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3화. 해와 달과 별 이야기

각양각색의 성격을 가진 어느 형제들 이야기

by 벽운

해와 달과 별 이야기

월배의 형제는 세명이다. 그들은 지리산 산간에서 세 살 터울로 태어났고 두 명은 도시로 진출했고 한 명은 고향을 지키고 있다. 형제들의 이름은 아버지가 주역에서 따왔고 각자의 얼굴과 성격도 그 이름을 닮은 듯하였다.


일배는 키가 작고 얼굴이 두꺼웠으며, 월배는 자유스럽고 부드러웠다. 성배는 아버지를 닮아 예의범절이 바르고 또 선산을 지켜오고 있다. 아버지는 이름값을 하라고 지어주었지만 그 참이름값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마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보고 지었기에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바람이 들어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늘에 떠있는 그것들은 멀기도 가깝기도 하고 같이 만나기도 서로 피하기도 한다.


김월배의 아버지는 독자였지만 큰집에서 대를 이을 손이 없어 그쪽으로 양자를 갔다. 엄격한 광산김 씨 집안인지라 종갓집의 대를 잇는 것이 가문의 대사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큰집의 재산 덕택으로 아들만 세명이나 낳게 되어 그것이 조상의 은덕이라고 감개무량하였었다. 자나 깨나 입이 닳도록 하는 말이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이었다.


월배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을 기억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친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는 일이고 둘째가 친할아버지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게 하라는 것이었다. 제사 문제는 어렵지 않지만 그 두 번째 유언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면 어떻게 하게 될는지 알게 될 것이고 마음으로는 결정이 되었다.


어느 날 월배의 형인 일배가 그를 불러 친할아버지 제사를 받아가서 모셔라고 하였다. 아버지가 계실 때에는 제사 문제는 흔들림이 없어 엄격하게 따랐고 형제들도 군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월배는 그해부터 친할아버지 기일에 제사를 모셨고 명절에는 차례도 지냈다. 그의 아내는 유교집안에서 제사를 모시는 풍습을 잘 알아 불만 없이 지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아버지의 두 번째 유언도 이루어졌다. 가문의 경사가 맞았고 조상들에게 면목도 섰고 주변으로부터 축하도 받았다. 그간에 외면받던 친할아버지의 존재가 일거에 가문을 빛내는 인물로 부상한 것이었다. 형제들은 좋아했고 친척들도 기뻐하였고 친구들도 축하해 주었다.


월배의 형인 김일배는 유달리 자기를 내세우길 좋아했다. 그는 키가 작고 외모가 월배에 비해 많이 떨어졌고 거기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런 점이 성취욕에 빠르게 젖게 하였고 남을 밟아야 이긴다는 신념으로 굳어져 버렸다. 일배는 자신의 이력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아직도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그는 지역단위농협장을 꿈꾸고 있었기에 독립유공자 포상은 절호의 홍보거리로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선친은 항상 충의와 겸양을 가르쳤었고, 어느 선조 되시는 분은 자신의 공을 올리는 장계를 막았다는 설화가 족보에 올라와 있다.


월배는 왠지 자꾸만 화가 나고 부끄러워졌다. 마음이 생채기가 났던지 아니면 시샘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친구들과 만나면 술김에 은유적으로 울분을 토해내고 그 이유는 말하지는 않았다. 지금 그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고 치료방법은 없었다. 그럴 때일수록 그는 선산을 찾았고 오래전에 부모님 산소 양옆에 심어둔 배롱나무 그늘 아래서 마음을 달랬다. 배롱나무는 근 백일 간 꽃을 피우고 근심이 있을 때에 자비스럽게 웃어 주기에 부처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월배에게 배롱나무는 조상과의 만남이요 부모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통로이었다.


그날은 광복절을 며칠 앞둔 날의 점심때였고 월배의 친구들이 조부님에 대해 물었고 제사를 어떻게 지내느냐고 궁금해하였다. 마지막으로 그의 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들 친구 세 명이 돌아가면서 말한다.


“야, 며칠 전에 신문에 너그 형에 대한 기사가 크게 났데. 이름이 김일배가 맞지. 축하한다.”

“허허, 너무 자주 신문에 나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그래도 집안의 영광이니 오늘 점심값은 너가 내면 어떨까.”

“아이구, 너가 속 뒤집어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네. 월배의 마음을 좀 알고 말해라.”

“왜, 우리 집은 내가 신문에 한 번이라도 이름이 나면 한턱 크게 내겠다고 동생들이 말한다.”

“영태는 신문에 안 나와도 알사람은 다 알고 있지. 자기를 알리려는 건 속이 비었기 때문이지.”하고 좀 비꼬는 듯한 이야기였다.


월배는 그날 친구들이 한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왜 자꾸 김월배가 아닌 김일배가 기사로 나오느냐고 말이다. 제사는 혼자 모시면서 기사는 남이 챙겨버리니 바보가 아닌가 하는 뜻도 있었고, 진짜 양반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숨은 뜻도 있었다. 그는 은근이 자존심이 상했고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왜 할아버지 때문에 긍지는커녕 모멸감을 당해야 하는가 생각하니 슬퍼졌다.

또 어느 봄날에는 새로운 일이 발생하였고 친구들은 여지없이 입방아를 찧었다.


“야, 이번에는 너그 형이 신문에 대문짝처럼 나왔더라. 신문은 보았나.”

“나는 관심 없다. 뭔 소리더나. 보나 마나 홍보이겠지.”

“너그 형이 백덕술 장군 추모기념식에서 축사를 하는 내용이더라.”

“이 사람아 그 김일배는 동명이인이야. 그런 사람 우리 집안에 없어. 쌍.”

“그런데 너그 형이름이 좀 이상하게 지었데. 일베하고 혼돈하겠더라.”하고 어느 입심 좋은 친구와 나눈 이야기였다.


월배는 또 기분이 나빠졌고 술을 한잔 자작하였고 원망인지 분노인지 모를 또 자신의 옹졸함인지 모를 이상한 감정에 사로 잡혔다. 자랑스러운 할아버지의 훈장이 이제는 갈등과 불화의 씨앗이 되어버렸으니 할아버지는 억울하였다. 그 독립유공자 훈장을 받는 기념식에서 얼마나 감동에 겨워 눈시울을 적셨던가. 몇십 년간 공적자료를 찾으려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녔던가. 또 수십 번의 탈락으로 얼마나 좌절하고 울었던가. 그 장엄한 훈장이 벌써 탐욕으로 변색해 버렸으니 어찌하란 말인가. 그 훈장으로 형제들이 다투고 또 원망까지 해버렸으니 그것은 가문의 영광이 아닌 비극이었다.


월배의 고향에는 두 형제가 있었다. 형은 선대로부터 큰 저수지가 달린 논을 둘째는 작은 저수지가 달린 논을 유산으로 받았다. 그의 아버지가 제사를 잘 모시라고 큰아들에게 많게 남겨주었고 둘째는 그럭저럭 먹고 살아랐고 그랬던 모양이었다. 큰아들은 큰 저수지에 물을 가득 가두고 자기 논에만 들어갈 만큼만 흘려보냈다. 가뭄이 드니 저수지 아래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논은 벼가 타들어 갔지만 일체 눈을 감고 물을 계속 가두어 두었다.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쪽으로 논을 사서 들어오라고 하였다. 자연히 그쪽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비싸게 논을 샀고 또 그것이 반복되어 논값은 해마다 올라갔다.


둘째의 저수지는 작지만 자기 논에 흘러 보내고 남는 물은 아래쪽 논으로 보냈다. 그러니 주변의 논주인들은 욕심을 내지 않고 서로 고맙게 생각하면서 잘 살아갔다. 그렇다고 일체의 보상은 바라지도 않았고 한 번씩 저수지 보수공사에는 자발적으로 힘을 보탰다. 큰아들의 저수지는 워낙 튼튼하여 보수공사를 할 필요성도 없었고 아래에 있는 논주인들은 명절에 선물을 하거나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 일품을 파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그 저수지는 지금껏 큰 문제없이 잘 버텨왔었다.


큰 저수지는 지세가 산을 뒤로하고 있어 물의 유입량이 많았고 일제 때 지주들이 소작인들을 동원하여 튼실하게 지었다. 작은 저수지는 저수량이 적었고 수시로 수문을 개방하여 넘치는 일은 없었다. 큰 저수지는 워낙 튼튼하여 어지간한 홍수에도 문제가 없었지만 어지간해서는 물을 가두어 두기만 하고 흘러 보내지를 않고 있었다.


“월배야, 너는 너 자신을 왜 홍보를 안 하는데. 너그 형을 본받아라.”

“어허, 월배가 홍보실장으로 깃발을 날린 것을 모르제. 홍보무상을 알았던 게지.”

“홍보는 자신을 알리는 게 아니고 남을 알리는 게 맞는게지.”

“어디 영태가 훌륭하면서도 홍보 한번 하더나. 자기 홍보를 할수록 바보라고 알리는게지.”하고 친구들 간에 나눈 이야기였다.


월배는 홍보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홍보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다녔던 직장은 홍보가 중요했고 그런 중책을 떠안아 역대 최장수 홍보실장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었다. 자신을 위하는 홍보가 아니니까 당당하였고 기자들하고 싸우기도 하였다. 기사의 내용을 왜곡하지 말고 정확히 써야 한다는 문제 때문이었다. 또 내용도 없이 띄워주기보다는 정론직필을 하는 기자를 좋아했다. 기사의 가치는 정확성이고 다음으로는 신속성이 아니던가. 월배는 홍보를 알기 위해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하였고 기자들을 다스리는 법도 익혔다.


“전무님 김월배 실장은 승진을 왜 안 시킵니까. 다른 기관에서는 홍보실장은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데 말입니다.”

“다음번 인사에 승진이 되는 걸로 알겠습니다. 제일 궂은일이 홍보라고 하는데 즐기는 사람 따로 있고 고생하는 사람은 따로 있네요.”하고 어느 유력 일간지 기자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분위기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하였다.


월배는 간담회를 마치고 난 뒤에 그 기자에게 나무랐다. 그 기자는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이외의 반응에 놀라면서 한말이다. “역시 김월배 실장은 명 홍보실장 그릇이네.”하고 비꼬는 말속에도 진심 어린 칭찬이 숨어있었다. 김월배 홍보실장은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하루 근무시간이 주야로 이어졌고 술을 대접하느라 자신의 간강을 많이 해쳤다. 임원들에게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달라고 하니 대안이 없다고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 거절 속에서 서운함보다는 감동을 느꼈고 더 열심히 직장을 위하여 홍보하였다. 그해 정기인사에서 김월배는 승진하였고 다시 부려먹음을 당했지만 기쁘게 받아들였다.


월배는 요 근래에 중요한 사건과 맞닥뜨려졌다. 예전부터 그런 불씨는 남아있었지만 그런대로 용인하며 견뎌왔다. 젊은 시절에는 그런 것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나이를 먹어가니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는 좀처럼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집안의 구성이 아주 특이하였고 윗대에서부터 얽히고설킨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일고 싶은 진실은 그 자신은 이미 알고 있지만 꼭 알아야 할 당사자는 모르는 것인지 모른 척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 번씩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헛웃음을 짓기도 하였다. 어쩌면 아무 실리도 없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었다.


어느 해 월배가 고향 친구를 만났는데 떠도는 소문이 이상하더라는 내용이었다. 일배가 양가문 두 군데 다 장손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말이다. 족보상으로는 월배가 친할아버지의 장손으로 되어있는데 신문기사에는 일배가 장손이라고 적혀있었다. 그것은 오보였고 정정보도를 해야 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그 기사에 굳이 장손이라는 말이 필요 없는데 넣은 걸 보니 보도자료를 만들어 준 것이 뻔했다. 그로 인해 술에 만취하게 되고 성격은 과격해졌고 참을 수 없는 증오가 치솟아 오르기도 하였다. 그의 친구들 간에 오간 이야기가 있다.


“요새 세상에도 족보가 통할까.”

“아무렴 그것이 진짜이지.”

“족보 없는 집안이라는 건 옛날 말이야.”

“요새는 힘 있고 돈 있는 놈이 양반이고 족보도 조작하면 되겠지.”


족보는 가문의 상징이자 뿌리를 알 수 있는 지도이기도 하다. 그것은 앞으로 전개될 씨족의 방향을 가르쳐 주고 자신의 근본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호적제도가 없어졌고 족보라는 말도 구시대의 전유물이 돼버렸고 그것을 들먹이는 사람은 별나라에서 온 사람 취급을 해버린다. 그런 사회의 조류를 미리 간파하는 사람이 양반이고 승자인 것이다. 아직도 그 조류를 따라가지 못하는 월배가 안타갑기만 하다. 어차피 그것은 그것인데 무엇을 따지려고 하는가. 호적이니 족보니 따지 지를 않는 사람이 현명하다. 월배의 친구들은 다른 주장을 하고 있으니 그 친구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가 보다.


월배의 친구들은 말이 많고 세태를 항상 비꼬고 있는 버릇들이 있다. 만날 때마다 어느 한 사람을 안주삼아 씹어야만 술맛이 나고 안주 맛이 나는 모양이다. 그들은 왜 사람이 자기 이름에 집착하는가에 대해 토론을 하였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이기심이냐, 보이지 않는 열등의식을 감추려고, 아니면 그 이름이 알려지는데서 오는 말 못 할 쾌감이라던가 이런저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욕심이 많아서 그럴 거야. 사람은 모든 걸 다 갖고 싶어 하니까.”

“남을 생각하지 않고 염치가 없기 때문일 거야.”

“겸손하기는 참으로 힘드니까.”

“참 지성인은 겸손하고 알려지는 걸 부끄러워한단 말일세.”

“그러면 그것은 무슨 병이라고 하면 될까.”

“요새 말로 관종이라고 부르면 될런가 모르겠다.”

“부처님께서 제일 경계하라고 하는 것이 바로 자기 홍보란 말일세.”

“주변사람들은 겉으로는 칭찬하지만 돌아서서는 욕한단 말이야.”


이렇게 소위 지성인이라고 자칭하는 월배의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나눈 이야기였다. 부처님이 제일 경계하라는 게 돈과 권력이 아니고 자기 이름 알리는 것이라고 하니 의외이다. 탐욕의 대명사가 돈인데 이름을 알리는 게 제일 무서운 독이라니 말이다. 다시 월배의 친구들이 나눈 이야기였다.


“기자가 취재해 가는 게 진짜 홍보이지. 자료를 뿌리면 가치가 없는 게지.”

“기자들은 한번 나간 기사는 두 번은 안 실어주지.”

“적어주는 대로 보도하는 기자는 영혼이 없는 것이지.”

기자가 취재하러 올 정도로 가치가 있어야 하고 그 기사는 새로운 것이라야 한다. 기자는 어느 어리석은 사람을 꼬드겨서 타락시킬 수도 있고 어느 겸손한 사람의 미덕을 발굴할 줄도 안다. 중요한 것은 진실하냐이며 거짓이면 공범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월배의 친구들은 자기 홍보의 허상에 대해서 비교적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스스로가 이룩한 공적이면 가치가 있고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명성에 편승하여하는 것은 자기기만이요 대중에 대한 모독이다. 자칫 홍보를 한다는 게 은연중에 적은 내용이 자신의 심중에 있는 허구를 자백해 버리는 부메랑이 되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겸손하고 탐욕스러운 자는 오만하고 방자하다.


자신을 위한 홍보는 천박하고 타인을 위한 것은 고귀하며 감동스럽다. 주변에서 칭찬을 하면 귀를 씻지는 못할 망정 그것에 도취되어 깨춤을 추면 스스로는 이미 악마에게 포로가 되어버린 셈이다. 월배의 친구들은 현명하였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다. 월배에게 모이는 군중들은 없었지만 선행을 하고도 내세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겸양을 우러러보았다. 그는 대중을 거느리지는 않았지만 지기를 얻었으며 명성은 없었지만 그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아름다운 향기는 부채질한다고 오가는 것이 아니고 길섶의 들국화처럼 소문 없이 소리 없이 풍겨오기 마련이니까.


일배는 고향의 집터를 팔아야 한다고 집안 모임 때마다 이야기했다. 그 이유는 살지 않으면서 폐허상태로 두면 남들이 욕한다는데 있다. 집터는 한순간 잘못 판단하면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선친이 그곳에 제실을 지으라고 유언을 하였는데 말이다. 나라는 지켜야 하고 집터도 지켜야 하는데 그것에 동조하면 을사오적이 돼버릴 수도 있다. 아무리 자신이 똑똑하더라도 그것을 조상의 뜻을 거스러면서 까지 해야 하는 일배의 깊은 뜻은 무엇일까?


일배는 얼굴이 두꺼운 데다가 염치는 없고 눈치는 매우 빨랐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이는 것이라고 여겼기에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은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 꿀맛 같은 이문과 이름에 집착하였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온 머리를 돈과 명성이라는 헛것이 지배하였고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 번씩 꿈에 조상들이 나타나서 꾸짖기도 하였지만 날이 밝으면 본래로 돌아갔다.


“네이놈 어찌 유언을 헌신짝처럼 내버린단 말이냐. 왜 제실을 안 짖고 집터를 팔려고 하느냐.”

“그터에는 조상들의 혼이 깃들어 있는데 다른 집안에서 깔고 앉아있으면 답답하다는 걸 모른단 말이냐.”

“너그 할아버지가 왜 집안의 발복을 위해 먼산에 묻히셨는지 알지를 못한단 말이더냐.”

“너희 할아버지가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다 돌아가셨는데 어찌 그 집터를 지키기는커녕 갖다 바치려고 하느냐.”하고 조상들이 돌아가면서 나무랐다.


일배는 한 번씩 악몽에 시달렸지만 돈과 명예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지를 못했다. 주변에서 집터를 팔면 되느냐고 이야기를 하였지만 귀에 가을바람 스쳐가듯이 콧방귀를 뀌면서 간섭하는 것을 기분 나빠하였다. 동생인 월배와 성배가 자신을 키워준 조상의 은덕에 보은 하기 위해 집터를 단장하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일배는 욕망의 바람에 밀려 끊임없이 바깥으로 치달았다.

그는 화려한 것에 눈과 마음이 팔려 내면의 모습을 단장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그는 똑똑했지만 훌륭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동료는 많았지만 동지는 없었다.


월배는 동생인 성배에게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집터를 팔아먹으면 나라를 팔아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을 함축하여 적은 글이었다. 민감한 내용이었고 자존심을 상하게도 할 수 있었다. 그 글은 저장만 하고 말려고 했는데 실수로 그냥 눌러버리고 말았다. 분명히 자존심을 건드리는 민감한 내용이었다.


“을사오적은 미래에 눈감은 자들이다...... ”

“유산은 탕진하더라도 유언은 지켜야 한다......”

곧바로 성배로부터 답신이 왔다.

“형님이 혹시 잘못 보내신 건 아닌가요. 번지수가 다른데요.”

“하하, 숨은 뜻을 모르는구나. 우애라고 눈감아 주면 공범이 된다는 말이다.”

월배의 동생인 성배는 정직한 인물이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선산을 지키고 있으나 그렇다고 등 굽은 소나무는 아니다. 또 고향의 소식도 전해주고 가족의 단합을 위해 중재해 주는 고마운 동생이었다. 어느 해 명절에 만나 술을 한잔하면서 한 이야기 한마디가 떠오른다.


“너는 우리 형제 중에서 스타이다. 너 이름 속에 들어 있지 않나.”라고 하니 성배는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해하니 더욱더 예뻐 보였다. 성배는 그 이름 속에 깊은 뜻이 있고 대인다운 풍모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월배와 일배가 달과 해가 동시에 하늘에 뜰 수 없기에 공존하기 힘들지만 성배는 밤하늘에 나타나서 하늘의 소식을 전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형제들도 성배를 닮았으면 정말 좋은 세월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주는 것을 좋아하고 남의 아픔에 공감하고 제 자랑은 하지 않고 애처가이고 자식들의 길을 존중해 주는 스타가 맞다. 일배에 비하면 백배나 나았고 남에 대한 배려와 공감능력에서는 일배에 비해 만 배나 나았다. 어떻게 만 배나 차이가 나느냐 하면 일배의 공감능력이 제로이기 때문이다.


월배는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그를 홍보해 주는 기사를 내주고 싶었다. 하나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내줄 것이다. 성배는 진실이 아닌 것을 싫어하니까 말이다. 그가 알면 안 되니까 소리 없이 소문 없이 조용히 어느 날 그의 머리맡에 보내줄 것이다. 그 기사의 제목은 ‘수상한 형제들’이 될 것이며 제법 넓은 지면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날 월배는 성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매달 적립해 나가는 유족기금이 어떻게 되느냐고 하였기에 일배형 한테 물어보라고 하였다. 성배는 동네사람들이 집터를 혹시 내놓았는지 왜 이렇게 폐허로 두었느니 하는 말들이 많다고 하였다. 그런 소문들이 부끄러워 모아놓은 기금을 들여서 집터를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었다.


일배는 그 돈을 여러 군데 지출하였고 그 명분은 할아버지 홍보비용으로 거의 다 썼다는 것을 알려왔다. 그 순간 월배는 피가 솟구쳐 올랐고 분노로 온몸이 떨렸다. 그런 부끄러운 사실을 친구들한테도 말할 수가 없으니 술을 폭음하고 폭언하고 폭력도 행사하는 지경이 되었다. 만약 당사자인 일배를 만나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몇 년 전에 보훈급여금 반을 내놓으라고 겁박하였었고 그 적립한 돈은 오롯이 조상들과 형제들을 위해서 쓰겠다는 약조까지 하지 않았던가. 일배는 조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 돈을 자신을 위해 거의 소진해 버렸던 것이다. 그것도 할아버지의 이름을 빌려서 자기 이름을 드러내는 홍보판공비로 사용해 버린 것이었다.


월배는 곧바로 아버지 산소를 찾아갔고 거기에서 길을 물었다. 십 년 전에 심어 놓은 배롱나무는 꽃을 피워서 웃고 있었지만 산소는 어쩐지 말없이 시무룩하였다. 옛 시절로 끌려 들어갔고 귓전을 맴도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희 큰할아버지가 왜 선산이 아니고 멀리 떨어진 곳에 묻혔겠나. 조상은 늘 보고 있다는 걸 알거라.”

그의 큰할아버지는 집안의 발복을 위하여 스스로 명당을 찾아서 그곳에 묻혔고, 또 그의 고조부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조상의 은덕을 잊을 수가 없었기에 묘소마다 상석을 설치하였던 것이다. 효자 집안에 효자가 나오는 게 맞지만 이미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다.


월배는 표출하지 못한 분노가 우울증으로 변해버렸다고 짐작하였다. 그것은 자신이 만든 병이니까 어디다가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남한테 이야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사라지지 않고 끝없이 그를 붙잡아 두고 있었다.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날자 이후로 그 증상은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잠깐 잠복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재발한 것이다. 술이 그런 증상을 더 부채질하였기에 자신이 사는 길은 술을 끊고 마음을 비우는 일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 준다고 건강검진에서 만성위궤양으로 금주하라는 진단을 받았다. 위기에 처한 위를 술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마음이 만든 것인지 둘 다 해당될 것이다.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술을 끊기로 하였으나 마음의 폭풍우가 가만히 놔둘지 알 수는 없다.


월배는 자기가 자꾸 비타협적이고 과격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염려했다. 그런데 도무지 견딜 수 없는 분노와 배신감은 그를 얌전하게 놔두지 않았다. 서서히 망가져 가는 인성이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참으려니 괴로움만 더할 뿐 정돈이 되지 않았다. 절에 가서 절도하고 산에 가서 고함을 질러 보기도 선배에게 하소연하기도 하였지만 일시적이고 깊이 잠복되어 있는 감정은 수시로 들락거렸다.


월배는 마음도 울적하여 자주 가는 계곡을 찾아갔다. 그곳에 있는 숲은 마음을 고요하게 해 주고 일시적으로 세속을 잊게 해 주었다. 그전날 비가 많이 내려 계곡물은 급하게 흐르고 있었고 주변은 긴장하고 있었다. 물가에 있는 작은 나무들은 물길에 고개를 숙이며 순응하였고 바위들은 뻣뻣하게 버티면서 두들겨 맞고 있었다. 물은 순하기도 하지만 아주 엄하기도 하였다. 급한 경사면에서는 폭포수가 되고 평편한 암반 위에는 천사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그때 왜가리 한 마리가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채어 날아가고 있었다. 그 욕망의 소용돌이는 많은 물고기들을 심판하여 데리고 갔다.

어느 해 겨울 집안 조카의 결혼식에 형제들이 조우하였다. 축의금 접수대 가까이에 일배와 성배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월배는 그쪽으로 가지 않고 인사도 나누지도 않고 외면하고 있었다. 성배가 월배에게 다가오면서 왜 형님한테 인사를 안 하느냐고 따졌다. 월배는 웃으면서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습니다’하고 말했다. 혹시 김월배씨가 아닌가요 하기에 ‘동명이인’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미 마음에서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 이름이고 인사 나누기는 형식에 불과하고 말을 주고받지 않더라도 서운해할 이유도 없었다. 위대한 이름은 스스로 빛나고 그렇지 못한 이름은 누가 빛을 비추어 주어야만 빛나는 것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이 있었는데 월배는 가족들 자리와 멀리 떨어져 앉았다. 그는 일배를 보기가 두려웠고 맞닥뜨려지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를 정도로 감정이 부풀어 있었다. 월배가 끝까지 가족석으로 가지 않으니 일배가 직접 그에게로 찾아왔다.


“너는 어찌 예의가 없나. 사람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

“누구신지요. 당신을 모릅니다. 기억에서 지워졌는지 알 수가 없네요.”

“너가 나하고 농담하고 있나. 듣자 하니 내 험담을 많이 하고 다닌다면서.”

“자꾸 그렇게 귀찮게 굴면 불상사가 생기니 자리로 돌아가세요.”하고 둘이서 실랑이를 하자 주변은 시끄러웠고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일배는 그 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 축사도 하고 자기 홍보를 하려고 했는데 틀어져서 기분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일배는 생각보다 겁이 많았고 월배의 태도를 보고 낭패를 당할 것 같아 제자리로 도망가버렸다. 월배는 도망가는 일배의 뒤통수를 향해 한마디를 내뱉었다.


“김일배 선생, 이제 어지간히 하고 쉬세요. 세상은 말 안 해도 다 아는 걸 무슨 홍보를 하려고 합니까.”하니까 일배는 아예 옷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월배는 마음이 아팠지만 그 한마디를 해버리니까 마음이 후련하였다. 오랫동안 가슴속에 응어리진 감정의 덩어리가 터져 나와 버린 것이다.


이윽고 할아버지의 기일날이었다. 아내는 나이가 들었는데도 불평 없이 제사상을 차렸고 아들도 휴가를 내어 거들었다. 마지막 잔을 올리고 묵념을 할 때 가슴속에서 맺혀있던 감정이 치올라서 자칫하면 실수를 할뻔하였다. 입에서 이상한 욕설이 나오다가 말았고 정신을 차려 도로 밀어 넣었다.


월배는 상에 올려진 잔을 끌어당겨 음복을 하였는데 목을 넘기는 순간 속이 화끈거려 도로 뱉어 내버렸다. 이미 위는 술을 받아 들일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앞으로 술을 마실수가 없었고 마실 이유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술을 끊을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 술맛도 찾을 수 없었다. 왜 스스로를 괴롭히며 아파해야 하는지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어느 해 기습적인 폭우로 지리산 일대는 산사태가 나고 제방이 넘치고 가축이 떠내려가는 등 엄청난 재해를 당했다. 다음 날 고향에 막냇동생인 성배로부터 월배에게 전화가 왔다.

“형님, 소식 들었습니까. 저수지가 터졌어요.”

“어느 저수지인데. 두 곳 다 터졌나.”

“아니예, 큰 저수지만 터졌습니다. 모든 걸 싹 쓸어 가버렸습니다.”

“왜, 평소에 대비를 안 했을까.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있는데.”하고 월배가 동생인 성배하고 나눈 대화였다.


그야말로 한방에 끝나버렸고 큰 저수지 밑에 있는 논들은 형체를 알 수 없이 자갈과 토사로 뒤덮인 황무지가 되어버렸다. 그 비싼 논들이 이제는 자갈논이 되었고 재산가치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작은 저수지는 비가 오기 전에 수문을 열어 비워두었기 때문에 살았고 큰 저수지는 계속 물을 가두어 두어 죽어버렸다. 큰아들은 망연자실하면서 하늘을 원망하였지만 하늘은 웃고 있었다.


큰아들과 함께 어울리고 친했던 사람들도 알거지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줄을 잘 섰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잘못 선 셈이었다. 어찌 하늘이 쉴 새 없이 경고를 보냈는데도 그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월배는 자신을 더 이상 자책하지 않기로 하였고 독립투쟁을 한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그의 할아버지는 분함을 참지 못하고 토설을 하거나 응징을 하여야 성이 풀리는 기질이라 유전적으로 닮은 것 같았다. 또 그는 독립투사들의 평전을 읽고 내부에 잠자고 있던 의분을 일깨우기도 하였다.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전진이고 마음에도 없는 타협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기에 앞으로의 인생은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기로 하였다. 이제 번거로운 예의도 이치가 맞지 않으면 지키지 않기로 하였고 의례적인 고상한 말이나 칭송도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 진절머리 나게 자신을 홍보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냉소를 보내고 경멸하기로 하였다. 월배는 이제부터는 자신을 사랑하고 쓰다듬어 주기로 하였다.


어느 날 월배는 도서관을 찾았다. 서가에서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어 끄집어내어 아무 생각 없이 책상을 넘기는데 옛날에 한번 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하는 한 문장이었다. 버나드쇼의 묘비에 새겨진 글귀이다.

어느 날 통도사를 참배하러 갔다. 대웅전에서 좌정하고 목탁소리의 울림에 집중하였다. 그 목탁소리는 그날따라 목소리처럼 들려왔다. ‘공수래공수거 딱 딱 딱’이 반복적으로 들려왔고 목탁소리가 끝나자 사바세계의 바람이 다시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하늘에는 여전히 해가 뜨고 어두워지니 달이 뜨고 더 어두워지니 별이 보였다. 해는 강렬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달은 구름 안에 숨기도 하고 별은 은은하게 빛을 보내면서 구름이 있으면 신호를 보낸다. 해와 달과 별은 가까우면서도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오직 마음의 눈으로 보면 눈동자 안에 모여 있는 하나의 점이었고 구름이라는 장애가 한 번씩 그 빛을 가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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