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꽤 멋진 직업인이라는 감각

# 을 위해 주도권을 주세요

by 무재

일에서 의미는 중요하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일이라도 작은 의미 부여, 그도 아니면 다음 도약을 위한 한시적인 받침대라는 선이라도 그어야 한다. 좀비처럼 거리를 오가고 한두 군데 아픈 게 당연하고, 그게 유머로 소비되는 일이 나는 웃기지 않다. 원래 그런 것이란 없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건 아니다. 자신과 똑 닮거나 못한 처지만을 위안 삼기에 이미 우리 눈은 높아져 있고, 세대는 충돌하고, 위아래 몇 년이어도 가치관의 차이는 바다만큼 넓다.


늘 일에서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 의미란 게 명확히 정의되는 것은 아니지만 학벌, 연봉, 회사의 위치에도, 직종, 동료, 출퇴근 시간 같은 것에 쉽게 좌우되기도 했고 그 모든 것에 무관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자의적인 의미 부여만으로 없던 의미가 생기진 않더라는 것이다. 적어도 길게 지속될 의미를 만들기엔 한계가 있었다.

일에 임하는 한 명 한 명의 태도는 물론 중요하다. 아무리 하찮고 시답잖게 보여도 이 일이 다른 중요한 무언가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기대, 내가 스스로 원해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 애써 들이부어 보는 성취감은 필요하다. 그러나 개인의 작은 다짐만으로 오래 일하는 직업인으로 잡아둘 수는 없다. 각자의 다짐들이 힘을 갖도록 그에게 권한을, 결정권을 주어야 한다. 매일의 청소가 지정된 구획을 벗어나진 못해도 그 순서와 방식을 내가 결정할 수 있다면, 상사보다 내가 더 잘 아는 실무를 내가 거절하거나 뒤바꿀 수 있으면, 결과에 대한 압박이 있더라도 데드라인 전까지의 자유와 시간을 허용한다면, 모두에게 그런 식으로 조금씩 주도권을 준다면 나는 직업인으로서의 나를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개혁이니 혁신이니 거창하게 부풀려 쓸데없이 일을 추가할 필요도 없다. 약간의 자유와 자율을 주는 것. 많이 쥔 쪽이 손을 조금 푸는 것. 그것만으로 사람들을 더 오래 붙잡을 수 있을 텐데 이 사회는 꿈쩍하지 않는다. 늘 그렇듯 헛발질하고 세대를 싸움 붙이고 몰아붙인다. 세상과 제도와 생각 중 어느 것이 더 빠르고 느린지도 헷갈리지만 분명한 건 그 모두가 사이좋게 불일치 중이라는 것이다.


연차가 쌓이고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면 나도 의미를 갖고 싶어 진다. 누군가는 순응과 체념의 단계까지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 말하지만 순응과 체념을 손에 쥔 직장인이 되고 싶은 적도 그런 미래를 예상한 적도 없었다.

늘 일하는 나를 멋있게 느끼고 싶다. 외적인 조건이든 내적인 성취든 그냥 내 마음을 속이는 것이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내가 가장 확실한 직업인으로서의 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핸들을 잡고 앞으로 가고 있다는 감각. 때로 길을 잘못 들어 목표와 다른 IC로 빠지고 차를 어디 박더라도 말이다. 보험처리를 하고 벌점을 매기고 그래도 다시 운전대를 잡게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내가 가치 있길 원하고 너도 일의 의미를 바라고 무의미 속에서 허우적대기엔 이 사회에서 우리 능력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누구나 행복하거나 평안하거나 스스로가 납득할 근로자가 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커버사진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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