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29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비행기는 내내 밤이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꽤 긴 시간이었고 어두웠고 TAP 항공의 기내식은 맛이 없었지만, 옆자리가 비어 크게 불편하지 않았고, 아직 깜깜한 이른 새벽 유럽 대륙의 끝자락이 노랗고 붉은 실선들로 교차하며 반짝였던 기억이 난다. 어두운 밤바다, 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공을 긴 시간 지나쳐 또 다른 대륙의 첫 지점을 만나는 순간의 생경한 감각이 떠오른다. 이제 다른 세상으로 왔구나, 어제와 다른 누군가와 낯설게 손잡는 느낌이었다.
이른 시각이라 한적한 공항에 내려 잠옷이나 다름없던 옷을 갈아입었다. 구겨진 셔츠를 털어내어 입고 얇은 검정 코트를 걸치고 퍼석한 얼굴을 두드리고 머리를 매만지며 당일치기 유럽 여행을 준비했다. 유럽에 대한 환상은 없었지만 그래도 늘 가고 싶던 나라 중 하나가 포르투갈이었는데, 그건 여행 경험 좀 있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포르투를 그렇게 찬양했기 때문이었다.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러운 시가지 풍경과 도우루강을 물들이는 석양의 색깔, 술술 들어간다는 포트와인의 맛. 호불호 없는 아름다운 여행지의 묘사는 없던 환상도 갖게 만든다. 그러니 이 기회에 리스본과 포르투 여행을 애써 끼워 넣었지만, 이미 떨어진 체력과 체력과 함께 떨어져 버린 의욕과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예매한 항공이 리우에서 리스본인지라 어쩔 수 없이 리스본에 와 버렸지만, 사실 오자마자 기분이 좋았다.
2월 말의 아침은 아직 쌀쌀했지만 멀리서 봄이 오는 기척을 느낄만한 쾌청한 날이었다. 많이 들어봤고 많은 이들이 찾는 도시는 이미 친숙해서, 부담 하나 없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그 유명한 파스테이스 드 벨렘으로 에그타르트부터 먹으러 갔다. 겨울과 봄이 줄다리기하는 공기 속으로 햇살이 부서지고 가볍게 달리기 하는 사람, 시원하게 뻗은 도로 위로 느리게 지나는 트램, 제로니무스 수도원 앞에 한 무리의 한국인 관광객이 보였다.
하나의 여행이 끝나고, 직전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여행지에서 이렇게 여행을 마무리하는 방식도 꽤 신선하다. 뭐든 상대적인 것인지 나름의 긴 여행을 끝낸 나에게 유럽은 비교적 난이도가 쉬워 보였고 마음은 느슨해진다. 집으로 돌아갈 날이기도 하기에 모종의 아쉬움도 더해져 그 하루의 밀도를 최대한 높여버리자 생각해 버린 면도 있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언젠가 여행하고 싶었던 나라에서 그래도 하루가 주어졌으니, 선물처럼 오늘을 즐겨보자는 마음이 들어찼다.
파스텔 드 나타의 본고장답게 커피 한 잔에 에그타르트 두 개는 세상 달콤했고, 알파마 지구의 굽이굽이 언덕을 오르며 구경한 리스본은 생각보다 더 아기자기하게 귀여운 도시였다. 포르타스 두 솔 또는 산타루치아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채도 높은 주황색 지붕들이 파도처럼 넘실대고 가까이 바다와 구시가지가 한눈에 담긴다. 장난감 같은 노란 트램은 여행자들이 충분히 사진을 몇 컷 건질 수 있게 느리게 지난다.
아우구스타 개선문을 지나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전망대에서 한참 머물다 다시 바닥이 물결치는 호시우 광장으로, 곳곳을 걸으며 본 리스본은 파스텔의 도시다. 연한 하늘색과 노란색과 파란 아줄레주 타일이 곳곳에 눈에 들어온다. 이 몽글몽글한 도시를 스치듯 두고 공항으로 돌아갈 시간은 빠르게 왔다. 더 걷고 싶고 머물고 싶은 마음을 남겨 두는 것도 마무리로는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공항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