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WATNEUNGA Nov 15. 2022

국화 옆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고 귀하다 #그리움에 사무치다

올해 나온 쌀을 가지러

어릴 때 살던 시골에 갔습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안 계시지만

물려주신 논에서 나는 쌀은

매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쌀을 싣고 그냥 올라오기 서운하여

어릴 때 살았던 동네와 학교와 길들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어릴 땐 그리도 먼 길이었는데

차로 가니 금방이고

어릴 땐 그리도 크게 보이던 건물도

지금 보니 자그마한 모습이었습니다.


부모님과 처음 고향을 떠나 이사했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마을 공동묘지로 바뀌어 있었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부모님이 사시던

두 번째 시골집은

주말에 오빠네가 오가서

예전 살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텅 빈 시골집에 들어서니

어릴 때 학교에서 돌아와

일하러 나가신 부모님을 기다리다

혼자 끓여먹던 라면이 생각났습니다.


다행히 오빠네가 라면을 사다 놓아

냄비에 물을 올리고

라면 한 봉지를 끓였습니다.


라면에 부재료를 넣지 않은

순수 라면 한 그릇!

반찬도 없이 탁자에 놓으니

다시 중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곧 저 문으로 엄마 아빠가

들어오셔서

흙이 잔뜩 묻은 모자와 장화를 벗으시며

이렇게 물으실 것만 같습니다.


“막내야, 밥 챙겨 먹었냐?”


“응, 라면 먹었어.”


쌀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

지금 올라가지 않으면 엄청난 교통체증에 갇힐 거라는 걸 알지만

떠나기 싫은 아쉬움에

시골집 근처

마당이 예쁜 카페에 들렀습니다.

카페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귀여운 주인장이 총총 달려 나와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그런데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뛰어와

엄마가 생전에 좋아하셨던

국화 옆에 앉은

녀석을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녀석은 다리 하나가 불편했습니다.

불편한 다리로 반갑게

저를 향해 뛰어오는

그 녀석을 보니

한쪽 손과 한쪽 발에 장애가 있으셨던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평생 사 남매를

불평 한마디 하지 않으시고

잘 키워내신 엄마가 떠올라

갑자기 눈물이 났나 봅니다.


친정에 오랜만에 온 딸,

반갑게 맞아주는 엄마 같은 녀석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 아빠,

내년 추수 때까지 잘 먹을게요!

감사해요!

보고 싶어요!

반가웠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