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불안
공황은 갑자기 왔다. 잘못 배달된 택배처럼. 어느날 불쑥 등장해서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물론 아주 불편하고 두려운 감각으로서.
광역버스가 강변북로에 진입해 그래봐야 이삼십 분을 못 내린다는 생각만으로, 차로 꽉 막힌 도로를 의식하게 되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검은 머리가 바글바글 뭉쳐있는 풍경을 보거나 지하철 안 구석에 몰려 옴짝달싹 하기 힘들 때마다 여지없이 가슴이 뛰었다. 굳이 손을 얹지 않아도 그 팔딱거림이 신랄하게 느껴졌다.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거나 호감 있는 누군가의 앞에서 느끼는 움직임과 다른, 선창이나 도마 위에서 튀어 오르는 물고기의 절박한 무엇이었다. 그보다 절박할 순 없겠지만.
그럴 때는 느린 음악을 더 신나는 음악으로 바꾸고 크로스로 멘 가방을 벗겨내고 갑갑하게 몸을 조이는 모든 버클을 풀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망망한 어느 장소든 떠올렸다.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탁 트인 벌판이나 바다를 앞둔 모래사장 위에 홀로 서 있다고 나를 속이려 애썼다. 그 환상에 집중하려 애쓰며 천천히 심호흡하다 보면 지하철이 긴 터널을 통과하고 멈췄던 도로가 슬슬 풀리고 식은땀이 말라 다시 서늘해지곤 했다.
이른 아침의 이슬처럼, 깊은 밤 커튼 밑으로 조용히 차가운 손을 내미는 바람처럼 우울은 일상적이지만 예측가능하고 금세 증발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불안은 느닷없이 폭격을 맞은 도시 그 자체였다. 나의 작고 소중한 터전이 파괴되고 막막한 공포를 심고 그 이전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가능했었는지를, 안전했는지를 상기시킨다.
나는 야간버스를 타고 도시를 넘나들 수 있었고, 고산도 동굴도 두렵지 않았으며, 누구와 어디서도 잠들 수 있었다. 부실한 식사에도 몇 시간을 걷고 말할 수 있었다. 젊음을 방패로 가능했던 이 모든 행위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오직 젊음만을 앞세웠기 때문일까. 그렇게 나를 방치하며 엉망으로 산 것도 아니고, 최근의 스트레스쯤은 누구나 겪는 수준이라 억울하기도 했다. 어쨌건 한 번 폭격을 맞은 도시는 예전으로 쉽사리 돌아갈 수 없다. 아주 오랜 시간의 복구가 필요하다. 나는 살아가야겠기에 무너진 집을 다시 하나 하나 쌓아 올려야 했다.
면역력 저하, 스트레스, 불안장애 같은 말은 얼마나 많은 증상과 일상의 불편을 하나로 수렴시키는지. 어디에 갖다 붙여도 그 이유와 결과가 될 것 같다. 대형마트에서 케첩과 수세미와 모종삽을 한 봉지에 묶어 가져오듯 몇몇 단어를 섞으면 모든 증상이 그럴듯해지는 게 현대사회의 자연스러움인 것도 같다.
적지 않은 이들이 비슷한 폭격을 맞고 그럼에도 멀쩡한 듯 살아간다. 가방에 알약 하나쯤 넣어두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란 사실에 얼마쯤 위안받으며, 그렇지만 도대체 왜 우리의 심장이 어느 날 느닷없이 우리를 옥죄어 오는지 모른 채로. 알고도 바로잡을 생각을 않은채로 말이다.
녹용이 담뿍 담긴 값비싼 한약과 주변인의 걱정, 관심은 내게 힘을 주었다. 감기 정도는 따뜻한 차 한잔으로 넘기던 나는 양약과 한약을 고루 신뢰하는 인간이 되었고, 아직 긴 인생을 살아내려면 무엇이든 운동을 해야 한다는 숙제 같은 강박도 갖게 되었다. 폐쇄된 공간과 상황에 놓이는 일을 귀신보다 무서워하는 어른이 되었다.
이제 나는 다시 오래 버스를 타고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출근하고 빽빽한 밀집도의 일상을 살아가지만, 불시에 습격하여 낭떠러지에서 나를 밀 수도 있는 어떤 가능성을 두려워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