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카페

by 무재

차로 20분에서 1시간 사이 거리로 갈 수 있는 강변과 이웃 도시들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카페가 생긴다. 유수한 사랑의 장면을 목격했을 오래된 찻집부터 플랜테리어, 화려한 베이커리, 높은 층고와 강물이 한 아름 들어찬 통창의 뷰를 자랑하는 카페들, 여기가 맞아? 싶은 산 중턱에, 공장 단지 구석에, 세련되고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생겨나고 사라져 있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 외진 곳까지 알고 오나 싶은 질문이 너무 뻔하게 느껴지듯 SNS의 힘은 강력하다. 그리고 카페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도 강력하다.

1인당 커피 소비량이나 유명 프랜차이즈의 수를 헤아릴 것도 없이 주말이면 다들 교외로 나가 바람을 쐬고 외식하고 예쁜 카페를 찾는 일이 루틴처럼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리고 내 일상 공간과 전혀 다른 테마의 인테리어를 입은 카페는 그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 무엇을 했다는 충족감을 준다. 그저 주말의 쉼이든 가족과의 시간이든 대화이든 나름의 가치 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원두의 산지를 따질 정도는 못 되고 산미가 있냐 없냐 수준의 취향을 가졌지만, 여행을 가면 1일 2 카페 정도를 실천하고, 종종 하릴없는 날에는 주변의 카페를 찾는다. 포근한 바람이 손에 잡히는 계절이면 잔잔한 물결과 연한 초록이 넘실대는 풍경을 가진 카페에는 사람이 넘친다. 삼대의 가족이 아이의 조잘거리는 입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조용한 커플이 창밖에만 시선을 두고 있기도, 시끌시끌 틈 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람과 공간을 조망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소중한 이들과 대화하기 위해, 취향의 커피나 디저트를 찾기 위해, 계절을 보여주는 풍경을 위해 카페를 찾는다.


불안과 무용함이 방의 밀도를 채우던 백수 시절 엄마는 종종 나를 그런 카페들에 데리고갔다. 밖에서 활기를 얻는 유형인 엄마는 봄과 가을에 달려야 할 드라이브 코스와 새로 생긴 식당, 카페 정보에 빠삭했고 덕분에 우리는 계절마다 낯설어지는 풍경들을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별것 없는 대화를 나눴다. 우리 사이는 자주 삐걱댔지만, 그런 날들엔 평온함을 되찾고 동맹이 되었다. 눈부시게 환한 카페의 활기가 내 방의 눅눅함을 잠깐씩 덜어내줬다.

이제 가까운 반경에는 만날 만한 친구가 없고, 가까운 이들은 모두 반대편이나 지방에 있는데 그런 친구들이 어쩌다 찾아올 때도 아직 찬 기운이 어린 북한강변의 카페에 간다. 친구들이 사는 동네보다 조금 더 오래 얼어 있는 풍경을 마주 보며 커피를 홀짝인다. 그런 강가의 카페들에선 내 장소의 일부를 나누어 주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니까 때로 카페는 커피나 차 이상의, 주말의 시간을 때우는 것 이상의 공간이다. 아무것도 아닌 하루인 것 같아도 지나고 보면 하나하나 단상들을 남겼다. 지루한 시기를 버텨내게 해 준 작은 일탈, 누군가와 함께 감탄했던 맛, 함께 보았던 아름다운 계절의 단편,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사람들과의 기억 같은 것.

꽃샘추위는 매섭지만 이제 겨울이 끝나가고 벚꽃이 흩날릴 계절을 기다린다. 찬란한 분홍빛이 춤추는 날이 오면 다시 멋진 카페를 찾을 것이다. 모든 게 환할 계절에 또 환한 한 점을 내 일상에 보태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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