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의 고향 밀양, 약산과의 약속
약산의 진달래
삼랑진 만어사에는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저 멀리 밀양을 큰 포대기로 감싸고 안은 화악산은 진달래꽃이 불 지르고 있었다. 60고개를 넘긴 만우는 그 격랑의 시절로 되돌아가서 추억에 잠긴다. 동지들은 요절하기도 절명하기도 운명하기도 하였고 그는 아직도 살아있었다. 그 길을 동지들과 함께 가지 못하고 산에 숨어 구차하게 명줄을 늘여온 과거가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그 약속만은 지켜서 다가올 만남에 얼굴을 붉히고 싶지가 않았지만 허사였다.
박영석은 자기가 살던 마을인 김해에서 일본순사 앞잡이인 최학봉이를 재기불능의 수준으로 구타하여 마을을 떠난다. 그 이전에도 마을 처녀들을 희롱하던 왜놈 아들을 패버려 김해경찰서에 구금되기도 하였었다. 또 일본지주들과 한패가 되어 소작인들을 착취하는 지주들을 버러지라고 욕하여 명예훼손으로 고발되기도 하였다. 천황을 단군의 후손이라고 하여 불령선인으로 찍혀 요시찰 인물이 되었기에 그곳에서 살아갈 수도 없었던 차다. 그는 부모에게 허락을 받고 고향을 떠난다는 게 불가능하여 스스로 도망가는 명분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말을 잘 안 하다가 감정이 북받쳐 오르면 온몸으로 분노하는 성격이었다. 어릴 적에 일본 순사들이 고향사람들을 짓밟는 모습에 울분이 쌓여 생긴 장애이었다. 그의 눈은 언월도처럼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찢어져서 세상을 감시하고 비판하기에 족하였고, 그의 몸매는 탱탱하게 재어놓은 보리가마니처럼 단단했다. 그는 정신적으로는 불만 속에 살았고 육체적으로는 넘치는 힘을 주체할 수 없어 시비에 휘말렸다. 그를 받아 줄곳은 고향도 아니고 그나마 역마처럼 방랑하며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팔자를 타고났다.
그날 저녁 막바로 구포역에서 만주 봉천행 기차를 타고 무작정 올라갔다. 그다음 날 의열단 본부가 있는 북경에 도착했다.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 조사를 받고 의열단장인 김원봉 앞으로 불려 나가 대담을 한다. 그의 친구와 함께 대구은행에서 행원으로 근무했던 이종암에게 인사를 하고 약산 앞으로 나아갔다. 이종암과는 2년 전 구포역 앞 주점에서 친구와 함께 자리를 하여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다. 그때 이종암은 부산경찰서 폭파 후속탄으로 밀양경찰서 폭파를 준비하던 시기였다.
“박동지는 어찌하여 앞잡이를 두들겨 패고 이곳으로 도피하였단 말인가요. 고향이 그곳이면 내 고향 밀양하고 가깝구만요. 기차 타고 올라올 때 밀양이 어떻던가요. 그곳에도 이미 봄이 왔겠지요. 화악산에 진달래가 만발하고 얼음이 풀린 남천강물은 유유히 흘러가겠지요. 내가 항상 고향을 그리는데 갈 수는 없고 꿈속에서나 만나기도 한답니다.”
“무슨 역할이 좋을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풍모를 보니 담대하고 결단력이 있게 보이는데 매국노를 처단하는 일이 적격이겠소.”하고 김원봉 단장이 그에게 세세하게 임무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지금 조국에는 독립운동가를 고문하여 비밀을 캐내는 아주 악질적인 조선인 순사가 있는데 그가 노덕술과 하판락이요. 이 두 놈은 하루빨리 처단해야 하오. 모든 거사 준비는 경성에 있는 동지들이 도와줄 것이요.”
“박동지, 세세한 거사 계획을 지금부터 말하겠소. 노덕술이는 여색을 무지 밝히니 아편장수로 위장하여 접근하여 뇌물을 주고 밀거래하는 것을 눈감아 달라고 하면 들어줄 거요. 우선 삼청동에 있는 명월관으로 술 접대한다고 유인하여, 동지인 기생 춘심이와 하룻밤을 보내게 연결해 주시오. 박동지도 옆방에 같이 투숙하여 그놈을 안심시키고, 그놈이 술에 취해 꽃에 취해 골아떨어졌을 때 끝장을 내시오.”
“그것은 대단한 뱃심과 유연한 연기력이 필요하니 박동지의 담력과 인상을 보니 잘해나갈 거로 보이오. 처단의 수단은 총은 소리가 나서 어렵고, 예리한 칼이 좋겠지만 박동지가 힘이 좋으니까 두 손으로 목줄을 눌러 단박에 숨통을 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오. 그놈이 흘린 피로 우리 강산을 더럽혀서는 안 되니 말이오.”
“거사를 마치고 춘심이 동지와 그곳을 빨리 벗어나시오. 춘심이 동지가 안전지대로 안내할 것이고, 박동지는 마침 목탁을 잘 치고 염불도 잘한다고 하시니 절에 들어가 참회할 죄는 없지만 그곳에서 광복이 올 때까지 기다려 주시오. 그러면 광복된 경성에서 우리 함께 만나 축배를 듭시다. 박동지 무운을 비오.”하고 서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박영석은 약산으로부터 노덕술을 처단하라는 밀명을 받고 경성으로 들어왔다. 이종암으로부터 받은 자금으로 아편장수로 변신했다. 그 사이에 노덕술의 행적을 추적하고 거사 장소인 명월관도 들러보았고 춘심이 동지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소문대로 노덕술은 여색을 무지 밝혔고 뇌물을 좋아했다. 그를 정면으로 대하지는 않았지만 먼발치에서 비굴하면서도 거만한 거동을 지켜보기도 하였다. 이후에는 돈맛을 보여주어 서로 가까와졌다.
만우는 어느 날 조용히 상좌인 원해를 부른다. 이제 나이도 들고 기력도 떨어져 주지를 그에게 넘겨주고 절살림을 맡겨야 하는 때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밑에서 오랫동안 시봉을 들었고 나름대로 바른 심성에다가 자비심이 깊어 부처님의 바른 길을 잘 가고 있었다. 원해는 밀양출신이었기에 세속의 인연이 가까이 있어 시주객들이 많았다. 한 번씩 속가의 친구들이 찾아오기도 하여 세상 돌아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광복이 된 지도 어언 20년이 흘렀으니 그 옛날의 기억은 아련한 추억의 창고에서 잠자고 있었다.
“이봐라, 원해야. 내가 기력이 떨어지고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앞으로 절사람을 맡아서 하고 주지도 넘겨주겠다. 내가 있는 동안 큰일은 도와줄 테니 큰 걱정은 말거라.”
“스님, 아직도 기력이 있으신데 천천히 내려놓으시지요. 그렇게 마음을 먹으시니 마음이 아픕니다.”
“어허, 나는 살만큼 살았고 애환 또한 많았다만 인생이란 어차피 가을바람에 실려가는 한 잎 낙엽이 아니겠느냐.”하고 서로가 이별을 앞둔 사람처럼 쓸쓸한 대화를 나눈다.
만우는 약산의 고향인 밀양에 터를 잡았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약산의 심중을 헤아린 선택이었다. 첫 만남에 그의 강렬한 눈빛 뒤에 숨겨진 애수를 보았고 부드러운 내면도 보았다. 은연중에 흘리던 약산의 심경을 지금은 온전히 헤아릴 수가 있었다. 그가 고향을 떠나 기차를 타고 밀양을 지날 때 약산이 그에게 "내 고향 밀양은 어떻던가요. 남천강물은 흐르고 화악산에는 진달래가 만발하였겠지요."하던 말속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읽을 수가 있었다.
만우는 노덕술 처단이 실패로 돌아가자 몸을 숨겨야 했다. 곧바로 머리를 깎았고 승복으로 갈아입고 경성을 떠났다. 그는 곧바로 표충사를 찾았고 그곳에서 은신하며 상황을 파악하여 나가기로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표충사는 약산이 잠깐 스쳐간 곳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러니 그곳이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스쳐갔기에 그는 얼마 안 되어 그곳을 떠났다.
그는 삼랑진 만어산 자락에 있는 천년고찰 만어사를 찾았고 그 허물어져가는 절을 중창하겠다는 원을 세웠다. 그곳에서 힘든 울력도 하고 한 번씩 삼랑진이나 밀양까지 나가 탁발을 해오기도 하였다. 그는 약산이 자랐던 해천가를 거닐면서 약산과 석정의 발자취를 찾기도 하였다.
약산이 밀양경찰서 폭탄사건이 터진 뒤 최수봉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탄식하였다는 이야기를 이종암으로부터 들었었다. 그 자리에는 약산과 윤세주와 이종암이 함께한 자리였다.
“석정, 밀양경찰서라면 우리들이 어릴 적에 놀던 남천강가에 있지 않던가. 그 폭탄의 웅장한 울림이 밀양주민들에게 머나먼 이국땅에서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신호가 아닐까 싶네.”
“석정, 최수봉의사가 자랑스러운 밀양의 아들로서 거사를 펼쳐 왜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의열의 투혼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자랑스럽네. 하지만 내 마음은 지금 감당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차서 말을 잇지 못하겠네. 내가 앞장서서 그를 사지로 내몰았으니 어찌 얼굴을 들 수 있겠는가.”
이처럼 약산은 냉정한 이면에 여린 마음이 있었고 거사의 성공 후에 벌어지는 가족의 비극에 대하여 생각해 보곤 하였다. 의사의 가족들은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며 그것을 감당하려면 인간적으로 참아내기 힘들었다. 그 자신의 가족들도 지금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의열단이 성공하면 할수록 그 강도는 심해질 것이다는 것을 알았다. 조국을 위한다고 하지만 부모형제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시련을 안겨주니 감당하기 어려웠다.
박영석이 노덕술을 처단하려 떠나기 전날밤에 약산이 그의 거실로 조용히 들어왔다. 입 안에서는 할 듯 말듯한 소리가 우물거리듯이 조금은 망설이는 듯하였다. 그의 표정은 향수에 젖은 듯 이미 멀리 고향 밀양으로 달려가고 그도 박영석을 따라가고 싶은지 모를 느낌을 자아내었다.
“박영석 동지, 어찌 기분이 오늘이 마지막 만남 같기도 합니다 그려. 그놈이 예사 놈이 아니니까 걱정이.....”
“실패하더라도 잡히지를 말고 절에 꼭꼭 숨어있어시오. 내 고향 밀양에는 절이 많다오.”
“내가 떠나던 날 아버지와 동생들이 마중을 하였는데 눈물이 가려 뒤를 돌아보지를 못했지요. 그 젖먹이 여동생이 보고 싶고요.”
“약산 의백, 성공하던 실패하던 밀양의 절로 들어갈까 합니다. 가족들을 보살펴드릴 겸요.”
“밀양은 아름다운 고장이지요. 내가 밀양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좀 흔들립니다.”하고 약산은 눈을 지그시 감고 무엇을 그리는 듯 뒷짐을 지고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순간에는 그 엄한 눈초리가 여물을 씹는 송아지의 그것처럼 애잔하였다. 그는 양손에 칼과 총을 들었지만 어미를 그리는 한 마리의 송아지가 틀림없었다. 폭탄이 터질 때마다 불효는 쌓여갔고 그 보복의 신음소리가 악몽으로 괴롭혔다. 그는 박영석에게 뒷감당을 부탁하고 자신은 불효를 계속 저지르기로 하였다.
만우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약산이 분명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약산이 그에게 직접 부탁한 것은 아니었지만 목탁도 잘 치고 염불도 잘하니 절에 들어가 숨어있어라고 한말의 의미를 되씹어 보았다. 그 말의 이면에는 약산이 자기 가족을 챙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녹아 있었다고 앞질러 생각하였지만 정답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만우는 그의 뜻이라고 여기며 약산의 고향인 밀양에서 살아가기로 하였다.
그 거사는 박영석에는 너무나 아쉬웠고 그 돌발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불찰도 있었다. 어찌 그날에 옆방에 경찰간부들이 주연을 열고 있었더란 말이던가. 술에 취한 노덕술을 춘심이 방으로 가서 뉘 우려다가 마루에서 그 일행들과 마주친 것이었다. 다음번으로 미루려니 마음이 급했고 앞으로 그런 기회조차 올지도 모르니까 성급했었다. 그 일행들은 만취한 노덕술을 보고 모르는 척 지나치다가 먼 발취에서 한놈이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분명 살인의 냄새를 맡았는지 그놈의 그림자는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고동쳤고 식은 땀이 흘러내리고 앞에 있는 노덕술을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는 순간적으로 결단을 내렸고 모든 것을 하늘에 맡겼다.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고 노덕술은 옆구리에 경상을 입고 살았다. 그 겨울철 두꺼운 옷에다가 옆구리에 복대까지 차고 있었고 간을 노리고 찌른 칼이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 노덕술이 술이 깨서 반항하였고 다시 뒷덜미를 찔렀는데 필사적인 반항으로 칼날이 비켜갔다. 교활한 여우는 의심이 많았고 여기저기에 덫을 깔아놓았었다.
비명소리가 들리자 그는 내달렸지만 먼저 온 경찰일행이 명월관 안에 있었기에 독 안에 든 쥐가 되었다. 그는 춘심이가 이끄는 데로 도망쳤으니 그 장소는 차마 말하기가 힘든 곳이었다. 그 변장한 모습도 말하기도 민망스러운 것이었다. 다음날 그곳을 빠져나와 기차를 탔고 무사히 밀양역에 내렸다. 이미 부산은 갈 수가 없었고 경성은 있을 수 없으니 산이 깊은 밀양이 그가 갈 곳이었다.
거사의 실패소식은 약산의 귀에 들어갔고 그것이 의열단의 소행이라는 단서는 잡히지를 않았다. 어쩌면 어느 한 의로운 의사의 실패로서 기억되었고 더 이상의 파장은 없었다. 약산은 노덕술이라는 자가 살아남은 게 어쩌면 민족의 뜨거운 분심을 불러일으키는 촉매가 된다는 점에서 아쉽지는 않았다. 그 언젠가는 민족의 손에 그 더러운 목숨을 내놓을 때가 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마음을 달랬다.
기다리던 해방이 왔다. 그 해방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반가운 손님은 맞았지만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에게는 실망의 요소도 있었다. OSS대원의 고국진공작전이 먼저 이루어졌으면 승전국의 지위를 얻었을 텐데 광복은 조금 빨리 당도했다. 해방공간은 극심한 좌우대립으로 또 다른 동족 간의 전쟁이었다.
노덕술은 일제하에서도 급승진을 하여 경시의 계급까지 올랐고, 해방 후에는 반민특위의 올가미를 벗어나 반공이라는 이념을 지키는 수호자로서 수도경찰청의 수사과장이 되었다. 그의 상관은 장택상이었고 그의 사촌은 독립운동가인 장건상이었다.
장택상은 의열단에 원한을 갖고 있었다. 경상도 칠곡의 친일부호인 그의 아버지 장승원이 광복회 박상진의사에게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 광복회가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으로 재탄생하였기 때문이었다. 장택상은 노덕술을 시켜 약산을 체포하라는 임무를 부여했고 그는 수갑을 차고 노덕술로부터 말로 할 수 없는 수모를 당하였다. 의열단장이 친일경찰인 노덕술에게 뺨을 얻어맞고 한 번도 운 적이 없는 울음을 울었다는 것이다. 그 소문은 박영석의 귀에 들어왔고 그는 주저 없이 도로 찾은 이름인 서울로 올라왔다. 그는 수도경찰청 앞에서 그를 기다렸고 이미 각오를 하고 있었다. 노덕술에게 그 한마디만 하면 끝나는 것이기에 잡힐 것을 겁내지 않았다.
“오랜만이오, 십오 년 전 명월관에서 본 김해사람 박영석이오.”
“가만있자, 인삼장사 박 씨 양반이란 말이오. 그날 어디서 숨었다가 도망쳤소.”
“지금 말하는데 참 불편한 장소였소. 그대가 약산을 체포했던 그런 곳이오.”
“뭐시라고, 변소에 숨었단 말이오. 샅샅이 뒤졌는데 그럴 리가.”
“내가 여자인 줄 알고 그냥 가더군.”
“어찌 백주대낮에 겁 없이 찾아왔소. 간이 크긴 크구만.”
“나를 체포 한번 해보시지. 일제의 법이 지금에 통하는지 모르지만.....”
“은근히 바꼬는구만. 내가 수사과장이라는 걸 알기나 한가.”
“그 더러운 일제의 개노릇을 하다가 어찌 조국의 경찰이 되었느냐. 참 개 같은 세상이네.”서서히 박영석의 언행이 야수의 그것으로 변해갔다.
“그 말이 심히 불쾌하나 참겠소. 오늘 온 용건이 무어요.”하고 노덕술은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자세를 살짝 낮추었다.
“너 개 같은 놈의 고향이 울산이라는 걸 알고 있다. 너의 집안은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다는 걸 알거라.”하니 노덕술은 박영석의 담담함에 섬뜩해하였다. 자신의 가족을 노리고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상관인 장택상의 아버지가 대한광복회의 손에 죽었기에 그에 대한 보복으로 약산을 체포하여 수모를 주지 않았던가. 조금 전 박영석이 변소에 숨어있었고 그런 장소에서 약산을 체포하였다는 것을 빈정거리는 걸 보니 예감이 불길했다. 어찌 대변을 보고 있는 사람을 뒤처리도 하지 않은 상태로 끌고 갔으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모욕이었으니 말이다.
“잘 듣거라. 장택상의 애비가 어떻게 죽었는지 잘 알고 있겠지. 너의 집안도 알 수 없는 일이니까.”
“나를 잡아가두어도 괜찮다. 내가 없어도 동지들이 네놈 가족들을 처단할 것이니까.....”하고 박영석이 말하니 노덕술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말뜻을 알아차렸다. 눈치로써 염탐하고 냄새로써 가려내던 앞잡이의 본모습은 아직까지 창창하게 살아있었다. 점점 거칠어져 가는 박영석의 표정을 살피면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비겁한 계책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있었다.
박영석은 자신의 법명은 말하지 않았고 승려출신 운암 김성숙을 생각해 보라고만 말했다. 노덕술이 약산과 함께 체포하고자 했던 운암이 아니었던가. 너무 당당하였기에 오히려 주눅이 들었고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심장을 찌르며 교묘하게 옥죄어 갔다. 그 조용하면서 묵직한 목소리는 저승사자의 그것이었다.
“앞으로 약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 날짜로 가족이 어찌 되는지를 두 눈으로 보게 될 것이야.”
“잠깐, 앞으로 벌어지는 일이 어찌 내가 한 일이라도 할 수 있겠소. 이미 약산은 암살의 명부에 들어가 있으니 누가 하게 될지 어떻게 알겠소.”하고 노덕술이 겁에 질려 1급 비밀을 자기도 모르게 발설하고 말았다. 분명 수도청장 장택상이 김구나 약산 같은 독립운동가를 죽이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박영석은 노덕술의 뺨을 갈기지는 못했지만 귀중한 정보를 얻었고 그것을 비밀경로를 통하여 약산에게 전달했다. 역시 개는 냄새를 잘 맡았고 바뀌는 주인을 잘 따랐다. 박영석은 얼굴에 침을 뱉어 본들 뺨을 때려 본들 바뀌지 않을 인물에게 섬찟한 말로써 겁을 주고 돌아섰다.
해방공간에서 약산이 설곳은 없었고 그는 주변의 건의도 있고 북에는 조선의용대에서 같이 싸웠던 김두봉과 최용건이 있었기에 삼팔선을 넘어서 디시 돌아오지를 못했다. 그의 예측은 적중하였고 얼마 안 있어 백범이 암살되었다는 비보를 들었다. 약산은 살기 위해 떠났고 그는 살았어도 사는 게 아닌 삶을 살았다. 그의 북에서의 명성은 화려했지만 의열단장에 비할 수가 있었겠는가.
다시 세월을 흘렀고 남북은 대립하여 서로 다른 이념의 체제를 갖고 6.25 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만들었다. 그 비극은 또 다른 비극을 불렀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분단에 이은 분열의 깊은 골을 만들고 말았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이미 미군정포고령에 의해 좌익으로 분류하여 관리하는 보도연맹이 만들어졌고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명부에 올려졌다. 그 명부는 결국 저승으로 가는 명부였고 살아남는 자는 드물었다.
어김없이 약산의 가족들도 포함되었고 전쟁이 발발하자 그들은 골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다. 약산의 아버지는 전쟁 전에 구금되어 굶어 죽었고, 그의 남동생 네 명과 사촌들도 보도연맹원으로 엮여 죽고 말았다. 그 죄는 약산이 월북하여 북의 요직에 앉은 것이었고 그 이념에 물들었다고 가족들을 죽이고 말았다. 예방적 차원의 제거라는 그 비정한 용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야만의 시대였다. 군경들은 언제 어디서 배웠는지 똑같은 간도특설대의 수법을 썼다.
만우는 약산의 가족들을 챙겨주지 못한 죄책감에 빠졌다. 언감생심, 그 무서운 체제에서 어떻게 무슨 힘으로 그들을 살릴 수가 있었겠는가. 무력감과 자괴감만이 그를 마음의 감옥에 가두었고 다른 방도는 찾을 수가 없었다. 힘이 없었고 그 무서운 이념의 체제를 거부할 수 있는 무기도 없었다.
그는 약산을 북으로 보내지 않았어야 했고 차라리 암살을 당하는 게 나았다고 자책했다. 북으로 간 순간부터 약산은 빨갱이가 되었고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이었고 그것은 잔인한 운명이었다. 표충사 은사스님의 말씀이 지나고 보니 옳았다.
“만우야, 너가 약산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심정은 이해한다만 다 부질없는 짓이다.”
“지금 노덕술이를 죽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어차피 그들의 세상이 다시 왔는데.”
“이것은 피할 수 없는 덫이니라. 일제가 만든 지긋지긋한 음모이니 말이다. 어찌 보면 약산은 이곳에서 죽는 게 영원히 사는 것이니라. 가족도 살고......”
큰 스님은 앞날을 내다보고 있었고 광란의 피바람이 불어 닥칠 것을 알았다. 약산을 북으로 피하게 하지 말고 죽게 내버려야 두라는 말은 비정했지만 옳았다. 김구선생이 암살을 당하였듯이 약산도 그랬을 것이다. 혼자 살기 위해 도망쳐 북으로 간 것은 아니지만 그는 공산주의와 맞지 않았다. 언젠가는 숙청을 피해 갈 수도 없고 남에서는 빨갱이가 되어버렸으니 어느 곳에서도 살아남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암살을 당했더라면 의열단장으로서 추앙을 받고 가족들의 목숨도 건졌을 것이다. 만우는 자책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을 달랬다.
그날은 있어서는 안 되는 날이었다. 만어산 자락에 있는 미전고개에 몇 대의 군용 트럭에서 짐승처럼 몸이 묶인 사람들이 끌려 내렸다. 그들을 명주천으로 눈을 가리고 계곡 끝에 도열시켰고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골로 떨어졌다. 아무도 말릴 수도 없었고 그럴 시간도 없이 순간적이었다. 그 들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고 그냥 죽었고 그들의 시신 위에는 빨갛게 피에 젖은 삐라가 뿌려져 있었다. “빨갛게 물든 자여, 그대 이름은 빨갱이로다.”
그들을 파묻지 않고 계곡에다 버렸다. 그 처참한 시신을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그 시신들은 부둥켜안고 서로를 의지하며 죽었지만 그곳은 묻힐 터가 아니었다. 만우는 유족들을 목탁으로 진정시키고 영혼들을 염불로서 달랬다. 그 염불은 알아들을 수가 없는 울음소리였고 목탁소리는 등잔불 아래서 흐느끼듯 흔들렸다.
그 시신들 중에는 약산의 형제들이 같이 있었다. 만우는 소스라졌고 울음 없는 비애를 삼키며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했다. 그것이 약산이 자신에게 내린 임무이었고 부탁이었던가. “박동지는 목탁도 잘 치고 염불도 잘 하시니......”하는 그 예언 같은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왔다.
그는 약산의 아버지와 형제들의 영가를 만어사에 모셨고 매일 조석으로 목탁 독경과 염불을 하는 것으로 약산과의 약속을 조금이나마 지켜나갔다. 어찌하여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형제들을 황천으로 보냈다는 말이던가. 만우는 그 무서운 이념이라는 괴물에 치를 떨었고 그것을 막아주지 못하는 부처님의 법에 회의감이 밀려왔다. 무엇이 선이며 악인지 어느 길을 가야 사는 길인지를 부처님은 알으켜 주지 않았고 그 결과는 오히려 세상의 바람과 반대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는 법당의 바닥에 머리방아를 찧으며 마음이 진정될까지 소리 없는 울음을 울었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도 바람을 몰고 와서 함께 울어주었다.
다시 만우는 원해를 불렀다. 이제 자신도 늙었고 약산도 북에서 숙청당하여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더 구차하게 살고 싶지도 않았다. 어서 그 어두운 곳으로 찾아가서 약산과 동지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이제 밤잠자리에 들어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명줄은 이미 끝자락이 보이고 있었다.
“원해야, 이제 나도 떠나고 싶구나. 어찌 인생이 이다지도 허무하단 말이고.”
“잘 들어라, 이곳 아랫마을은 김문기 여인이 살던 곳이다. 내가 이미 최수봉의사와 영혼결혼을 시켜 위패를 모시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겠지.”
“다음으로는 약산의 가족들 위패에도 정성 들여 축원염불을 하거라. 그분들은 내가 잊을 수 없고 약속을 못 지켜 마음이 아프구나.”
“이곳 밀양이 너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사명대사의 뜻도 있고 의열단의 숨결이 스민 곳이니 후일에 기념사업을 하도록 하여라.”
“지금은 이 땅이 둘로 갈라졌고 사람들도 둘로 갈라졌으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만약 밀양마저 갈라져 버린다면 후일 큰 재앙이 내릴 것이다.”하고 만우는 원해에게 절실하게 말하고 며칠 뒤 긴 방랑을 멈추고 이승을 떠났다.
밀양은 충절의 고장이었지만 6.25 전쟁을 겪고 난 뒤에 급속히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둘로 갈라져서 싸우다가 힘의 중심이 체제가 가리키는 쪽으로 급속히 이동해 갔다. 김종직의 지조도 사명당의 충절도 약산의 의열도 이미 식어버린 유물이 되고 말았다. 체제에 순응하는 자들이 출세라는 깃발을 향하여 전진하였고 도회의 문물이 공동체의 미덕을 여지없이 말살해 나갔다. 밀양마저 그 정신을 잃는다면 온 나라는 마침내 타락하여 침몰할 것이다. 불자의 몸으로 살생의 무기를 들고 사명대사가 일어선 뜻은 무엇이었던가. 그때도 왜적이 침범해서 나라를 절단 냈고 그 후 왜놈들이 들어와서 민족의 정기를 훼손하지 않았던가. 그로 인해 나라는 두 동강 나고 또 이념으로 갈라지는 이 무상한 세태를 그냥 두고 보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밀양은 송전탑으로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누어져 마을은 갈갈이 찢어졌다. 한전의 앞잡이들이 눈이 어두운 할배. 할매들을 나라를 위하여 찬성해야 한다고 꼬드기고 마을발전기금에 눈이 먼 이장들도 분열을 부추겼다. 힘없는 여인들이 경찰과 용역들과 대치하다 들려나가서 불순분자로 낙인찍혀 내동댕이 쳐졌다. 그들이 하는 수법이 어찌 그렇게 일제의 수법을 닮았던지 꼭 그 시대를 사는 것 같았다. 송전탑이 안 지나가는 마을은 강 건너 불구경하며 희생도 없이 보상에 숟가락을 올리는 파렴치를 저질렀다. 밀양은 정의보다는 이익 앞에 침묵했다. 약산이 그토록 저주했던 밀정들이 밀양에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한 명의 할배는 분함을 참지 못해 자신을 불 질러 죽었고, 다른 한 할배는 억울함에 속이 뒤집혀 농약을 마시고 죽었다. 신문도 조용했고 방송도 없었고 밀양은 벙어리가 되었다. 공권력은 한전의 편이었으며 애국심을 내세우며 희생을 강요했다. 무서운 헬기의 굉음은 농민들을 압도했고 개미처럼 삶을 지키기 위해 기어오르는 할매들은 비탈에서 무너져 내렸다. 처절한 싸움은 냉엄한 법률이라는 이름 앞에 주저앉고 하소연할 수 없는 마음에 눈물마저 메말랐다. 6,25 전쟁 이후로 밀양에서 벌어진 최대의 동족상쟁이었고 또 다른 분단의 표식이 그어졌다.
원해는 만우 큰스님의 뜻에 따라 약산을 기념하는 사업을 만들어 나가기로 하였다. 그의 속가의 친구들과 선배들은 약산의 정신에 대해 감동하였고 비운의 가족사에 안타까워했다. 원해는 약산의 생가를 알고 있으며 해천가에서 놀던 그의 친구들을 기리고 싶었다. 그는 그곳을 기념하여야 한다고 여겼고 친구와 선배들을 동원하여 여론을 모았다. 그것은 만우 큰스님과의 약속이었고 나아가 약산과의 약속이기도 한 것이었다.
원해는 문교부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했고, 약산의 발자취를 남기는 문제를 의논하였다. 그것은 약산의 이름을 밀양에 새기는 일이었고 쉽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백군, 내가 부탁을 하는데 한번 들어나 보게. 약산을 기리는 도로를 한번 정해서 불러주면 어떨까.”
“허허, 도로이름은 부르는 것이야 큰 문제가 되겠나마는 정식으로 등록하는 게 어려운게지.”
"백군도 참 꼬장하네 그려. 누가 도로 이름을 공부에 올려달라고 했나. 그냥 한번 불러드리자는 이야기인데.”
“좋아 그러면 내가 밀양시청에 이야기 한번 해볼께. 김원봉로라고 하지 말고 약산로라고 하면 되겠지 뭐.”
“맞아. 이 기회에 백민로도 만들고 석정로도 만들어 보도록 하세. 그 도로 이름은 밀양사람들을 뭉치게 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겠나.”하고 원해는 친구의 도움으로 밀양시청으로부터 이름을 호명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다시 원해는 친구들의 힘을 동원하여 해천가에 있는 석정 윤세주의 집터에 의열기념관을 짓는 일을 성사시켰다. 큰스님이 만어사를 중창불사를 하여 일으켰듯이 의열기념관도 지역유지와 불자들의 보시로 조그맣게나마 만들어 기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는 좋은 소문과 나쁜 소문이 동시에 들려왔다.
“어느 빨갱이 같은 중놈이 공산주의자 김원봉이를 기리고 있데. 이름은 빼고 교묘히 약산이라고 부르면서 말이제.”
“어허, 이 사람아 그게 왜 빨갱이 짓인가. 약산이나 석정이나 백민 모두 밀양이 낳은 독립투사가 아닌가.”
“그 중은 훌륭한 스님이라고 보이네. 듣기로는 그의 큰 스님이 약산과의 약속을 지키라는 유지를 남겼다고 하드만.”
“그래도 어찌 김원봉이를 드러내놓고 기린단 말이고. 엄연한 공산주의자인데.”하고 어느 사람들 간에 오간 이야기가 있었다. 또다시 해방공간에서 오가던 이야기가 망령처럼, 일제가 뿌린 분열의 불씨가 되어 발화하기 시작했다.
밀양에 초여름인데도 큰 산불이 났다. 그 산불은 닷새간을 쉬지 않고 무슨 귀신불처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온 산을 다 태웠다. 비가 와야 했고 비가 아니라면 눈물도 필요했다. 온민족이 함께 흘리는 폭우 같은 눈물이 필요했다. 그 불은 끄려고 해고 꺼지지를 않았고 밀양을 저주했다. 그야말로 분노의 산불이었고 끌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여도 꺼지지를 않았다. 오직 하늘에 큰비가 내리기를 바랄 뿐이었고 하늘은 쉽게 도와주지 않았다. 그 와중에 밀양시청으로 한통의 전화가 날아왔다.
“당장 사명대사비에 제사를 올리시오. 의열기념관에도 그렇게 하시오.”
“이번 산불은 누가 질렀는지 모르지만 분노에 차서 고의성이 있다고 보이오.”
“송전탑 때문에 죽은 할배들에게도 제사를 지내시오.” 그 전화의 발신지는 표충사 근방이었고 그 목소리는 단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약산의 혼불이 불씨가 되어 분노의 산불로 나타나 타락한 고향을 꾸짖고 있었다.
밀양은 죽었다. 약산이 죽는 순간 밀양도 같이 죽었다. 처절하게 일제와 싸웠던 밀양의 피들은 지금 반항하지 못하고, 앞잡이들이 설치며 농민들을 속이고 빼앗는 그 체제에 두려움을 느껴 혼자 살려고 하였다. 연약한 노인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공동체는 무너졌고 일제가 심어 놓은 분열의 씨앗은 이미 깊게 뿌리내려 버렸다. 약산이 그렇게 닮고 싶었던 화악산은 괴물 같은 송전탑이 송곳처럼 아프게 박히고 진달래꽃밭에 거대한 송전선이 빨랫줄처럼 걸쳐져 있다. 철저하게 화악산은 망가졌고 약산이 그리던 그 꽃밭도 다 타버렸다. 약산과의 약속은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의 영역이었다.
화악산에서 내려온 냇물은 약산의 생가가 있는 해천가를 내려오며 의열단의 혼을 담아 영남루 아래에서 남천강과 만난다. 다시 흘러 용두목 아래에서 밀양강과 합류하여 유유히 흘러 뒷기미나루에서 최수봉의사와 김문기 여인의 애절한 아리랑을 실어서 낙동강과 한 몸이 되어 남해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원해는 열반하신 큰스님의 뜻에 따라 할 일은 하였지만 그것이 약산과의 약속을 다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가 없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본다.
만어산에서 저 멀리 북쪽의 화악산을 멀리서 바라보니 진달래는 여전히 산에 불을 지르고 약산이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고 손짓하는 듯하다. 언젠가는 그 이름 당당하게 울려 퍼지고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하는 그 목소리가 우리 곁에 스스럼없이 마주하는 그날이 되어야만 약산과의 약속이 이루어 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