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의 우정
우리의 관계가 영원하리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우리의 관계를 퇴색시키고 멀어지게 하리라는 그 어떤 예감도 없던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고작 서너 살 차이의 고만고만한 애들이었는데 그땐 그 차이가 왜 그렇게 성숙해 보였던지, 한두 살 어릴 뿐인 동생들에게 난 또 왜 그렇게 어른같이 굴었는지 모르겠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 애들과 어울렸던 따뜻한 방들의 온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동네에서 유일했던 이층 침대에 누운 느낌이나 또 다른 방의 낮은 매트리스 위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장난감, 바닷가의 거친 돌무더기 틈에서 버려진 깡통 따위로 하던 소꿉놀이, 다 식은 계란국에 말아먹던 밥 같은 것이 문득 떠오른다. 서로를 때로 보호자처럼 여기고 아마도 서로가 서로의 고민이고 즐거움이었을 그 애들이 이제는 제각각의 슬픔과 체념을 지닌 청춘이 되어 통화하는 것조차 서먹해진 사이가 되었다. 커튼을 통과한 뿌연 햇살이 낮은 책상을 비추던 아늑한 방에서 그때는 상상도 안 되던 회사원 흉내를 내던 이는 얼굴조차 지워져 버렸다. 그를 잘 따랐던 마음은 분명한데 우리의 서사와 윤곽은 잘게 부서져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 시절 나에게 하나의 세상이던 사람이 이제는 누군가의 부모가 되었다는 게, 이제는 교집합이 없는 고민을 하고 성격이 다른 대상을 사랑한다는 게, 어쩌다 마주친다 해도 뒤돌아보지 않을 만큼 먼 타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래서 쓸쓸하다. 아무런 의심 없는 관계, 불안과 손익이 없는 서툰 우정이 그립다. 종알거리던 수많은 말을 나는 신뢰했고 신뢰받았다. 감정의 크기를 갖다 대지도 않았고 서로를 공격하는 말은 참으로 무뎠다. 우리는 늘 금방 회복할 수 있었고 쉽게 웃을 수 있었다.
나는 가끔, 아주 가끔은, 그 과거들 속으로 숨어들고 싶어 진다. 춥고 피곤한 밤에 따뜻하게 데워진 이불속으로 녹아들듯이. 다시 그 작은 손이 내 등을 쓰다듬어 주면 좋겠고 먼 세계 같던 또 다른 이가 펼쳐 놓은 물건들을 조심스레 구경하고 싶고, 수줍은 마음을 나에게 고백하던 동생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 이제 우리가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서 서로를 영영 이해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고 해도.
*커버사진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