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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Feb 17.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96)

죽음에 대해 생각함 / 간호에 지친 나

9월 25 (2007년) 


이곳 독일에서 삼십 년 동안 간호원으로 일한 한국 아줌마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아줌마는 시아버지가 처음에 병원에 있을 때 시아버지를 돌보기도 한 간호원인데 시아버지가 너무 와일드해서 집에서 모시는 걸 많이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고 충고한 아줌마였다. 간호 경험도 없는 우리가 그렇게 극성맞고 유별난 환자를 어떻게 보살피려고 그러는지 불가능할 거 같다는 말도 곁들이면서 말이다. 우리 시아버지의 현재 상태에 관해서 얘기하며 시아버지가 식사는 잘 하지만 가래가 많이 생긴다고 하자 식사를 잘하면 오래 사실수 있지만 가래가 생겨 질식하게 되면 의외로 빨리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했다. 환자를 많이 보아온 경험 많은 간호원의 말이라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질식하게 되면 얼마나 힘들까 그런 일은 없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되면 빨리 돌아가실 수도 있겠구나 상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소름이 돋았다. 어쨌든 죽음이란 단어 앞에 우리 모두 의연할 수 없는 거 같다. 병상에 오래 있던 환자이건 아님 누군가 갑자기 죽던, 죽음은 우리를 충격에 빠뜨리는 법이다.

하지만 고생하는 시아버지 어떤 방법으로 편하게 돌아가셔야 할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 아줌마는 남편이 내게 고마워하냐며 나를 업어 줘야겠다고 한다. 고마워 하긴 하지만 내가 워낙 자기 아버지를 정성으로 보살피니까 어떤 때는 자기 아버지가 내 아버지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9월 29일


며칠 전부터 시아버지의 왼쪽 엉덩이 중간이 빨개져서 연고를 발랐는데 어제는 노랑 콩 정도의 상처가 나있는 듯했고 오늘은 약간 피가 뭉쳐있다. 그동안 애써서 잘도 해 왔는데 왠지 간호에 실패한 느낌이 든다. 쓸데없는 생각인 줄 알지만 나 혼자 책임을 지니까 시아버지 몸에 뭔가 이상이 있으면 나의 잘못이라고 스스로 책망하는 것은 환자를 돌보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일까? 거의 칠 년 동안 욕창 하나 제대로 없이 돌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소리치고 싶기도 하다. 매일 책 읽을 시간도 없이 시아버지 방을 드나들어도 끝이 없는 간호가 요즘처럼 힘들게 느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간호를 기쁘게 하려 노력했고 정말 부담을 갖지 않고 그동안 잘해 왔지만 어쩐지 지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단념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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