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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7화. 배롱나무의 전설

그의 선산에 있는 두 그루의 배롱나무에 얽힌 전설

by 벽운

배롱나무의 전설


그가 태어난 마을의 산성 가는 길목에 있는 어느 산소에 배롱나무 두 그루가 서있다. 한 그루는 줄기가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여섯 갈래이다. 그래서 한 줄기가 있는 것은 수나무, 여섯 줄기인 것은 암나무로 부르며, 그 특이한 나무의 모양을 보고 전해오는 전설이 있었다.

“여섯 갈래는 자손의 숫자이며, 한 갈래는 그리운 한 사람이고, 그것을 심은 자손은 외로운 사람이다.”는 전설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여러 갈래 배롱나무에 100일 동안 빌면 그 숫자만큼 자식을 낳는다는 풍문도 있었다. 자식이 없는 부유한 집안은 그러면 좋겠지만, 살기가 힘든 집안은 넘쳐나는 식구를 감당할 수 없기에 그럴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어릴 적에 들은 배롱나무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도 있었다. 그 동네에서 잘 살지마는 아들이 없는 집안이 있었는데, 그 전설을 듣고 남의 눈을 피해 밤중에 찾아와서 빌었다. 그 집안은 이미 자식들이 여섯 명을 초과하여 더 이상 소원을 들어줄 수가 없다고 삼신할매가 말하였다. 다른 한집은 자식들은 다섯 명인데 아들이 없어 아들 한 명을 낳게 해달라고 빌었다. 자식의 숫자를 맞추는 것은 되지만 아들과 딸을 선별해 주지는 못한다고 할매가 말하자, 그 아낙은 그것까지 하실 수 없으면 일단 한 명이라고 더 낳아 보게 부탁하였더니, 결국 딸을 낳아 여섯 명의 딸로서 마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동네에는 육공주니 칠공주니 하는 집안이 수두룩하여 아들 하나 낳기가 정말로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배롱나무의 전설은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 선호 유교사상에 의한 여인들의 한을 내포하고 있다. 아들을 낳기도 힘들지만 낳은 아들이 안 죽고 성장하기를 바랐기에 이름도 특이하게 지었다. 자기를 낳은 어머니 외에 새어머니를 정하여 아들을 팔면 명이 길다고 하여, 판식이니, 판세니, 판만이니 하는 이름을 지었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 딸을 그만 놓기를 비는 뜻에서, 마지막 낳은 딸의 이름을 말자니, 말숙이니, 끝제니하고 짓기도 하였다. 이처럼 아들 선호사상 때문에 많은 여인들이 배롱나무에 빌었으며 소원을 성취하기도 좌절하기도 하였다.


대를 잇지 못하면 조상에게 불효가 된다고 하여, 아들이 없으면 양자를 들이는 일이 자연스런 관례가 된 것이다. 아들이나 딸을 낳는 것은 어머니로서 딸이 그러한 일을 하는데도, 태어나서 씨를 뿌리기만 하는 고추가 더 중요한 모양이었다. 밭이 아무리 좋아도 생명력이 없는 씨앗이거나 부실하면, 발아가 안되거나 허약해지는 것은 곡식이나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예부터 고추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것이다.


어릴 적에 명절에 산소를 가거나 매년 지내는 시사 때, 다른 산소에는 없는 배롱나무가 있어 무척 궁금하였다.

“어무이, 저 성산산성터에 있는 고조할매 산소에 두 그루 배롱나무는 누가 심어능기요.”

“나도 잘 모르것다. 너그 아부지한테 물어보면 알란가 모르것네. 거그 뭐할라고 묻노.”

“배롱나무 두 그루가 양쪽에 서있고 꽃이 피면 참 예쁘기도 하여 궁금해서, 그 할매가 그 꽃을 좋아한 긴지 아니면 절에 다니셨는가 해서요.”

“옛날에 묵고 살기도 바빴는데 뭐할라고 꽃을 좋아할 끼며, 절에는 시골 아낙네들은 다 다녔제.”

“그 어려웠던 시절에 마음을 의지할 데 없는 아낙네들은 집안 어른의 묵인 하에 부처님께 절하고 시주도 하였다 아니가.”


나이가 차츰 들고 부터 조상들의 산소 위치가 모여져 있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족보를 펼쳐보며 선대들의 산소 위치를 확인하고 그곳에도 시사때에 다녀오곤 하였다. 먼저 고조할머니의 산소는 홀로 있고, 고조할아버지는 저 멀리 동쪽의 산인면 대밭곡 산중에 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누가 고조할머니 산소에 어떠한 이유에서 배롱나무를 심었단 말이던가. 집안에서는 아무도 정확한 답변을 안 하고 그런데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족보를 유심히 들여다보니 특이한 부분이 있어 그 이유를 알아보려고 하였다.


“형님, 둘째 할아버지는 어디로 양자를 갔는가요. 족보에는 다섯분의 할아버지가 계시던데요.”

“아마 둘째인 광동 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의 동생분이 아들이 없어 제사를 모시려고 거기로 간걸로 안다.”

“그렇군요, 옛날에는 제사를 모실 아들이 없으면 형제간에 한명을 그 밑으로 양자로 보내는 관습이 있었지요. 그래서 족보에서는 직계와 방계 양쪽으로 올려져 그 뿌리를 알 수 있게 해 두었군요.”

“맞아, 그래서 족보가 중요한 것이지. 그걸 보면 자신의 뿌리를 훤히 볼 수가 있고 산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있으니 중요한 가문의 자료이기도 하지.”


그는 형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배롱나무에 얽힌 사연을 알 수가 없어, 자신만의 상상력을 동원하고 족보도 참고하여 파헤쳐 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산소의 위치며 따로 떨어져 있는 산소에 대한 이유, 가족관계 등을 통하여 나름대로 분석해 나갔다. 그렇게 하여 큰집 유동할머니의 산소와 큰 할아버지의 산소가 고조할머니, 고조할아버지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의문의 실마리가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큰 할아버지는 우리 마을 선산에서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여항산과 나란히 서있는 봉화산 자락에 터를 잡고 영면하고 계신 것이다. 어릴 적에 우리 동네에서 삼십 리나 떨어진 여항면 내곡리 한티고개 근방의 산소에 묘사를 지내려 가는데 따라가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세월이 많이 흘러 요양병원에서 오랫동안 투병하시던 어머니도 돌아가셔서 마을 뒤편 선산에 아버지 곁에 묻혔다. 이제는 그 옛날 궁금하던 일들을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산소의 내력 또한 더 이상 알아볼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새로운 계기가 올지는 모르지만 관심에서 일시 잠복하여 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 추석 전에 성묘도 할 겸 산소에 가고 싶어, 아들을 설득하여 함께 가보려고 한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산소의 잔디며 나무들이 잘 자라는지 확인하고 묘역을 손질도 하여야 한다. 어느덧 산성이 눈앞에 들어오고 가는 길목에 배롱나무 두 그루가 부처꽃을 피우고 있었다. 백일홍이라고 하여 근 100일간을 쉬지 않고 꽃을 피우니, 그 끈기와 속에 담은 그리운 정에 대단한 나무라고 여겨진다.


“아, 꽃이 참 예쁘네. 잘 돌보지도 않았는데 그리 꽃을 피운다 말인고. 야야, 꽃이 어떻노.”하고 아들에게 묻는다. 답을 바라기보다 감탄의 표시로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나무 이름도 모르겠고, 100일간 핀다고 한다는데 그건 좀 신기하기도 하네요.”하고 아들이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여기가 내 고조할매 산소다. 우리 선산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니 여기서부터 착착 술잔을 올리고 나가면 된다. 우리 직계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합쳐 여섯 봉분이고 작은 집 할배, 할매도 있으니 모두 열 군데에 절을 해야 하니 만만치 않으니 잘 참으라.”하고 아들을 격려하면서 당부한다.


동네 아는 동생뻘 되는 청년들에게 벌초를 맡겨 놓았더니 깔끔하게 잘 해놓아 기분이 좋았다. 이제 형제들이 나이가 들고 그 무거운 예초기를 들고 벌초를 한다는 게 무리다. 그래서 수고비를 주고 맡기니 효성이라는 점에서는 다소 민망하지만 위험하기도 한 작업을 할 수가 없으니 조상들도 이해해 주리라고 믿었다. 항상 하던 대로 증조할머니 묘를 거쳐 윗대부터 순차적으로 잔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부모님 산소 앞에서 숨을 고르고 저 멀리 여항산과 봉화산을 바라보며 잠깐 휴식을 취하였다.


저 멀리 바라보이는 봉화산 자락에는 가문의 발복을 위하여 홀로 묻힌 큰 할아버지가 이쪽을 바라보고 계신 듯하였다. 묘역 주변에는 당숙부가 심어놓은 매화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그 높이를 키워가고 있었다. 봄이 되면 매화향이 퍼져나가 글 읽던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배롱나무와 매화나무는 나름대로 끈기와 지조를 갖고 있는 나무들이다. 책 읽는 선비들의 뜰안에는 어김없이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런데 배롱나무는 부처나무라고 불교를 상징한다고 하여 선비 집안에는 잘 키우지 않는다. 어쩌다 서원의 정원이나 정자에 한 두 그루가 심겨 있는 것은, 백일동안 꽃을 피우는 끈질긴 정신을 본받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얘야, 할아버지, 할머니 봉분에 있는 덧자란 잡초를 낫으로 좀 베어라. 그러고 나서 잔을 올리고 마무리하자.”

“예, 아버지! 벌초를 잘해놓아서 별로 손댈 데가 없네 예.”

“그러면 술잔을 할아버지, 할머니께 잔을 올리고 재배를 하자. 손자가 왔다고 반가와 할끼다.”

이와 같이 하여 부모님께 술잔을 올리는 것으로 하여 성묘를 마무리하였다. 부어 놓은 술을 봉분에 이리저리 뿌리고 안주로 준비해 온 어포를 뜯어 산신에게 고수래하였다. 그리고 남은 술을 한잔 따라 아들하고 나누어 음복을 하였다. 오랜만에 추석을 앞두고 산소를 찾아 절을 올리니 마음이 편안하였다. 저 멀리 봉화산을 조망하며 시원하게 불어오는 초가을 바람이 땀을 씻어준다.


“오늘 수고했다. 점심은 좀 늦었지만 읍내 장터에 있는 유명한 국밥집에서 먹고 가자. 수육도 한 접시 시키고 요기를 하자꾸나.”

“예, 그 국밥집의 국밥이 참 맛있데예. 수육도 푸짐하게 주고 상추에 싸서 먹으니까 좋데예. 그런 기분 때문에 자주 오고 싶습니다.”

“오, 그래, 조상들 산소에 성묘도 하고 땀을 흘리고 나서 먹는 국밥 맛은 기막히게 좋지. 그 집은 아주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줄을 서야 하지.”


이렇게 선산에 있는 산소를 들러 성묘를 하고 무진정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무진정 언덕 위에도 배롱나무 몇 그루가 꽃을 화사하게 피우고 있었다. 읍내 장터에서 국밥과 수육을 다 먹고 배를 두들기며 나왔다. 아이들은 맛있는 먹거리로 성묘를 오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아직 철이 다 안 들었기에 조상을 모시는 효도의 깊은 뜻은 나이가 좀 들면 알게 될 것이다. 그가 그랬듯이 선친께서도 항상 성묘를 간다거나, 집안 행사에 간다고 할 적에는 과자를 사주고 하였던 것이 같은 맥락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다음 해 식목일이 다가왔다. 이날은 청명한식이라고 하여 산소를 둘러보고 손을 보는 날이다. 이번에는 부모님 산소가 있는 묘역에 나무를 몇 그루 심어 보기로 하였다. 오래전에 심어놓은 측백인가 편백인가 하는 나무는 토질이 안 맞는지 관리를 잘못해서 그런지, 몇 그루가 말라죽어있던 것을 작년 성묘 때 보았다. 그래서 큰 할머니 산소와 부모님 산소 양끝자락에 배롱나무를 한 그루씩 심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는 유학자로서 불교에 관심이 없지만 큰 할머니와 어머니는 여인으로서 의지처를 절이다 생각하고 자주 절에 다녔기 때문에 심어도 무방하다고 생각되었다.


“얘야, 이번 식목일 날에 같이 산소에 성묘하고 나무도 심고 하려는데 시간이 나냐?”

“예, 시간이 있습니다. 저도 일 년에 식목일과 가을 성묘 때는 가급적 가려고 합니다.”

“그래, 잘됐다. 가는 김에 나무시장에 가서 배롱나무 두 그루를 사서 가져가자.”

“그리고 마치고 나서 읍내 장터에 가서 국밥하고 수육 한 접시 먹고 오면 맛도 있고 좋을 것 같다.”

“예, 저도 그런 기대도 있고 해서 산소에 가는 날이 은근히 기다려집니다.”


이렇게 부자가 뜻을 모아 식목일 날에 산소에 나무를 심는 다소 고된 일정을 잡았다. 엄궁동의 나무시장에서 튼실한 배롱나무 묘목 두 그루를 화분에 담아 차에 실었다. 무겁기 때문에 오늘은 좀 고생을 해야 할 것 같아 아들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아들은 친할아버지의 제사와 차례를 모시는 데 불평 없이 잘해 왔기에 믿음이 갔다.


사실 그는 형제가 네 명이나 되는데 족보상으로 친할아버지 밑으로 올려져 있다. 큰 할아버지댁에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그의 아버지가 큰집으로 양자로 간 것이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과 누나, 여동생 모두 족보상으로 거기로 옮겨갔다. 친할아버지를 모실 대를 잇기 위해 둘째인 그가 족보에 올라가고, 관례에 따라 제사와 명절 때 차례를 별도로 모시게 된 것이다. 그래서 둘째의 역할과 운명이 좀 특이하다고 여기며, 둘째 할아버지가 양자로 간 것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아, 배롱나무 참 튼실하네. 심어 놓으면 우리 선산을 자기 집이라 생각하고 잘 자라겠네.”

“아버지, 오늘 식목일이라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니 심어 놓으면 물을 안 주어도 잘 자라겠네 예.”

“하늘도 효성에 감복하여 부슬비라도 내리는지 모르겠네. 좌우지간 오늘 나무 심는 것 잘 결정한 것 같다.”

“그렇네예. 쨍쨍 햇빛이 내리는 것보다 비가 와서 땅에 습기가 있어야 나무도 생기를 찾게지예.”하면서 아들도 맞장구를 친다.

무거운 배롱나무 두 그루 중 큰 것은 아들이 들고 배낭까지 메었고, 그는 한 손에는 작은 배롱나무를 부둥켜안고 한 손에는 물통을 들었다.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져서 다칠 수 있기에 무슨 보물을 운반하듯이 천천히 경사가 완만한 산길을 돌아갔다. 비 오듯이 내리는 땀이 부슬비에 섞여 눈으로 입으로 들어온다. 가다가 쉬고 몇 번을 그렇게 하여 무사히 산소에 도착하였다. 일단 나무를 심고 나서 선조들의 산소에 잔을 올리기로 하였다. 조상들도 그 점을 이해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아따, 수고했다. 미끄러지지 않고 무사히 잘 들고 왔네. 좀 쉬었다가 땅을 파서 배롱나무를 심자.”

“예, 땅이 좀 미끄러웠지만 크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군대도 갔다 오고 어릴 적에 아버지 하고 산을 많이 타서 할만했습니다.”

비가 촉촉이 땅을 적셔놓아 괭이는 깊게 잘 들어갔다. 묘목이 어리니 적당한 깊이면 되고 물을 충분히 주는 게 중요하다. 하늘도 감응하였는지 제법 굵직하게 빗방울을 뿌린다. 옷은 흙투성이가 되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임무를 완수하였기에 개의치 않았다.


세월은 흘러 흘러 그때 심은 배롱나무는 안 죽고 잘 자라고 매년 키를 키워나갔다. 몇 년 후에는 제법 아름다운 꽃을 피워 심은 보람을 느끼고, 가을이면 함께 가는 아들도 자기가 힘들게 운반하여 심은 나무가 잘 자라니 좋아할 것 같았다. 이제는 당숙께서 심어놓은 매화나무와 함께 어우러져 봄, 여름, 가을에 걸쳐 꽃을 피우니, 큰 할머니와 부모님께서 편안하게 잠드실 것 같았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가족 묘원이 조성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감격할 것 같았다.


어느 날 군청에서 선산이 문화재관리구역에 편입되어 협의수용된다는 공문이 날아왔다. 몇 년 전에도 한번 받아 보고 가족 협의 끝에 수용에 반대한다고 통지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우리 집안 선대의 묘지가 있는 땅은 제외하고 협의수용한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묘역도 포함되어서 통지가 온 것이다. 너무나 놀라서 형님께 상의하니 결국은 강제수용이 될 것이기에 어차피 묘지를 옮겨야 할 것 같다고 수용하자는 의도 같았다.

그는 그럴 수는 없는 법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하기로 하면서 직접 나서기로 했다. 우선 예전에 보내온 공문에 표시된 지번과 다른 지번이 왜 포함되었는지, 문화재 보호도 중요하지만 한 가문의 선대에 걸쳐 내려온 묘지를 함부로 수용해서 되겠느냐고 문서로 먼저 보냈다. 그러고 나자 군청에서 담당주무관이 전화가 와서 행정착오로 묘지가 포함되었으니, 시정하겠다고 하였다. 확실하게 문서로 보내라고 하니 정정 통보가 와서 해결된 아찔한 기억이 있다.


군청은 성산산성 탐방객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향후에 주차장을 비롯한 부대시설을 계획 중에 있었던 것이다. 하기사 현재 방치되어 잡목으로 숲이 되어버린 밭을 적당한 가격에 협의매매하면 금전적으로는 이익이 되는 게 맞다. 선대에서 물려받은 밭을 보상받아 돈을 챙긴다는 게 좀 민망하지만 어쩔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 형님 잘못하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때 군청에서 잘못 적어 보낸 지번에 대해 이의 제기를 안 했으면 우리 할머니, 부모님 산소가 어찌 될 뻔하였을까 예.”

“그래 말이제. 할머니, 부모님 묘소를 어디로 옮길 것인가에 대해 좀 걱정이 되더라. ”

“그들이 처음부터 묘역을 포함시켰으면 행정소송까지 해야 하는데, 슬쩍 추가로 편입시켜 반응을 보고 격렬히 반발하니까 제자리로 돌린 게지요. 하여튼 공무원들이 주민들을 간혹 기만하기도 하는 게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선조들이 묻힌 가족묘원은 보존되고 악몽 같은 강제수용에 대한 불안감은 해소되었다. 그것은 매화나무를 심고, 배롱나무도 심고, 묘역을 잘 가꾸고 있는 것을 군청에서 보고 가서 전체를 수용한다는 방침을 바꾸었는지도 모른다. 그들도 조상 묘가 있는 선산이 있을 테니 말이다. 만약 밀림처럼 벌초도 안 하고 나무도 안 심고 팽개쳐버렸다면 군청은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하였을 것이다. 조상을 잘 모시면 산천도 사람도 감동한다는 옛말이 와 닫는다.


산소 양옆에 심어놓은 배롱나무는 매년 키를 키워 이제는 당당한 어른이 되었다. 심은지 십 년이 다 되어가니 클 만큼 컸고 이제는 견고히 뿌리를 내려 비바람을 견뎌 내기만 하면 된다. 어쩌면 매화나무와 배롱나무가 묘역을 지킨 것이 아닌지 한편 그렇게 믿고 싶다. 성산산성 가는 길이 탐방로 개설로 도로가 확장될 예정인데, 그 길가에 있는 두 그루의 배롱나무는 고조할머니의 산소가 도로에 편입되지 않게 하는 수호신이 될 것이다. 배롱나무는 자비심을 불러일으키고 주변을 보호하는 신목이니, 그런 이유에서 자손들이 배롱나무를 심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먼저 고조할머니 산소에 배롱나무를 심은 뜻은 이제 알게 되었다. 나머지는 전설에 나오는 두 그루 나무를 심은 외로운 손자가 누구인가를 찾아내어야 했다. 그는 소장하고 있는 족보를 면밀하게 분석하여 선조들의 생몰연대, 묘소 위치, 배우자에 대한 정보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족보는 소장한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알 수 없는 배롱나무에 대한 전설을 풀 수 있는 핵심 키워드가 거기에 수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록과 자신의 생각을 보태어 그 전설을 가설로 하여 본격적으로 검증해 나갔던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뿌리를 알고 그것을 계승하려고 하는 속성이 있다. 족보에 등재된 자신의 이름을 보고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끼며 그것을 유지하려고 한다. 본래의 족보의 원류에서 벗어나 양자로 가며는 단절될 뻔한 주류 계통은 이어지겠지만 자신은 주류에서 이탈하여 지류가 되고 만다. 그래서 양자로 가는 경우에는 당대에는 모르지만, 긴 세월이 흐르면 같은 형제들과 멀어져 버려 외로운 신세가 되고 만다.


그의 둘째 할아버지는 양자의 길을 가게 되었지만 원뿌리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도 딸만 둘이고 아들이 없었기에, 자신을 포함한 다섯 아들의 아버지를 낳게 해 준 할머니에게 빌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둘째 할아버지의 부인인 광동할머니는 자비로운 보살 같다고 주변에 널리 알려졌었다. 남편 없는 외로운 아낙과 아들 없이 서러운 아낙들을 다독이며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한 관세음보살 같은 분이었다. 그러한 점도 둘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의논하여 불심 깊은 배롱나무를 심자고 하였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도 둘째이었기에 둘째 할아버지의 입장과 비슷한 처지를 이후에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가 있다.

“얘야, 나하고 마산에 있는 친할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자. 마산까지 기차 타고 가면 재미있고 맛있는 과자도 사줄께.”

“아버지, 형님과 함께 가면 안 좋습니까. 같이 가면 안될까 예.”

“그건 알 것 없고 그냥 내 따라오너라. 마산 가면 바다도 보고 참 좋다.”

“그러면 형님한테는 미안한 데 따라 가겠슴니더, 맛있는 것 사주이소 예.”하고 둘째 아들인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한다.

아버지와 그는 기차를 타고 마산역에 내려 무학산 자락의 공동묘지를 찾아갔다. 늦가을이라 그의 키보다 높은 억새가 우거져 있어 양손으로 헤쳐 가며 찾아간 게 허름한 산소이었다. 조그만 비석에는 한자로 된 이름이 적혀있었고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 여기 다 왔다. 이 잔에 소주를 한잔 따라봐라. 그리고 두 번 절하자.”

“여기가 누구의 산소입니꺼. 왜 이리 멀리에 산소를 정했습니꺼.”하고 아들이 묻자 아버지는 다소 난감한 듯이 말한다.

“여기 모신 분이 나의 아버지가 되고 너에게는 친할아버지가 되신다. 옛날 독립운동 하다가 폐결핵에 걸려 마산결핵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알겠슴니더, 우리 할배는 두 분이시네 예. 성묘 가고 묘사 가고 하는 산소하고 이곳 하고 말임니더.”

“그래, 맞다. 천천히 알게 될 거고, 여기 할아버지는 너의 친할아버지이니까 앞으로 네가 잘 모셔야 한다.”하고 아버지는 깊이 말을 하지 않고 챙겨서 내려가지고 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친할아버지 밑으로 족보를 옮기게 된 사연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고 자신도 앞으로 그런 점을 이해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고조할머니는 과연 어떠한 성품을 지녔던 분인가에 대해 궁금증이 갔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고 단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족보를 보니 아들을 몇 명 낳았으니 큰 서러움은 받지 않았을 것이라 보이고, 혹시 다 키운 아이들을 병으로 잃어버린 한은 있을 수도 있겠다. 그 당시 생계가 어려워 가문의 번창과 발복을 위하여 절에 가서 시주를 하면서 간절히 빌고 했을 수도 있겠다. 고조할아버지가 같이 묻히지 못하고 동네 건너편 대밭곡에 홀로 묻혀, 후손들이 번창하고 가문이 일어서기를 염원하였던 것을 추측해 볼 수도 있겠다. 그 자신이 큰 할머니와 부모님 산소에 배롱나무를 심은 뜻이라기보다 심은 마음도 그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느 해 추석을 앞두고 벌초 확인 겸 성묘를 다녀오려고 하였다. 구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고향역에 내렸다. 마을을 통과하여 천천히 산을 오른다. 산성터 입구에 있는 고조할머니 산소에 먼저 들렀다. 배롱나무 두 그루가 분홍색 꽃잎을 피우며 그를 반긴다. 깔끔하게 벌초한 산소의 상석에 잔을 치고 재배를 하였다. 배롱나무 한그루는 줄기가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여섯 갈래이다. 한그루는 할아버지를 닮았고 한 그루는 할머니를 닮은 것인가. 여섯 줄기가 우리 집의 육 남매를 연상케 하였다.


그는 배롱나무 밑 벌초가 깔끔하게 된 산소 아래 모퉁이에 주저앉아 한숨을 고르고 조용히 사색에 잠긴다. 초가을의 날씨는 따사롭기도 선선하기도 하다. 저 멀리 펼쳐지는 능선 위로 흰 구름이 유유히 흘러간다. 그리고 저절로 두 눈이 슬며시 감긴다.


“여기에 앉아 있는 사람은 누구인고. 우리 가문의 후손인가, 아니면 지나가는 길손인가. 배롱나무 그늘이 시원해서 쉬어가기도 좋소.”하고 어떤 할머니가 나타나 말을 건넨다.

“여기가 저의 고조할머니 산소라서 성묘를 하고, 배롱나무꽃이 예쁘게 잘 피어 있고 전망이 좋아 잔디에 앉아 저 멀리 여항산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힘드실 텐데 무슨 일이 있어 올라오셨습니까.”

“아, 그렇구나. 내가 바로 이곳에 묻혀 있는 너그 고조 할매다. 이렇게 벌초도 잘해주고 잔도 올려주니 고맙기도 하다.”

“할머니, 그런데 저 배롱나무는 누가 심었는지 잘 모르시겠지 예. 나도 물어볼 데도 없고 해서 참 궁금합니다.”

“너그 고조 할배가 대밭곡에 먼저 묻혀 멀리 떨어져 내가 외로울까 봐, 어느 기특한 손자가 배롱나무 두 그루를 심은 모양이더라. 그리고 내가 아들만 다섯에다가 딸 하나로 모두 여섯을 낳았으니, 나를 기리면 가문이 번창하겠다는 믿음도 있었을 테고 말이제.”

“참으로 신기합니다. 우리 어머니도 아들 넷에다가 딸을 둘이나 낳았으니, 모두 여섯인 것은 할머니 자녀들 숫자와 같네예.”

“하하, 그렇구만. 너그 어머니가 참으로 기특하구나. 네 명의 아들을 낳아서 이렇게 명절이나 시사 때 성묘도 해주고 하니 말이다. 그러니 너그 부모님이 너그들에게 조상을 잘 모셔라고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그런 것 같구나.”

“아이구, 고조할머니 그렇게 칭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른 나무도 있는데 왜 배롱나무를 심었을까 예. 소나무도 있고 주목도 있는데 말입니더.”

“그건 내가 절에 자주 다녀 부처님께 시주하고 빌고 하는 걸 알고, 부처님과 인연이 깊다고 심었는 게 아닌가 짐작이 간다. 그라고 내가 칠십 넘어 까지 살았으니까 장수했다고 축하도 해줄 겸 말이다.”하고 고조할머니는 말씀하신다.


그 순간 길가에서 헛기침 소리와 인기척이 들린다. 그가 아주 짧은 시간에 꿈을 꾼 모양이다. 눈을 떠보니 어느 나이가 든 분이 산성 쪽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잠깐 주춤하면서 말을 걸어온다.


“여기에 성묘하러 오셨나 보네 예. 그 산소가 집안 묘지인가요. 어릴 적에 보았던 배롱나무가 아직도 있네요.”

“산소에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잘 안 심는 나무라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전설이 있니 하는 이야기를 들었었지요. 그러면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자랐는가요. 혹시 어느 집인가요.”

“맞습니다. 낙골댁 집안입니다. 가만히 보니 안면이 있네요.”

“아! 그렇구나. 정말로 반갑네, 낙골댁 둘째가 맞네.”

“아아, 고심댁 아들 민생이 형이 아닌가요, 그렇지예.”

“맞다. 나도 부모님 돌아가시고 난 후 고향에 온 지 몇 십 년 됐나베.”

가만히 얼굴과 손을 살펴보니 고생한 흔적이 여실히 드러난다. 아마 살아가기가 바빠서 자주 못 오는 모양이었고 혼자 오는 걸 보니 상상이 간다.

“형님 부모님 산소가 어디에 있는가 예, 성터 쪽에서 내려오시던데.”

“산성 바로 밑의 조그만 밭뙈기에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잡목이 치고 들어와 산소가 잘 안보이더라. 내가 아니면 벌초할 사람도 없고 해서 방치한 것이제.”

“부모님께 불효를 한 셈이지. 그래서 나이가 들어 고향도 보고 싶고, 부모님 산소에 들러 잔을 올리면서 용서도 빌고 싶어서......”

민생이 형이 말을 좀 더듬거리며 가슴이 북받치는지 하늘을 쳐다보고 천천히 고개를 내린다.


다음 해에 아들과 함께 시사철에 선산을 찾았다. 심어놓은 배롱나무 두 그루는 이제 둥치가 굵어서 비바람을 잘 견뎌내고 잘 자라고 있었다.

“아버지, 저기 한그루는 줄기가 하나이고 다른 한그루는 두 갈래이네 예.”

“아, 그렇네. 나는 그냥 줄기는 눈에 안 들어오던데 니가 눈도 밝구나.”

“나무줄기가 자손의 숫자라고 하셨지예. 먼 윗대 할머니 산소는 줄기가 여섯인데 비해서 많이 적네예.”

“하하, 요새는 옛날처럼 자식을 많이 안 낳아서 그런가. 니도 얼른 장가가서 두 명이라도 낳으면 고맙지 뭐.”

"자식을 많이 낳고 복을 받으려면 자신의 뿌리를 알고 조상을 잘 모셔야 하겠네요."

"그럼,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너도 언젠가는 그런 뜻을 알게될 것이야."


그의 아들은 배롱나무의 전설을 듣고 자신이 심은 나무에 대해 관심이 많이 간 모양이었다. 외아들이다 보니 자손의 번창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니 기특하였다. 또 그처럼 조상의 깊은 뜻을 새기면 후일에 아들도 무형의 유산을 얻을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가 배롱나무를 유심히 살펴보니 원줄기는 두 갈래인데 그 줄기마다 두 개씩 새로운 가지가 뻗어나가고 있었다. 전설에 따라 점(占)을 쳐보면 아들은 장가를 가서 자식을 두 명을 낳게 되고 다시 손자는 네 명으로 불어나는 셈이었다. 그가 친할아버지의 대를 잇기 위해 작은 집으로 갔으나 아들을 하나만 낳아 대이음이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이었다. 그가 배롱나무의 전설에 따라 나무를 심었으니 먼 훗날에 손자 중 한 명이 그 배롱나무는 누가 심었을까 궁금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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