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WATNEUNGA Sep 01. 2022

오전반 소녀, 오후반 소년

#어디선가 본 듯한 #단편 시나리오 줄거리 #인생 벚꽃 #진해

치사율이 높은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보안과 방역조치로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된 사립고등학교 학생들은 기숙사에 머물며 2부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오전에는 여학생 수업,

오후에는 남학생 수업!


같은 교실, 같은 반, 같은 번호, 같은 자리에 앉은 오후반 소년은 오전반 소녀가 미처 챙기지 못한 속마음 노트를 책상 속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오전반 소녀의 속마음 노트를 읽고 소녀의 고민에 자신의 생각을 쓴 쪽지를 끼워놓은 후부터 두 사람의 쪽지 우정은 시작되었다. 내성적이어서 다른 친구가 없었던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좋아하는 음식, 요즘 듣는 음악 같은 사소한 것부터 어느 대학을 가야 할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부척 기대가 높아지신 부모님과의 갈등까지 가감 없이 털어놓으며 차츰 서로에게 둘도 없이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난 스무 살 생일에 벚꽃이 가득 피는 그 다리에 꼭 가보고 싶어."


학교에 갇혀 지내야 하는 소년과 소녀는 학교를 나가게 되면 어디를 가고 싶은지 물었다. 소녀는 어렸을 때부터 텔레비전으로만 봐왔던 지천에 온통 벚꽃이 피어 있는 한 도시의 벚꽃길이라고 쪽지에 썼다.


"하천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게 벚꽃 터널을 만드는 그곳에 가고 싶어. 벚꽃이 가득 피어 꽃잎이 눈처럼 흩날린다는 그 다리 위를 천천히 걸어 보고 싶어."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 등 두 사람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쌓일수록 서로에 대한 마음은 서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 그 끝을 알 수 없이 깊어져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은 서로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직접 만나보고 싶었지만 신종 바이러스의 감염위험으로 오전반과 오후반의 접촉은 엄격히 금지되어 만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에 단 한번, 오전반 점심 급식이 끝나고 오후반 점심 급식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따로 다니는 분리된 통로지만 유리로 되어있어 그 너머로 잠깐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이 바로 서로의 얼굴을 잠시나마 볼 유일한 기회였다. 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징표로 소녀는 소년이 책상에 넣어 선물한 벚꽃잎모양 머리핀을, 소년은 소녀가 선물한 모자를 쓰고 스쳐 지나가면서 서로의 얼굴을 보기로 약속했다.


드디어 약속한 바로 그날, 두 사람은 아침부터 초조하게 그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사이렌이 시끄럽게 학교 전체에 울리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되기 바로 직전이었다. 학교 방송에서는 여학생 기숙사가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여학생 전체가 다른 곳으로 곧바로 이동하게 되었다는 방송이 나오고 신속하게 움직이라고 거듭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 전 세계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했던 신종 바이러스는 치료백신이 개발되어 그 위험도가 점차 줄어들었고, 모든 사람들이 이전처럼 자유롭게 일상생활을 하게 되었다. 소년은 어느덧 대학을 다니며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 남은 소녀에 대한 그리움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었다.


4월, 소녀의 스무 살 생일이 다가온다!

문득 소녀가 스무 살 생일에 꼭 가보고 싶다던 벚꽃 가득한 다리가 생각났다. 소녀의 스무 번째 생일날, 청년이 된 소년은 소녀가 선물했던 모자를 쓰고 소녀가 설명했던 기억을 더듬어 어렵게 어렵게 그곳을 찾아갔다. 마침내 소녀가 말했던 다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벚꽃이 가득 핀 기다란 하천을 따라 한참을 걷던 소년의 눈에 낯익은 머리핀이 보였다. 그것은 벚꽃잎모양 머리핀이었다. 한 아가씨가 소년이 소녀에게 선물한 그 머리핀을 머리에 꽂고 다리 위에서 벚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청년이 된 소년은 말없이 다가가 흩날리는 꽃눈을 손바닥에 받아 스무 살 숙녀가 된 소녀에게 가만히 내밀었다. 고개를 돌린 소녀와 수줍게 웃음 짓는 소년은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없이 미소 지었다.




제 생애 처음으로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진해 벚꽃을 올해 4월에 보고 왔습니다. 그 감동을 이루 말할 수 없어 그곳을 배경으로 찍고 싶은 단편 영화를 생각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뻔한 스토리지만 진해 벚꽃과 함께 보시면 좋지 않을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