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의 다이어리를 준비하는 마음
내년에 쓸 다이어리 외에 호보니치 5년 다이어리를 추가로 구매했다. 26년부터 30년까지 딱 떨어지는 시기이기도 하고, 한 페이지에서 5년 간의 같은 날 기록을 엿볼 수 있는 점도 재밌고 말이다. 5년의 다른 하루하루, 대부분 시답잖고 가끔 특별한 일상이 짧게 적혀갈 것이다.
앞으로의 몇 년은 내게 이제 더는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길을 만난 기분으로 이 길을 뚫고 벼랑으로 떨어지든 뒤돌아 나오든 기를 쓰고 샛길을 파든 해야 할 부담을 느끼는 시기다. 누구에게나 오는 전환의 시기랄까, 누구나 지나지만 누구나 저 혼자 맞는 시련인 듯 주인공 병에 걸려 겁을 잔뜩 먹는 그런 시기 말이다. 그렇다고 뭐 초능력 부리듯 없는 걸 튀어나오게 할 순 없고,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도 않을 테지만, '존재의 시간'을 늘리고 싶다.
일상적 시간, 일을 포함한 생활을 위한 의무의 시간, 지금 약속된 일을 이행하는 사이사이에 나로서 충만한, 의지가 개입된 시간, 불현듯 일상을 관통하는 기쁨의 시간을 많이 만들고 싶다. 그 시간 또는 순간을 다이어리가 뚱뚱해지도록 기록하고 싶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아쉬우면서도 부질없이 좋은 것들을 꿈꾸게 되니까. 습자지 같은 환상을 그래도 한 장쯤 껴놓고 싶어 지니까. 더 연결되고 알아보고 이해하고 싶어 지니까. 존재의 시간을 많이 만들기, 새해 목표가 될 것 같다.
비존재의 시간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시간이다. 기억이 없는 시간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마치 눈앞에 성냥불이 켜진 것처럼 생생한 순간들. 이것이 존재의 순간들이다. 비존재의 흐름을 끊어주는 시간. 울프는 삶의 의미는 엄청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그러나 강렬하고 빛나는, 어쩌면 충격과도 같은 ‘존재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소중히 여기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등대로>에서 화가 릴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원하는 건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이건 의자고 저건 식탁일 뿐이라고 느끼는 동시에 이건 기적이고 저건 희열이라고 느끼는 거야”
- 정혜윤 <책을 덮고 삶을 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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