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18
나 홀로 여행객이라 외로운 순간은, 제각각의 가족, 연인과 앉은 화목한 저녁 테이블에 나만 혼자일 때. 그들만의 언어와 유머, 추억을 나는 공유할 이 없을 때. 공항의 긴 줄 가운데 서서 지루한 시간을 견딜 때. 당황스럽고 무서운 순간에 내 감정을 덜어줄 이 없을 때. 눈에 다 담기도 벅찬 풍경과 감동을 함께 얘기할 수 없는 무수한 순간들에.
내성적이고 낯가리는 누구라도 먼 곳을 여행하게 되면 평소보다 쉽게 마음을 여는 법이다. 우연히 이 시기에 이 장소에 머물고 있다,를 제외하면 모든 게 다를 여행자들을 만나 내가 상상해 본 적 없던 삶을 엿보는 일은 특별하지만 때로는 정말 익숙한 사람들이 옆에 있었으면 싶은 때가 있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거나 침울해져도 아무렇지 않게 넘겨지고 침묵마저 대화가 되는 관계가 여행 중간중간 그리워진다.
반면, 그 제각각의 여행자들을 통해 내가 전혀 이상하지 않고 외롭지 않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삶의 방식과 태도가 존재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좋아하는 가수에 대해 두세 시간을 얘기할 수 있는 열정은 나이와 무관하고 어떤 그림, 조각 하나를 보기 위해 기꺼이 몇 시간을 날아가기도 한다. 내가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취미와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누구나 막연히 생각하는 일을 당장 저지르고 보는 사람도 꽤 많다. 누군가는 긴 세월만큼 경험이 쌓였어도 대책 없이 떠나고, 무모할 수 있는 나이지만 현실의 틀 안에서만큼만 움직이기도 한다.
지금, 여기가 아니었으면 영영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여행인 거 같다. 나와는 전혀 삶의 궤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 트리니다드 앙꼰 해변에서 일몰을 보고, 멕시코만 어디쯤에서 수영을 한다. 어색하게 존댓말을 쓰지만 신나게 맥주잔을 부딪치고 친구들에게도 하지 않을 내밀한 얘기들도 꺼내 놓는다. 빼꼼히 타인의 삶을 엿보고 다름에 자극받으면서,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비슷한 여행자의 감정에 공감하고 위로받는다. 어쩌면 하루, 단 며칠의 인연이지만 여행의 기억이 그때의 날씨, 풍경, 감정과 함께 꺼내 줄 사람들.
여행의 이유는 이 낯선 얼굴과 기억의 뜰채가 건져 올린 몇 마디 대화, 함께 공유했다고 여겨지는 상황과 감정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