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로 자란 불우한 환경을 딛고 주먹으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한 이야기
그는 아름다운 주먹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집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의 어머니는 후다닥 현관으로 나가서 문을 연다. 다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그분은 어머니의 사촌 동생이었다.
“이게 누고 태경이 아니가. 우짠 일인데 급하게 찾아 왔노. 얼굴을 보니 심상찮은 일이 있는 모양이네.”
“예, 누님. 안에 들어가서 천천히 말하입시더. 우선 물 한잔 주십시요. 그넘의 세상이 갑자기 바뀌어 정신을 못 차리겠습니더.”
“무슨 일인데 그라노. 세상이 갑자기 바뀌었다 카고. 천천히 말해 보아라. 무슨 죄를 지은 것은 아니제.”
“예, 누님. 지금 불량배 검거라고 신문과 방송에 크게 안 나오던가요. 내가 이 나이에 쫓기고 있습니더. 그 넘의 삼청교육대인가 뭔가 하면서, 마산에 경찰들이 쫘악 깔려 과거에 싸운 행적만 있으면 무조건 잡아가고 있습니더.”
“너같이 착한 동생이 무슨 불량배가 되노. 주먹이 세기로 마산에서 소문이 났지만 나쁜 일은 안 했다 아니가.”
“과거에 조금 싸운 전력만 있어도 무조건 잡아들이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어 난리입니더. 그래서 평소 잘 아는 경찰이 나한테 당분간 멀리 피해있으라고 하길래 누님을 찾아왔다 아닙니꺼.”
“그래, 내 아니면 너를 숨겨줄 사람이 옳게 있것나. 너그 자형도 너들 좋아하고, 아들도 어릴 적에 잘 놀아주고 해서 너를 좋아한다 아니가. 니가 있을 만큼 있다가 가거라.”하고 어머니는 그에게 물 한 사발을 건네면서 마음을 다독인다.
그에게는 외당숙이지만 그냥 외삼촌이라고 편하게 불렀다. 그분은 항상 웃는 얼굴이지만 한 번씩 찡그리면 정말 무서웠다. 주먹은 컸고 몸은 땅땅하였으며 아주 균형 잡힌 몸매이었다. 한 번씩 두 손을 불끈 지고 허공을 향하여 주먹을 날리기도 하였다. 그와는 어린 시절에 추억 어린 이야기들이 있으니 하나하나 들추어 나간다. 유년시절 기억으로 되돌려 본다. 그때 그는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나이지만 오고 간 대화는 기억이 뚜렷하다.
“아이구, 우리 태경이가 동생을 데리고 왔네. 니가 동생들 키운다고 고생이 많제. 아버지 노릇 어머니 역할을 다하고 너야 말로 참으로 훌륭한 형이다.”
“누님, 지나가는 길에 동생 태만이 하고 들렀습니다. 내일은 진주로 가야 해서 함안역에 내려 누님을 보고 가려고 왔습니더.”
“내일모레에 경상남도 복싱선수권대회가 있어 동생을 시합에 출전시키려고 가는 길입니더.”
“잘했다. 태만이도 이제 어엿한 고등학생이네. 그래 너가 너그 형 닮아서 주먹이 세다면서. 꼭 이겨 우승해라이.”
“누님, 자형은 어디 출타중인 모양이네예. 내가 오면 반갑게 하시고 눈치는 커녕 친동생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시고 하셨지예.”
“읍내에 볼일보러 갔다가 곧 올끼다. 너그 자형이 형제가 없어 무척 외로우니까 너를 동생처럼 대했겠지.”
“그라고, 너그 자형이 읍내하고 우리 동네의 못된 집안때문에 서러울때 니가 나타나서 그넘들 기를 팍 죽인 적이 있었제.”
“하, 오랬됐네예. 그때 내가 내려와서 검은 가죽 장갑을 끼고 한번 손가락을 두두둑 하니까, 읍내 깡패들이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벌벌 기더라고예.”
“그때 이 동네에 방앗간 아들들이 좀 별나다 해서 버스를 기다리는 척하고, 저그 집 앞 평상에 앉아서 집안을 흘겨 보는데 그들이 나오다가 슬금머니 도망을 가더라구요.”하고 태경이 아재는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웃음을 짓는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그는 중학생이 되었다. 방학 때 부산에서 시골로 내려왔는데 어머니가 먹을 것도 없고 하니, 마산 외당숙집에 가서 한 달을 보내고 오라고 하신다. 그 동네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교육상 썩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어린애들이 뭐 알까 마냐 하겠지만 사춘기에 들어선 그로서는 호기심이 많이 발동하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유흥업소 집결지인 동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가 머무르고 있는 동안 특별한 일이 몇 가지 발생하였다. 어느 날 저녁이 되었는 데 외삼촌이 큰 소리로 말한다.
“오늘 내가 크게 한턱낼 테니, 북마산 유명한 중국집으로 가자. 어제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노름해서 왕창 땄다 아니가. 그 아들 개평도 주고도 많이 남았다.”
“어이구, 당신, 오랜만에 큰 거 한 건 하셨네요. 애들한테 좀 민망한데 그냥 돈 좀 벌었다 하면 될 건데, 노름했다 하니 좀 그렇네요.”하고 외숙모가 핀잔하듯이 말한다.
“와, 그 돈이 어때서. 내가 무슨 공부를 했나, 기술이 있나, 있는 게 두 주먹하고 손가락밖에 더 있겠어. 그것도 밤을 새우면서 번 건데.”하고 외삼촌이 민망해 하기는커녕 당당히 말한다. 그래서 몇 번이고 외삼촌이 가족들을 이끌고 맛있는 요릿집을 드나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외삼촌댁 안방에서 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찾아왔소. 무슨 낯짝으로 우리 형제들 본다고 나타났소. 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고 생각 안 하니 빨리 여기를 나가소.”
“그 어린 우리 형제들을 고아원에 내다 버리고 잘 살라고 집을 나갔으면 되었지, 무엇이 안 돼서 나타났단 말이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싸우고 터지고 해서 거칠어진 우리 모습이 그렇게 보고 싶던가요.”하고 성질이 불같은 막내인 태만이가 감정에 북 받쳐 울먹이면서 말한다.
“아들들아. 이 어미가 못쓸 짓을 했다. 잘못을 비니 용서해 주라. 그때 너그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해서 논도 밭도 없어, 너무 살기가 힘들어 안 굶기려면 그 방법 밖에 없었다.”
“어디에서 아들이라고 하요. 함부로 그런 말을 하지 마소. 한 번도 어머니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 이후로 만정이 떨어져 욕도 할 가치도 없다 생각하고 살아왔소.”하고 둘째인 윤경이가 대들 듯이 말한다.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큰형인 태경이가 나서서 수습하려고 한다.
“야 동생들아, 어머니한테 너무 그러지를 말아라. 촌에 남아 있었으면 학교도 못 다니고 남의 집 머슴살이 밖에 더했겠나. 그래도 고아원에서는 글도 배우고 싸움도 배우고 하지 않았나.”
“저는 어머니라고 부르겠습니다. 동생들도 설움에 받쳐 그런 막말을 한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이소. 내가 형이라고 저그들을 위해서 나쁜 길로 가지 않게 나름대로 교육을 시켰습니다. 윤경이는 중학교 나오고 막내 태만이는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아닙니까.”
“하이구, 내가 쥑일년이네. 얼마나 이 어미를 욕하고 원망했겠노. 내가 죽기 전이라도 너그들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용기를 내어 나타났다. 나도 나름대로 큰 시련이 있었지만 이 자리에서 말하기도 그렇다.”하고 그들의 생모가 눈물을 흘리면서 목이 메어 말을 한다.
그 장면을 멀리서 보고 들은 그는 참으로 묘한 상황이구나 하고 생각하였었다. 그들의 어머니는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으로 혼자서 아들 네 명을 키울 수가 없었다. 공부도 안시키키고 남의 집에 머슴으로 보냈으면 겨우 살아갈 수 있었겠지만, 아들들은 일자무식에 무지랭이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살아있으면 고아원에 입소할 수 없었으니, 어머니는 뒷 처리를 자기 오빠에게 부탁하고 행방불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들이 볼 때는 자식들을 버리고 새 살림을 차리려 도망친 비정한 어미로 보았을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 인륜에 반하고 불행한 이별이 오히려 그들 형제들의 앞길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으니 천만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남들이 말하는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공부도 하고 주먹도 세고, 약한 사람들을 돌봐주고 하니 말이다.
어느 날 신마산에 있는 고아원에 짙은 화장을 한 젊은 여인이 들어섰다. 품에는 갓 돌이 지난 듯한 남자 아기가 들려있었다. 원장실로 들어서 그녀는 망설이다가 숨을 고르며 노크를 하니 문이 열렸다.
“어쩐 일로 오셨나요. 혹시 아기를......”
“예, 저의 사정상 더 이상 기를 수가 없어서요. 이 애가 몸이 아파서 더구나 저 혼자서 어쩔 도리가 없어서요.”
“남편 분이 안 계신 모양이지요. 아직 젊으신데 벌써 혼자이신가요.”
“깊은 사정은 말씀드리기가 그렇고 해서 이 애를 좀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애를 살려야 하니까요.”하고 그 젊은 여인과 고아원 원장 간에 나눈 대화였다.
그 여인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몸이 아픈 아기를 키울 수가 없고, 다른 가정에 안겨서 병도 고치고 잘 커가기를 바랐기 때문에 맡긴 것일 테다. 이별한다는 게 억장이 무너지지만 현실적으로 고아원에 맡겨서 입양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남편과 헤어졌는지 사별하였는지 아니면 그 아버지가 누군지 알 수가 없는지 상상에 맡겨보는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흘러 어느 듯 그는 직장에 취직을 하고 결혼도 하였다.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야야, 마산 너그 작은 외삼촌 아들이 백병원에 심장 수술 받는다고 입원하였다 하는 데, 한번 찾아가 봐야 하는 거 아니가.”
“뭐라고예. 입양한 그 아들이 입원했다고예. 무슨 병인데 심장 수술을 받는다고 합디까. 그때 입양할 때 아이가 아파서 고아원에 저그 부모가 버렸다고 들었는데예.”
“그래, 너그 아버지, 형님하고 시간이 나며는 같이 함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너그 작은 외삼촌이 니를 많이 좋아 했고, 신세도 많이 졌다 아니가.”
“예, 어머니 당연히 가봐야지예. 심장 수술을 받으면 돈이 이만저만 드는게 아닐텐데 형편도 넉넉한 편이 아닌데 말입니더.”
“그래서 너그들이 형편이 나으니까, 좀을 좀 보태거라. 그래야 외삼촌이 마음도 편해지고 힘을 얻을게 아니가. 꼭 돈이 다는 아니지만 성의라고 하나 그런 거지.”하고 어머니께서는 돈을 좀 거두어 주자고 말씀해서 그렇게 따랐다. 입양한 외삼촌의 아들은 선천성 심장판막증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지나간 말을 들어보면 입술이 새파랗고 얼굴이 창백하였다고 한다. 그다음 날 우리 가족들은 병원에 들렀다. 외삼촌이 반가이 맞아주었지만 표정에는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외삼촌이 고아원에서 훈이를 입양하려고 갔을 때 있은 이야기이다.
“원장님, 저가 애가 없어서 입양을 하러 왔습니다. 사내아이가 있으면 한번 보여주시지요. 자연스럽게 놀고 있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아이구, 선생님. 남자아이들이 있지마는 대부분 장애를 안고 있어 부모가 버린 것 같습니다. 자폐증에 다가 뇌성마비도 있고요.”
“그러시군요. 저가 형편이 별로여서 장애아는 좀 그렇고요. 저 주제에 차별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다 이해합니다. 중증 장애인은 여기서 치료도 하고 돌봄도 하는 게 맞겠지요. 저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아기는 어떻습니까?”
“아이구, 유리창을 통해서 선택하려니 죄를 짓는 느낌입니다. 저 아이는 얼굴이 창백해 보이네요. 정신만 맑으면 저가 키워볼까 합니다.”
“저 애의 눈망울이 유리창 너머 나를 간절히 바라보는 것 같아 마음이 와닿네요.”하고 그의 외삼촌과 원장 간에 나눈 대화였다. 다시 백병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떠올려 본다.
“누님, 자형 이렇게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더. 그리고 판세, 인세도 오고 해서 그래도 마음이 든든합니더. 수술이 잘 되겠지예.”
“그래 말이다. 요새 의술이 좋아서 옛날에는 도리가 없는 병이었지만 대부분 다 낳는다 카더라.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안 그래도 내가 우리 집에 모시고 있는 산신할매한테 빌고 왔으니 틀림없이 완치될끼다.”
“하하, 누님은 말이 청산유수이고 낙천적입니다. 옛날 집안이 어려울때도 큰 걱정도 안하시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닙니꺼.”
“인자 우리 훈이도 수술을 잘 받아서 나을거라고 믿습니더. 이렇게 병원비 보태라고 돈까지 주시고 정말로 고맙습니더.”하고 외삼촌은 힘을 얻은 듯이 얼굴의 표정도 밝아진다. 그렇게 하여 수술은 끝나고 회복실로 갔는데 며칠 후 수술이 잘 되어 곧 퇴원한다고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그의 외숙모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불임 상태였는지, 결혼 후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아기가 없었다. 그래서 입양하기로 마음을 먹고, 자신도 그랬고 동생들도 자랐던 고아원에 있는 남자아이를 데려오기로 하였다. 그 아이들 중에서 착하게 보이지만 얼굴이 핼쑥한 아이에게 마음이 걸려 그를 데려와 키워왔던 것이다. 수술실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때 모습이 떠오른다.
작은 외삼촌 자신도 고아원에 맡겨져 커왔기에 고아들의 불쌍한 모습이 항상 머리를 감돌았을 수 있고, 이왕 입양하려면 고아원에서 데려오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그 애를 버린 부모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버려서 그 애가 생명을 건지고, 새로 좋은 부모를 만나기를 바랐는 것인지 하늘만이 알고 있겠지. 그의 형제들을 고아원에 맡긴 그의 어머니의 심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아 모든 게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그때 백병원 수술실 앞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있다. 그가 수술실에서 외삼촌을 만나고 나오는 길에 어느 중년여성이 병실 복도에 몸을 구부리고 앉아 있는 게 아니던가. 얼굴에는 다소 진한 화장을 하였고 옷차림은 평범하였으며 얼굴에는 근심이 잔뜩 들어선 것 같았다.
“선생님, 혹시 그쪽 병실에 있던 아이는 무슨 병으로 수술을 받았다고 하던가요.”
“예, 아마 심장판막증 수술이라고 하던 것 같은데요. 좀 중한 수술인가 보던데요.”
“수술경과는 어떤지 알 수 없겠다 그지요. 내가 보호자가 아니다 보니 병원 쪽에 물어볼 수가 없어서요.”
“아마, 중간에 들은 이야기로는 위험한 고비는 넘겼고 이제 회복만 하면 된다고 하던데요.”하고 어느 여성과 나눈 대화였다.
그 당시에 그 아주머니는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다른 병실에 있는 자신의 아기에 대한 수술을 기다리며 성공 가능성에 대해 탐문하는 것쯤으로 여겼다. 그가 수술 경과가 좋다고 하니 얼굴이 밝아지면서 두 손을 모으는 것을 보았다.
그가 창원에서 근무할 적에 직장의 서무원으로 일하고 있던 나이가 지긋한 분한테 외삼촌에 대해 들은 이야기 있다. 그 형제들이 참으로 대단한 주먹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분이 외삼촌 된다 말인교. 구마산에 터를 잡아서 북마산, 신마산까지 그분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디다. 아주 대단한 주먹이고 얼굴은 참 순하게 보이던데 한번 붙으면 무조건 이긴다고 합디다. 대부분 그 기세에 전의를 상실하고 손들고 일단 싸우면 묵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운다고 소문이 났습디다.”
“싸울때도 당당하게 싸우고 상대가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선방을 날리는 법도 없고, ‘자 준비 됐나 되었으면 들어온나’하고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싸우고 나서 이기면 상대를 일으켜 세우고 손까지 잡아주었다는 소문도 들립디다.”
“저도 그렇게 듣고는 있는데 그 정도로 대단하신 모양이지예. 저가 어릴 적에도 우리 동네나 읍내의 깡패들이 이름만 듣고 피해 가고 하는 걸 직접 보았으니까요.”
“그리고 어릴 때 시골 우리 집에 와서 주무시고 갈 적에, 옷을 갈아 있을 때 보니 몸에 착 달라붙는 삼각팬티를 입고 있었고, 다리의 이곳저곳에는 흉터 투성이고 칼에 찔린 흔적도 보입디다. 항상 손가락이 드러나는 검정 가죽 장갑을 끼었다 벗었다 하는 모습을 보니까 대단한 파이터로 보이더라구요.”
“그리고 그분 막내동생도 대단한 실력자라고 소문이 났습디다. 마산 오동동인가에서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데 성공하였다 하고, 자기 형님을 회장님이라고 불러라 하며 직원들에게 교육시키고 했다고 하더라구요. 형제간에 의리가 대단한 분들이라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막내 동생은 복싱선수 출신이고 월남전에 청룡부대로 파병하여 살아 돌아왔으니 그 주먹과 기질에 누가 겁을 안 내겠습니까.”
“보통 주먹이라고 하면 깡패니 건달이니 하는 데, 그 형제들 보고는 그 말은 일체 안 쓰고 주먹이라고만 합디다. 나쁜 소문은 아예 없고 약한 상인들을 잘 보살펴 주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입니다.”하고 직장의 중년의 서무원이 그렇게 말을 하는 거 보니 착하게 사신 모양이었다.
그렇다. 그 외삼촌은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나쁜 곳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다만 당당하게 정의롭게 주먹을 사용하였을 뿐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다. 무슨 칠성파니, 목포파니 하는 조폭 집단과 해방 후 생긴 정치깡패가 나쁜 부류들이다. 그들은 민중을 괴롭히고 정적들을 해친 자신들의 영혼을 팔아먹은 나쁜 주먹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외삼촌은 아름다운 주먹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그가 들은 소설 같은 살벌하고도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었다. ‘북마산역전 대혈투’라고 소문이 있었다. 그의 외삼촌이 한창 전성기에 들어섰고 이름도 많이 날리던 시절이었다. 신마산을 거점으로 한 깡패들이 북마산으로 넘어와서 주변의 상인들이나 홍등가 여인들을 겁박하며 갈취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의 외삼촌의 영역을 침해한 도전이었고 선전포고였던 것이다. 외삼촌을 옹위하는 주먹들은 숫적으로 많이 밀렸다. 조직이라고 해봐야 작은 동생과 막내동생을 주축으로 하여 뜻을 같이하는 여남은 명이 전부였다. 먼저 두 집단의 우두머리가 대화를 나눈다. 먼저 그의 외삼촌이 먼저 말을 꺼낸다.
“우찌 이렇게 남의 영역에 나타나서 행패를 부린단 말이요. 그것도 불쌍한 상인들을 대상으로 말이요. 사과하고 물러들 가시요.”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마산 천지에 내 발거음이 닿는 곳이 영역이지 정해진 것이 있소. 무슨 땅을 세놓고 살 듯한 말을 하네요. 우리도 먹고살아야 할게 아니요.”하고 상대편 두목이 비꼬는 듯이 말을 한다.
“그 좋은 체격에 힘에 열심히 일을 해서 먹고살면 되지, 꼭 그렇게 해야 되겠소. 나는 그렇게 싸움을 취미 삼아 하지 않으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요. 괜히 동네 시끄럽게 하고 보는 아이들 교육에도 안 좋으니 말이요.”하고 외삼촌이 다시 한번 설득조로 말한다. 안되면 곧장 패싸움이 벌어질 판이었다.
“싸움을 안 하게 하려면 그쪽에서도 양보하여 같이 먹고삽시다. 안 그러면 별수가 있겠습니까. 말씀하시는 게 무슨 선생님이 아이들 훈계하는 것도 아니고 영 기분이 그렇네요. 물러갈 생각이 없으니 결판을 봅시다.”하고 상대편 깡패 두목이 도전을 해왔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다. 초저녁이라 상인들은 가게문을 열고, 좌판 상인들도 아직도 철시를 안 하고 있었다.
먼저 상대편의 선발조가 일열로 대형을 유지하며 다가왔다. 그 뒤에는 두목과 경호조가 있었고, 맨뒤에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흉기를 옷 속에 감추고 있는 잠복조가 있었다. 그들은 겁을 주는 듯한 무력시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외삼촌 조는 숫적으로 불리하지만 몇몇 대단한 주먹들이 있기에 겁을 내지 않고 비장한 각오로 맞섰다. 먼저 외삼촌의 둘째 동생과 막내동생이 나서서 본때를 보여야 하기에 공격해 오는 상대의 선발조를 사정없이 내동댕이치고 두들겨 패니까, 상대편이 겁을 먹고 슬슬 밀려나갔다.
“이래도 계속하겠다는 말이요. 좋게 말해서 물러들 가시오. 내 동생 두 명이 어떤지 소문은 잘 들었을 테고 서로 피를 안 보는 게 좋을 게 아니오. 마지막 경고요.”하고 외삼촌이 단호하게 말한다.
“물러갈 수는 없소. 아직도 실력이 있는 우리 쪽 선수들이 있는데, 다음 타자를 내볼 테니 그쪽에서도 일단 한 명만 내보내시오. 그것은 2회전이 될 것이요. 끝까지 가면 죽을 사자 4회전이 되는 거고.”하면서 상대편 두목도 조금은 움찔했지만 응수해 왔다. 그래서 아직 젊고 체력이 뛰어난 막내 동생을 내 보냈다. 그는 복싱선수 출신에다가 월남전에도 참전하여 사선을 몇 번이나 넘긴 겁 없는 주먹이었다. 상대편에서 다소 체격이 좋지만 무슨 유도를 한 것 같은 선수를 내보내었다. 다행히 넓은 광장이라 복싱이 유도보다 유리한 상황이었다. 일단 잡히면 안 되니까 치고 빠지는 전술이 중요하였다. 몇 번이나 주먹이 오가고 하다가 상대 선수가 턱에 주먹을 한데 맞고 퍽 쓰러진다. 2회전도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 승부가 결정되었다.
이제는 두목들끼리 싸우는 3회전이 되었다. 상대편도 주먹으로 꽤 이름이 있는 인물이었다. 어쩔 수 없는 숙명의 대결이 펼쳐졌다. 3회전의 초반은 서로 밀고 밀리는 접전이어,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기량보다는 투지 즉 깡다구로 싸우는 순간이 되었다. 사생결단으로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는 상대편의 급소를 노리는 한방이 중요하였다. 누가 그 약점을 찾아내서 일격을 날리느냐가 승부수였다. 외삼촌은 천지신명께 간절히 빌었다. “선의의 편이 이기게 해주십시요.” 그 순간 상대의 왼쪽 목부분이 아주 크게 돋였고 거기가 약점이라고 판단이 들었다. 그런 것을 보는 눈은 지금까지의 실전에서 길러진 동물 같은 본능이기도 하였다. 이리저리 돌면서 페인팅 모션을 쓰면서 상대를 유인하여 다음 더킹 모션을 쓰다가 그 순간 목 부위를 강력한 펀지로 가격하였다. 상대는 충격을 받은 듯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섰고, 그 순간을 이용하여 정확하게 발차기로 목덜미를 찼다. 건곤일척의 승부는 끝났다. 그 두목은 뒤로 나자빠져서 부하들이 부둥켜안았다.
그 순간 마지막 조인 잠복조가 흉기를 꺼내 들고 공격해 왔다. 그 순간은 무척 긴장되었다. 피를 보게 될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순간이 되었다. 그리고 구경하던 주변 상인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그때 그들도 돕겠다고 한두 명씩 웃통을 벗는 게 아닌가. 그 상황을 간파한 상대편 두목은 결단을 내리는 말을 한다.
“야들아. 그 칼과 체인을 내려놓아라. 우리가 비겁하게 한다면 이미 진 것이다. 소문대로 대단한 형제파들이네.”하고 두목은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피를 흘리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외삼촌과 형제들은 상대편 두목에게 다가가서 서로 악수를 나누었다. 특히 외삼촌은 상대편 두목을 손을 내밀어 미안하게 되었다고 인사하며 서로는 부둥켜안고 헤어졌다. 적으로 싸웠지만 승자가 패자를 안아주며 미안하다고 한말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어쩔 수 없는 싸움의 세계는 계속되겠지만 내재된 선하고 따스한 인간미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인가. 그야말로 마지막 4회전 까지 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던 셈이었다.
세월은 또 흐르고 흘러 어느 듯 그의 나이도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토록 고생하시고 좋은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그의 아버지가 당뇨 합병증에 의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가족들은 물론 평소 아버지를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형님댁에서 장례를 치르고 고향 선산에 장사 지내게 되었다. 그날 모처럼 마산 외삼촌과 막내 외삼촌을 고향 선산 장지에서 만났다. 상중이지만 상복을 입고 반갑게 그 외삼촌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야야, 너그 아버지께서 돌아가서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나한테도 너무 잘해주셨고 내가 항상 우러러 본 어른이 아니가. 인생은 어차피 떠나간다 하지만 너무 허무하구나.”
“예, 외삼촌. 옛날 시골 우리 집에 자주 오셨고 서로 반갑게 이야기 많이 나누고 하셨지 않았습니까.”
“아버지가 무슨 병이라도 있었나. 이 좋은 시절에 칠십을 겨우 넘기시고 돌아가셨구만.”
“아버지는 당뇨합병증에 의한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희들이 정밀 건강검진 한번 못 해 드린 게 정말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 당뇨가 정말 위험한 병이다고 하더라. 유전이기도 하고 식생활 습관에서 온다고 하니, 나도 조심해야 되것다.”하고 외삼촌과의 짧은 대화는 끝났다. 장례를 마치고 내려와서 헤어지는 길에 그는 약소하나마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몇만 원 밖에 안되지만 돈을 외삼촌의 손에 쥐어드렸다. 그때가 살아생전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몇 년이나 흘렀다. 어머니로부터 마산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부음이 왔다. 몇 년 전 아버지 장지에서 보고 난 뒤에 찾아뵙지도 못했었다. 그때 몸이 여위어서 무슨 병이 있나 하고 궁금해한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형제들을 태우고 마산 외삼촌댁으로 갔다. 집안을 들어서니 문상객들이 이방 저 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형제들은 빈소가 차려진 방으로 들어서니 작은 외삼촌과 얼굴을 처음 보는 남자애와 여자애가 상주복을 입고 문상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영정사진이 놓인 제단은 십자가가 놓여있었고 바깥에서는 찬송가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마 생전에 교회에 나간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막내 외삼촌이 독실한 교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어도 돌아간 외삼촌이 교인인지는 몰랐다. 아마 중병이 들고 난 후 교회에 입문한 모양이었다. 막내 외삼촌이 상주를 소개하는 데 남자애가 심장 수술을 받은 훈이라고 하였다. 다른 딸은 처음 본다고 하였는데 외삼촌이 고아원에서 또 입양하였다고 한다. 외삼촌도 당뇨합병증에 의한 암으로 돌아가셨고 병원에 있을 때도 무척 고통스러워하셨다고 한다. 돌아가시기 전에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한다.
“너그 외삼촌이 참말로 복이 없으신 분이다. 고아인 우리 형제들을 키우고 공부시키고 장가까지 보내주신 분 아니가. 나를 복싱선수로 키웠고, 내가 월남전에 참전할 때도 살아서 돌아오라고 눈물을 많이 흘리신 인정이 많은 형님이었지.”
“여기 있는 훈이가 아파 심장수술을 받을 때 며칠간 걱정에 밤잠을 못 자고 끙끙거리고 하셨다. 우리 형님은 배운 게 없이 주먹으로 살아오셨지만 우리 형제들에게는 아버지와 다름이 없었고, 제수들도 무척 존경하였지. 이 동네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설날에는 세배를 많이 오기도 하였지.”
“여기 있는 훈이와 현이 보고는 생모가 먼발치에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라고 하셨지. 언젠 가는 어머니를 찾으라고 말씀도 하셨지. 내가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한 움큼 나오더라구.”
“내가 교회에 나가니까 약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라고 늘 말씀하시고, 종교에 대한 편견은 없었었지. 암으로 고통스러워할 때에 구원을 받고자 내가 있는 교회에 나와 매일 기도도 하고 하셨지. 돌아가실 때 얼굴이 편안한 것을 보니 아마 구원을 받으신 것 같더라. 나는 우리 형님을 천사라고 생각한다.”하고 막내 외삼촌이 말을 마친다. 옆에는 아들과 딸의 흐느끼는 소리가 그치지를 않는다.
어느 듯 상가에서 머문 시간이 좀 흘렀다. 막 일어서려고 하는데 어느 중년여성이 조문을 하러 들어오지 않는가. 병원 영안실이 아니고 가정집에 빈소를 마련하였기에 그는 바깥에서 문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통곡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던가.
“아이구, 선생님. 이렇게 빨리 돌아가시면 어쩝니까. 항상 저희들을 도와주시고 힘이되 주시고 했는데 말입니다.”
“아주머니께서는 어떻게 저의 형님을 아시는지요. 본래 발이 넓기는 합니다만......”
“예, 저는 북마산 시장통에서 유흥주점을 하였지요. 그때 깡패들이 착취를 할 때 나서서 막아주셨답니다.”
“아, 그렇군요. 저의 형님이 본래 나쁜 짓을 보면 가만히 못 있는 성미입니다. 이렇게 문상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막내 외삼촌하고 그 여인 간에 오간 대화였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다시 크게 훌쩍이는 것이 아니던가. 그것은 돌아가신 외삼촌의 영정을 보고 우는 게 아니라, 상주인 아들과 딸을 보고 흐느끼는 게 특이하였다.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일찍 떠난 게 안타깝고 자식들이 불쌍해서 우는 듯하였다. 그 여인이 문상을 마치고 나올 때 잠깐 얼굴을 마주쳤는데 앞면이 있어 보였다. 그녀가 방문을 나가고 난 후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십여 년 전 백병원 수술실 앞에서 그에게 물어보던 여인이 맞는 것 같았다.
그의 작은 외삼촌은 고아 아닌 고아로 고아원에 갔고, 어머니를 원망하였겠지만 형제들을 키우고 교육시켰다. 비록 주먹으로 살아갔지만 깡패가 아닌 약한 상인들과 여인들을 보호하는 의인이었다. 자식이 없어 고아원에서 아들과 딸을 입양하여 키웠다. 심장을 찌르는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를 자신의 고통처럼 여겨 수술을 받게 하여 함께 고통에서 벗어나기도 하였다. 그의 외삼촌이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의기에 찬 주먹은 보지 못했을 터이고, 아름다운 인생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평범하게 살아갔을 것이다. 그분과의 만남은 그를 아름다운 추억의 보고에서 꿈결 속에 길이 살아가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