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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WATNEUNGA Nov 27. 2021

에어컨 바람보다 더 시원해요

[학교이야기 12] #야외수업 #1학년 #토요수업 #자연 교실


"내일은 호수공원에 갑니다."


장샘 반 아이들은 토요일이 오는 게 좋았다. 학교 가는 토요일마다 선생님은 호수 공원으로 반 아이들 모두 데리고 나갔다.

요즘은 주 5일제 근무와 수업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주 4일제를 도입한 나라와 직장도 늘어나서 주말에 2~3일 쉬는 건 보통의 일상이 되었지만 주 6일제 수업에서 주 5일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매월 2주, 4주만 토요 수업을 하던 때가 있었다.

1학년에다 40명 가까운 아이들을 데리고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30분 이상 걸어서 야외로 나간다는 것은 선생님들에게는 큰 모험이다. 학부모나 다른 선생님들 도움 없이 야외에 나가기 위해서는 평소에 안전생활과 질서 지키기가 습관화되어 있어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또한 선생님의 의지만 있다고 아이들을 정규수업시간에 야외로 데리고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교장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학생 안전과 수업계획도 철저히 세워야 한다. 출장도 내고 구급상자도 챙기고, 도로 하나 건너 호수 공원이라도 예외는 없다. 이 모든 번거로움을 뒤로하고라도 안전사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생님은 학년초에 계획된 현장체험학습 이외에는 안전한 교실에서 수업한다.

하지만 장샘은 생각이 달랐다. 아무리 번거롭더라도 아이들을 사계절의 변화가 없는 교실 안에 가둬놓고 1년을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날마다 아이들을 성장하게 하는 건 자연의 힘이고, 철저히 교실과 운동장에서 안전교육을 반복해서 하면 1학년 아이들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햇살과 나무와 꽃과 물, 그리고 곤충들도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뽐내고 있는 자연이야말로 최고의 교실이라 여겼기 때문에 반 아이들과 토요 모험을 시작했다!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로 서주세요."


아이들 작은 가방엔 과자나 탄산음료는 없었다. 선생님이 몸에 좋은 과일이나 계란, 고구마 같은 건강간식과 물, 그리고 국어책만 가져오라고 전날 알림장에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교문을 나서면 아파트 옆으로 지나가는 인도를 조금 걷다가 1차선 도로를 건너야 했다. 호수 공원에 가는 길에 그 도로는 유일하게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였다. 반드시 건너야 하는 도로라서 반 아이들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여러분, 이 횡단보도를 다함께 빨리 질서 있게 건너면 호수 공원에 안전하게 갈 수 있어요. 한 눈 팔지 말고 선생님을 잘 보다가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 다같이 건넙시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신호등이 없는 도로지만 선생님은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고 차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도로 가운데에서 호루라기를 불었다.


"삑~삐이익"


1학년 아이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마치 군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듯 줄이 흐트러지지 않게 재빠르게 길을 건넜다. 모두 길을 건널 때까지 선생님이 특별히 당부한 맨 앞에 있던 아이는 길 건너편에서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1학년 4반 친구들, 여러분이 해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질서를 지켜서 잘 건넜습니다. 돌아올 때도 잘 건널 거라고 믿습니다."


이제부터는 안전한 밭 길과 숲 길만 남았다. 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갈 때는 가지, 호박, 고추, 오이도 보면서 한 줄로 천천히 걸어갔다. 밭 길을 지나자 나무들 사이로 숲 길이 나왔다. 선생님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걷다 보니 호수가 보였다. 드디어 호수 공원에 도착했다.

"첫 번째 시간은 즐거운 생활입니다. 여기 있는 운동 기구를 돌아가면서 타보세요. 친구가 먼저 타고 있으면 다치지 않게 조금 떨어져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탑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벤치에 가방을 내려놓고 운동기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운동기구가 있는 곳이다. 부모님과 호수 공원에 자주 오는 아이들은 곧장 제일 재미있어 보이는 운동기구를 재빨리 찾아가 능숙하게 탔다.

"두 번째 시간은 슬기로운 생활입니다. 벤치 주변의 풀과 나무, 곤충들을 관찰해 보세요. 선생님이 나눠준 돋보기로 자세히 보고 본 것을 말해 봅시다."


손에는 돋보기를 들고 여기저기 다니기 바빴다. 나뭇잎 모양, 개미가 먹이를 물고 가는 모습, 꽃과 풀, 떨어진 나무 열매 등 관찰할 것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은 친구들이 발견한 것들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신기하게 들여다보았다.

"세 번째 시간은 국어시간입니다. 가져온 국어책 36쪽을 펴세요. '하늘과 바람' 시를 함께 큰 목소리로 다같이 읽고 생각나는 것을 한 명씩 말해 봅시다."


호수 공원에 있는 커다란 원형 벤치들에 둘러앉아 따뜻한 햇살과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국어책에 나온 시를 큰 목소리로 함께 읽었다.


"하늘을 보면서 시를 읽으니까 좋아요."


"에어컨 바람이 제일 시원한 줄 알았는데 지금 부는 바람이 에어컨 바람보다 더 시원해요."


"엄마, 아빠가 늦게 오셔서 저녁에만 와봤는데 여기가 이렇게 예쁜지 이제 알았어요."


아이들은 시를 읽고 생각나는 것들을 너도 나도 손을 들고 발표했다. 교실에서 보다 더 신나 있었다. 국어수업이 끝나고 드디어 챙겨 온 건강 간식을 먹었다. 평소에 집에서 그렇게 엄마가 먹으라고 할 때는 별로 먹고 싶지 않았는데 어쩜 이리도 맛있을까? 웃으면서 함께 나눠먹으니 더 맛있었다. 간식타임이 끝나고 돌아오기 전에 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호수 위에 떠다니는 거위들, 시원스레 뿜어져 나오는 분수도 보았다. 갈 때처럼 올 때도 한 명도 지친 기색 없이 씩씩하게 질서를 지키며 돌아왔다.

장샘과 아이들은 봄에는 봄꽃과 새싹들을 보았고 여름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곤충들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관찰했으며 가을엔 떨어진 낙엽을 줍고 밤송이와 도토리를 발로 까보기도 했다. 꽃이 피고 지고 나뭇잎이 색을 바꾸며 계절마다 달라지는 호수 공원을 좋아했다. 물론 거위들은 갈 때마다 최고 인기스타였다!


아이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오감으로 느끼며

자연과 함께 몸과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에필로그]

다음 해에 장샘은 학교를 옮겼고 대학교로 파견을 가서 1학년 반 아이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스승의 날 오후에 호수 공원에서 2학년이 된 아이들과 부모님들까지 함께 다시 만나 운동기구도 타고 건강 간식도 먹고 거위한테 먹이도 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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