 먹은 게 당연하다. 이렇게 집안 대결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신촌댁을 응원하는 측에서는 후련한 감을 느꼈다.


이러고 보니 집안 아들 중에서 첫째 보다 둘째가 많이 별나다는 게 맞는 건가. 낙골댁 집안은 둘째가 유별나게 난하였는데, 동네 아이들 싸움 붙이고, 지나는 여학생들을 놀리고, 남의 집 고구마 밭을 들쑤시고, 원두막 참외와 수박을 건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고구마 수확철에는 근 반가마니를 보상하기도 하고, 참외와 수박은 물어줄 수 없기에 여름철 냇가에서 멱 감다가 주인아들이 나타나서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가 목을 눌리면서 물을 먹이는 걸로 때우기도 하였다.


방앗간집 둘째도 아주 별나고 집안 내력인지 동네 처녀들을 탐하여 범하려고 한 혐의가 많았다. 피해 당사자들은 혹시 혼사가 막힐까 봐 쉬쉬하고 넘어가기가 일쑤였다. 둘째 아들은 바지 앞편 허리띠 속으로 두 손을 구겨 넣고 다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였다. 정월대보름날에 달집을 태우고 난 후 잔불에 콩이나 쌀을 볶아 먹는 풍습이 있다. 방앗간 둘째 아들은 자기 아버지가 미워하는 집의 아들들이 콩을 볶아먹는 숯다리미(후라이팬이 없던 시절)에 오물을 던지는 등 행패를 부리기도 하여 집안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낙골댁 둘째 아들이 좀 용맹스러워서 나이가 차이가 한참 되어 상대가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달겨들어 욕도 하고 하다가 실컷 두들겨 맞아 그 앙금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신촌댁과 낙골댁은 공동전선을 형성하여 방앗간집의 행패에 맞대응을 하게 되었고 두 집안은 좋은 관계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 놈이 별나고 동네 농작물에 손해를 끼쳐 내가 종아리를 많이 때리고 다시는 그라지 말라고 했는데 잘 안되네예”하고 낙골댁이 사건이 있을 때마다 수습해 나갔다. “하여튼 둘째는 좀 다스리기가 힘드네예, 나는 방앗간집 둘째를 욕할 것도 없지예”하니 듣고 있던 수동댁이 거든다. “자네 아들은 싸움 붙이는 것은 커갈 때 다하는 짓이고, 농작물에 피해는 주었지만 인륜에 어긋난 짓은 안 했잖은가”하고 수동댁은 방앗간 집에 쌓인 앙금도 있고 해서 두둔하고 나섰다. “그래도 그것을 아는지 방앗간 안주인은 내가 가면 잘 챙겨주고 자기 서방과 둘째의 행패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양해를 구하기도 하더라카이”. 사실 난봉꾼의 아내는 현모양처가 되는 모양이어 방앗간 안주인은 자비롭고 이해심이 많았다고 다들 말을 하였다.


다음날도 어김없이 백마부대의 모임은 이어갔다. 저번에는 신산댁의 용한이 편지를 읽고 많은 아낙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었다. 광동댁은 그날 표정이 안 좋거나 우울한 아낙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헤아려 나간다. 이번에는 애들을 많이 잃어 한이 깊은 원북댁을 자연스레 끌어들여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자네 요새 보니 얼굴이 밝은 적도 어두운 적도 있고 해서 여항산 위의 구름처럼 오락가락하는구만, 좀 어떤가”

“지야 뭐 서방하고 아들 밥해주고, 논일 밭일 하다 보니 기분을 낼일도 가라앉을 일도 없시미더”

“그라면 다행이지만 깊이 숨겨진 근심과 불안은 있어 보이는데 없다카니 다행이네”

“말이 나온 김에 어쩌면 나는 애들 복이 없을까예. 낳아 다 키우 놓으면 죽고, 벌써 몇을 하늘나라로 보냈는지 모르겠심더, 필시 내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벌을 받는 건지 알 수도 없고예”

“자네같이 인정 많고 순하고 집안에 잘하는데 무신 죄업이라고 있겠능가”

“보통 둘을 나으면 하나는 떠나가는 게 현실이 아닌가, 불의의 서고를 당하지 않고 가면 그나마 다행이것지만”

“지는 한석이 아버지가 하는 일이 좀 마음에 걸립니다. 항상 동네에 초상이 나면 상여를 메고 나갈 때 앞장서서 꽹과리를 치고 북망산이 어떻고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게 마음이 걸림니더”

“말겨도 말겨도 그놈의 꽹과리만 잡으면 신이 들려 두드리고 노래 부르니 말임니더”

“원북양반은 인정이 많고 성질이 화끈하고 남의 집 길흉사에 항상 앞장서서 좋은 일을 하지 않는가, 동네 사람들도 다 좋아하고 말일세”


“그것은 맞심니더만 살아있는 아들과 서방만큼은 오래 살 수 있기를 빌어보고, 지도 타박 안 하고 꾹 삼키고 지낼라 캄니더”

“옳지 그래야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 안카던가, 정동댁은 아들이 다섯이고 딸이 하나고, 국산댁도 아들이 다섯 딸 역시 하나제”

“그런데 서방인 정동양반은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동네에서 상대도 안 해주고 그러니께 집에 오면 여편네를 구박하고 그라지, 하는 일이 장차를 타고 쌀장사를 하니 혹시 남자가 있는가 의심하고 말일세”

“맞슴미더, 그런 점에서는 우리 서방은 나를 잘 대해주고 아들놈도 어미를 찾고 하니 남다른 보람도 있지예, 정동댁, 국산댁 처럼 그 많은 식구들 뒷바라지 안 해도 되니 말임니더”


“맞아 애들 많은 집안은 든든하기야 하겠지만 그 만큼 걱정도 많은 법이고, 그렇다고 남편의 사랑도 많이 받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그라고 국산양반은 매일 술 먹고 취해서 고함지르고 애들도 아버지가 그라니까 공부는커녕 객지로 떠돌고 말일세”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이 부럽지만, 그 뒤에는 근심과 고통이 따르기도 하제, 그러니 넘들 좋은 것만 보지 말고 내 좋은 것도 있다 생각하고 살아야제”

“맞슴미더, 서방 있고 아들 하나라도 있는 게 얼마나 복 받은 건가, 나는 병신 아들이라도 있으면 원이 없것다” 구석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수동댁이 한마디 거든다.

“성님만 그런기 아님미더, 우리 작은집 쟁미숙모는 딸이 여섯이고, 항상 성님 처럼 그런 말을 하시던데예”하고 낙골댁이 나섰다.

“그래도 둘째 사우가 저그 장모 모시고 한집에 살면서 외손자들 돌보면서 하는 낙이라도 있지 않은가”

“성님도 언젠가는 사우가 잘 모실끼라 보이고 옥이가 얼마니 효녀잉기요, 틀림없이 남편을 설득해서 잘 모실낍니더”

“동상 말이나 따나 고맙네, 하기사 딸이 많아 한숨이 많은 집이 한두 군데 이건나, 뒷동네 평간댁이나, 아랫마을 배나무실댁이나 그 많은 식구들을 먹이고 키우고 공부시키려면 울매나 힘들것나. 나도 인자 투정을 안 할 끼데이”하고 수동댁은 웃음 속에 비장한 각오를 보였다. 조용하던 광동할매가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말을 건넨다.


“신산댁은 전쟁에서 서방을 잃었제, 저 아랫마을에 조동댁도 마찬가지이고, 새터, 갱골마을에도 그런 집이 한둘이던가”

“우리 동네 말고도 우리나라 전체가 전쟁으로 무수한 사람이 죽어나가 과부가 넘치고 있지 아니한가”

“맞슴미더. 그 넘의 6.25가 원망스럽네요, 그때 저 앞에 있는 여항산과 봉화산에 국군과 인민군이 밤낮으로 싸우고, 밤이면 포탄이 날아가는 불빛과 조명탄으로 한여름 밤하늘에 천둥 번개가 치는 듯 소름이 끼쳤었지예”


6.25 당시 함안 지역은 여항산을 경계로 국군과 인민군이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진주와 창녕 방면에서 남강을 건너온 인민군 주력부대가 마산을 점령하려고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었다. 만약 여항산을 넘어 마산으로 가는 방어선이 뚫리면 부산까지 내몰리는 위태한 판국이었다. 그래서 여항산 전투에서 피아간에 수많은 전사자가 생기고 마을사람들은 멀리 마산, 더 넘어 진영 쪽으로 피난을 가기도 하였다. 얼마나 전투가 치열하였든지 낮에는 국군이 밤에는 인민군이 여항산을 차지하여 갓데미산(God damn)이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며칠 뒤 안촌할매집에서 백마부대가 다시 모여 소담을 나누고 근심 걱정을 덜어주는 서로 간의 대화의 시간을 가진다. 오늘은 낙골댁이 오랜만에 집에서 정구지 지짐을 구워 큰 접시에 담아왔다. 특별히 부탁할 일이라도 하소연할 일이라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자! 다들 잘 지냈제, 이제 좀 지나면 곧 추석이 다가오겠구먼”

“오늘은 낙골댁이 정구지 지짐을 구워 왔는데 어데 하소연할 일이라도 있는지 모르것네”

“거기 아이고 매번 얻어만 묵다가 미안해서 마침 집에 정구지가 잘 자랐기에 베어다가 지지미를 했심더”

“자네는 그래도 집에 아들도 넷이고 딸도 둘이나 돼서 무슨 큰 걱정은 없는 것 같은데 지금껏 다른 아낙들의 마음을 상할까 봐 성큼 괴민을 얘기 못했는 것 같은데 말일세”

“지는 어디 큰 고민이야 있겠슴미까만, 낙골양반이 부산으로 가서 아들 공부시킨다고 논밭 팔아서 사기를 당해 재산이 없다는 것 뿐이지예”

“맞아, 그래도 낙골양반이 실패는 하였지만 무슨 사주도 보고 관상도 봐주고 헌책도 팔면서 근근이 큰아와 둘째아 공부를 잘 시킨다면서”

“야! 맞슴미더마는 아직 집에 있는 넷째아, 막내아와 딸내미가 있어 갸들이 고생을 하지예”

“공부는 그래도 잘해서 등록금은 사정해서 안내지만 밥 먹기가 수월한 게 아님니더”

“넷째와 막내아가 산에 가서 나무도 해오고 논밭에 가서 나락 이삭, 보리 이삭을 주워서 겨우 묵고 살지예”

“그리고 부산에 저그 종고모가 사놓은 논을 공짜로 부쳐 먹고 있는 것도 큰 도움이 되지예”

“그라고 너그 서방이 내한테는 조카가 되는데 참말로 기구한 인생살이를 해오고 있제, 저그 아버지가 바로 내 시동생인데 하도 똑똑하여 글도 많이 배우고 해서 일제시대에 신문기자도 하면서 독립운동을 열심히 했제”

“듣기로는 시아부지가 밖으로만 돌아다니셔서 시어머니하고 금실이 그렇게 좋지 못하여 아들도 하나만 낳고 어린 딸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나버리셨지예”

“아마 잘사는 큰집에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양자로 보내면 잘 키워서 공부도 잘 시킬 것 같다고 나름대로의 큰 결단을 내린 셈이것지예”


“와 내가 모르건노, 바로 거기다. 독립운동한다꼬 전국을 돌아다니고 밥묵듯이 경찰서에 갇히고 해서 차라리 비정하지만 모든 걸 큰집에 위탁하고 멀리 떠나버린게 눈물이 겹지, 그래서 나는 너그 신랑을 지독히 에끼고 응원하였다 아이가”

“그라고 너그 서방이 6.25가 터지고 난 뒤 죽다가 살아난거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한다, 아마 보도연맹사건 때문일끼라”

“지가 아는데 아마 그때 살은 게 하늘이 도운 것이 겠지예, 군인들이 들이닥쳐 집에 없자, 집 뒤에 있는 논실할매집으로 숨었는데 할매가 얼른 수건을 한 장을 주면서 머리에 두르고 변소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라 켔지예”

“군인들이 논실할매집을 수색하다가 없자 변소 문을 열라고 하자, 큰 소리로 거기에 우리 며느리가 변을 보는데 무슨 짓이고 하면서 크게 나무라자 물러가서 목숨을 건짓지예”

“만약에 끌려갔다면 마산형무소에서 재판도 없이 바닷물에 수장 당했거나, 땅굴에 몰아 놓고 총살을 당했겠지예”

“아마 너그 서방은 함안 반공청년단장이던 신암댁의 시동생에게 밉보여서 그랬을 끼야, 소문 듣기로 너그 시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고 해서 그럴꺼고, 그 당시 독립운동했던 사람들은 대우받기는커녕 이런저런 명분으로 빨갱이로 몰아 목숨을 잃는 일이 허다하였제“

“맞심더, 그 후로는 너무 놀래서 몇 년간을 병석에 누웠고, 정신이 박약해졌고, 겨우 일어나서도 삶의 의욕을 잃어 주색에 빠져 오랫동안 헤매기도 하였지예”

“오늘은 저의 집안 이야기에 시간을 많이 끌어 미안하구만예,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좀 진정이 될것 같심더”


이렇게 낙골댁을 끝으로 젊은 아낙들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좌장인 광동할매와 안촌할매의 이야기만 남게 되었다. 광동할매는 슬하에 딸만 둘을 두고 아들이 없었다. 광동어른이 워낙 호방하고 친화력이 좋아 함안 향교의 장을 맡기도 하여 학식은 풍부하지 않더라도 대인관계가 좋았다. 읍내에서 알게 된 여자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얻어 집안 호적에 올리고 애지중지 키워 공부도 잘 시켰다. 그리고 장가를 보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금실이 좋지 않아 대학도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가 무슨 사업을 한다면서 잘 내려오지도 않았다. 손녀인 갑덕이를 낳았지만 그리 귀여워하지도 않고 해서 며느리도 서울로 떠나 버리고 말았다. 사실상 갈라서버린 셈이었기에 이러한 사정이 광동할매를 한숨짓게 하고 다른 아낙들의 마음을 더없이 헤아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안촌할매는 딸만 하나를 두고 청상으로 살아왔다. 외손자인 영호가 지어미와 함께 내려오면 서울로 못 올라가게 하였다. 하다못해 외손자인 영호를 자기가 학교에 보내면서 키우겠다고 하여 딸도 어머니의 외로움을 알고 신랑을 설득하여 그렇게 하였다. 너무 주변 울타리기 없어 외로운 터에 자기의 안방을 백마부대 사랑방으로 내놓아 외로움을 달래곤 하였다. 그리고 타향에서 이곳으로 살려고 이사 온 소쿠리쟁이 부부를 자식 하자고 하여, 성은 다르지만 부모처럼 지극히 섬기기도 하였다. 소쿠리쟁이 남자는 군대 가서 동상으로 양발가락을 절단하여 몽당발로 걸음을 걷기에 지게 지는 것도 많이 불편하였지만 부부간의 금실도 좋고 안촌할매를 진짜 어머니처럼 대해 마을 사람들을 감격하게 하였다.

해가 바뀌고 열흘 후면 부처님 오신 날인 사월초파일이다. 안촌할매집에서 열리는 백마부대의 모임도 계속된다. 이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낙들이 하나나 모여들기 시작한다. 광동할매가 자리를 잡으며 미소로서 자상하게 아낙들을 대한다. 오늘도 좋은 말씀을 기대하며 빙빙 둘러앉아 발을 펴기도 오그리기도 하며 기다린다. 광동할매가 말문을 여는데 좀 색다른 이야기를 할 것 같다.


“곧 있으면 사월초파일이고 해서 오늘은 불가에서 말하는 인과응보에 대해서 이야기 할라꼬 한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다 알제, 뿌린 대로 거둔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이네. 사람은 하루하루 시시각각 죄를 짓기도 하고 덕을 베풀어 선업을 짓기도 하제”

“지금 하는 모든 행동거지는 언젠가는 그 결과가 꼭 당도한다는 말로써, 잠깐 시간은 흘러가도 반드시 도달한다는 말일세. 조그마한 죄가 얼마나 큰 화를 불러오는지에 대해 내가 어릴 적에 우리 할매로 부터 들은 이야기를 할까 하네”

“뭐라고예, 광동할매의 할매가 하신 이야기라고예, 그 참 들을만 하것네예, 어서 시작하이소” 신산댁이 성급하게 조른다.

“옛날 한 스님이 어느 가난한 집에서 좁쌀을 공양받아 절로 가져가다가 하도 배가 고파 세네끼를 그래서는 안되는데 입에 털어 넣고 말았다네”

“그 인과로서 스님은 공양을 받은 집의 소로 태어나게 되는 데, 십 년을 논밭을 갈고 송아지를 낳고 하여 큰 고생을 하였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육신을 나누어 고기로 팔려나가고 마지막 고혈도 기름으로 초로 만들어져 부처님전에 바쳐진다는 이야기이다”이렇게 광동할매는 실감하게 손짓 몸짓을 더해서 말소리도 높였다가 낮추었다가 하면서 아낙들에게 이야기를 다했다.

“아! 그라고 보니 조그만 죄도 지어서는 안되겠네예, 좁쌀 세네끼로 소가 되었다 하니,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한 모양인가 보네예”하면서 원북댁이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 분명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 그럴 테고, 반면에 사람으로 태어나면 자기도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죄를 짓는다는 거지, 동물이야 어디 큰 죄를 지을게 있겠는가 마는 사람은 탐하고 분노하고 어리석어 이웃을 해치고 하여 큰 죄를 짓게 되지”

“그 업보는 빠르면 당대에 나타나기도 하고 자식들에게 전가되거나 내세에 윤회를 통해 받게 된다는 거시야”

“지금 남한테 잘하면 언젠가는 복을 받고 남을 해코지하면 언젠가는 벌을 받으니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고 배고픈 동물들에게 먹이 한 줌 주고 하는 게 아주 좋은 일을 하는 게지”

“고진감래라는 말과 비슷한 것인가예”하고 신산댁이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문자를 쓴다.

“하하! 그것도 맞기도 한데, 자기가 고생하면 언젠가는 빛을 본다는 것이고, 인과응보는 무조건 착한 일을 하되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하는 게 더 좋다는 말도 되것제”

“수동댁의 억울함도 가해 당사자가 참회를 안 하면 언젠가는 죄업을 받을 것이고, 용한이 삼촌이 애들 팽개치고 우리 술이가 갑덕이 엄마를 내친 것은 당대나 자식대에 분명히 과보가 나타난다고 봐야제”

“그래서 옛 말에 조강지처는 불하당이라고 공자님인가 맹자님인가가 말씀하셨지를 않았나”

“아! 지도 들어봤심더 조강지처는 불한당이라고예, 지 마누라를 내치는 자는 나쁜 놈이라고 말임미더”하고 신산댁이 또 나선다.


“하하! 재미있는 풀이인데, 바른 뜻은 끼니로 지겨미(덩겨)를 같이 먹고 고생하면서 살아온 아내를 내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 옳은 표현이것제”

“우리 모두는 인과응보의 가르침을 알고 항상 착하게 살아가는 보살행을 하여야 되지 않컨나,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불성이 있어 잘 다스리면 언젠가는 성불한다 안카더나”

“우리 동네에도 내가 보기에는 관세음보살 같은 사람이 몇이 보이더라, 관세음보살은 여자의 모습을 띠니 아낙들이 되것제”

“광동할매! 그들이 누구이던가요, 궁금한데 말씀 한번 해보이소”

“아랫동네에 있는 표정이 너무 인자하고 생각이 깊은 신발장사 가동댁과 병든 아들을 수발하는 해동댁이 그렇다고 보이네”

“나머지 한분은 누구인기요, 혹시 지가 해당되는지예”하고 낙골댁이 말을 재촉한다.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수동댁이 아니건나, 정하려면 끝도 없어서 세명만 정했다. 그래서 그들을 택호가 마침 洞자가 붙어 삼동보살이라고 부르기로 하자”하고 광동할매는 웃으면서 말한다.

“그 말고도 저우에 사는 논실댁이나, 여기 계시는 안촌할매도 그들 못지는 않지, 낙골댁은 심성은 좋고 남에게 많이 베푸는 보살심이 있으나, 말이 급하고 다소 의젓하지 못한 게 결격사유라면 사유랄까, 하하”

“그라고 남자들도 보살심을 가지고 있는데 속이 깊고 지혜로운 문수보살로 불러준다면 우리 동네에 몇 명이 있을 낀데, 한번 불러봐라 내 생각하고 맞는지”

“지 생각에는 대산댁 아들 현규하고 서재 산지기 아들 광수, 그리고 모산댁의 아들 정규가 어떨런지예”하고 수동댁이 말한다.

“아주 정확하네 내 생각하고 딱 맞네, 역시 보살이 보살을 알아보는구먼”

“나는 현규, 광수 말고 정규 아버지 모산어른을 생각했는데 나이에 맞추어 그 아들 정규로 해도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하여 밤은 무러 익어가고 이야기도 서서히 막을 내리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이윽고 사월초파일이 다가왔다. 아침을 챙겨주고 먹고 난 후 광동할매를 선두로 하여 여항산 자락의 의상대를 가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야 한다. 수동댁을 비롯한 백마부대 아낙들이 함께 가기로 하였고, 눈이 어두운 안촌할매는 마음속으로 빌기로 했다. 머리에는 쌀 보자기를 이고 손에는 간식거리를 들고 마을 어귀를 벗어나 갱골을 거쳐 광정마을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여기서부터는 길을 잘 아는 광동할매가 앞장을 서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걸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길이 가파르고 높이도 산 중턱에 있어 만만치 않은 길이다. 잡목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산길을 차근차근 챙기면서 나아간다. 그야말로 노마지지(老馬之智)이라더니 먼저 살아왔고 수없이 순례했던 길을 잃지 않고 잘 헤쳐나갔다. 백마부대원들은 지나온 괴항마을이 아득히 바라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평바위에 짐을 내려놓고 가져온 간식 주머니를 풀었다. 일행은 삶은 감자를 짠 소금에 찍어 먹고 숭늉을 한 모금씩 들이키고 광동할매는 담배를 한대 말아 피운다. 희끗희끗한 담배연기가 백발의 머리숲을 헤치며 하늘로 날아간다. 마치 산신할매가 흰구름 타고 내려와서 다시 올라가듯이 광동할매는 산에서 보니 산신할매 같이 보였다.


다시 일어서서 걷기 시작하니 해를 보니 점심시간이 얼추 다되어간다. 의상대에 도착하려면 한 반시간은 더가야 할 것 같고, 도착하면 공양시간하고 맞을 것 같아, 공양하기 전에 부처님전에 절을 하고 빌고 공양물을 올려야 하니 조금 서두르기로 하였다.

“야들아 많이 고되제! 이제 다와 가니 조금만 힘내고 참으라이”하고 광동할매가 독려한다. “괜찮슴미더, 이 정도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예, 가야장에 갈 때도 군북장에 갈 때도 몇 십리 길을 걸어 다녔고, 가파른 뒷산 밭에 물과 거름을 주려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올랐다 아임니꺼” 수동댁이 담담한 표정으로 숨을 고르며 말한다. 하기사 일상생활이 노동이요, 들고 걸어 다니고, 이고 오르고 하는 것이 아낙들의 하루하루 일이니 그 정도는 아무런 불편이 아니었다.


드디어 산 중턱 자락을 돌아가니 목탁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의상대에 근 두 시간 넘게 걸려 다다른 것이다. 산길 지름길이 아니고 저 멀리 군북과 사촌마을로 돌아오면 몇 배의 거리를 걸어야 하니, 산길을 올라 지름길로 가는 것이 정상적인 접근경로이다. 아낙들은 대웅전에 시주할 공양물을 풀어 부처님전에 바치고 꼬깃꼬깃 접은 지폐를 몇 장 불전함에 넣는다. “대자대비한 부처님이시여, 우리 가족 건강하고 복 많이 받게 해주이소” “부처님 돌아가신 서방님이 극락왕생하여 잘 지내기를 바라고 우리 딸들 아무 탈없이 잘 살길 빕니다” “부처님 우리 아들이 객지에서 건강하게 일하면서 어미를 잊지 않고 이번 명절에는 내려오게 해주이소” “부처님 우리 서방하고 아들이 아무 탈없이 건강하고, 하늘나라로 간 애들이 서방정토에서 태어나게 해주이소”하면서 각자의 소원을 빌고 절을 수십 번도 더 하였다. 돌아오는 길은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내리막길에다가 무거운 공양미를 풀고 마음도 풀고 해서 다들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초파일 의상대 순례와 시주를 잘 마치고 돌아왔다. 저녁에는 이수정 못에서 낙화놀이가 있으니 몸을 씻고 편안하게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산댁 아들 현규는 낙화놀이 준비를 위해 작년 뒷산에서 베어온 참나무를 황토가마에 며칠을 구워질 좋은 숯을 만들었다. 그만이 아는 윗대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이다. 그 숯을 절구에 하나나 빻아 보드라운 숯가루를 만들었다. 마을 회관에 아낙들이 둘러앉아 소금을 적당히 섞은 숯가루를 전통 한지에 말아 길쭉한 낙화심지를 수백 개나 만들었다.


초파일 오후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인파가 둥그런 연못 언덕에 진을 친다. 인근의 한지골에서, 읍내에서, 잣뫼에서, 검암에서, 새터에서, 들기미에서, 가야에서 구경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아낙네는 앞줄에 앉고 남정네는 뒷줄에 서서 장엄한 낙화의 향연을 기다린다. 백마부대 아낙들도 낙화 보기가 좋은 자리에 퍼져 앉았다. 수동댁 옆에는 낙골댁이 중간에는 광동할매, 안촌할매가 옆에는 신산댁과 원북댁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기다리고 있다. 조남산을 넘어간 해가 성채에 석양을 만들기 시작하면, 청년들이 낙화 점화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드럼통을 밑에 묶어 만든 두 척의 뗏목이 신호를 기다린다. 한 척에는 윗동네의 점제와 평래가 다른 한 척에는 아랫동네 쑥판이와 강석이가 타고 있다.

땅거미가 끼고 무진정의 자태가 어둠 속에 잠겨가자 총지휘자인 원북댁 남편인 구장 근조가 점화를 알리는 징을 크게 울린다. 구아앙∼ 구아앙∼ 징이 몇 번 울고 너울이 그치자, 뗏목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손에 횃불을 들고 연못 위에 철사줄에 묶인 낙화 심지에 불을 붙인다. 바깥에서 안쪽으로 안쪽에서 바깥으로 뗏목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낙화 심지에 불이 붙어 밑둥에서 부터 아주 서서히 위로 타오르며 금빛 재를 날리기 시작한다.


낙화가 내린다. 캄캄한 밤하늘에는 별빛이 내리고, 어두운 연못 위에 꽃비기 날린다. 하늘에서 내려오고 물밑에서 올라와서 수면에서 함께 만난다. 이별한 영혼이 꽃비 되어 함께 만난다. 그리움을 안은 슬픔의 눈물인가, 해후를 반기는 기쁨의 찬가인가. 슬퍼기도 기쁘기도 한 초파일 밤의 향연이여. 서서히 하늘거리듯 내리다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꽃비여. 길쭉한 심지가 생명을 다해가며 낙화가 마지막 춤사위를 끝내면은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도 함께 끝난다.

수동댁의 눈시울에 물방울이 어린다. 서서히 흘러내려 양쪽 뺨을 적신다. 수십 번 낙화놀이를 보았지만 오늘따라 새롭고 신묘하게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같은 길이로 만들어진 심지이건만 타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은 다르다. 모두들 수백 개 낙화심지 중 하나를 자기 것으로 정하여 지난날을 추상한다. 꺼질 듯 말 듯 하면서 끈질게 타오르기도, 한꺼번에 쏟아내며 화끈하게 끝내기도 그 많은 심지는 각양각색으로 타들어간다. 아! 나의 운명은 어디에 해당하는가? 스스로 자문자답하며 깊은 침묵 속에 낙화놀이는 스스로가 만들어간다.


참나무가 가마에서 구워져 숯이 되고 숯가루가 되어 심지에 묶여 찬란한 빛을 남기며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가마에서 탐욕과 분노의 불순물을 태워 날려 보내고 오직 청정한 진수만을 남겨 숯이 되었다. 재가 되면 모든 것이 사멸하지만 숯은 그 속에 영혼을 간직하여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 숯이 되어 슬프게 보이지만 새까만 가루는 수많은 꽃으로 승화하지 않았던가. 한나절 꽃밭에서 노닐다가 저녁이면 보이지 않는 노랑나비처럼 말이다. 그것은 슬프기도 하지만 바람에 날리는 꽃처럼 아름다운 꽃놀이가 아니던가.


참으로 수동댁은 참나무 같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참나무는 도토리를 길러 산짐승들의 먹이를 만들고, 세찬 비바람을 막아주고, 겨울에는 겨우살이와 함께 공생하는 그 미덕은 가늠하기가 힘들다. 이제 그 참나무는 몸마저 공양하여 숱한 숯가루가 되어 꽃비를 내리고 있지 않은가. 시작과 마무리가 자신을 닮았다고 불현듯 느끼며 수동댁은 지난 세월에 대한 감회가 새롭다.


아! 인생은 낙화유수인가, 한바탕 낙화놀이인가, 마음에 응어리진 한이 풀려 하늘하늘 자신도 낙화가 되어 나비가 되어 흩날린다. 서러움도 눈물도 다 씻겨 가버리고 모든 게 찬란한 어울림의 한마당이 되어버렸다. 초파일 좋은 시절에 봄꽃이 피고 연못에는 연꽃대신 낙화가 장식하는 장엄한 밤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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