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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Feb 03.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90)

시아버지는 탱크 운전수

11월 (2004년)


시아버지의 시중을 들어 시아버지가 내 스튜어디스라고 부르던 엘리 할머니는 딸과 사위와 함께 사는데 그 집 정원에서 넘어져 다리를 못쓰고 나서부터는 아주 자리에 누워 버렸다. 학교 운동 장만한 큰 정원을 그 집 사위가 가꾸는데 철마다 다른 꽃들이 피고 나무들도 많아 공원과 같다. 

엘리 할머니는 더욱이 처음부터 대소변을 가리지 못 하지만 중풍에 걸린 사람이나 알츠하이머에 걸린 환자와는 달라 정신이 말짱해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엘리 할머니는 이상하게 빛에 약해 창에 덧문을 반쯤은 언제나 닫아놓고 어둠 침침 한방에서 누워있다. 가끔 불만이 있긴 하지만 깐깐한 딸 눈치를 보느라 비교적 조용한 편이고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산다. 힐머니 남편이 이차대전 때 전쟁에 나갔다가 살아 돌아왔지만 전쟁 얘기를 하면 언제나 얼굴이 어두워지며 옛날 일을 우울하게 회상한다. 이곳 독일 사람들은 나이가 들은 사람들은 모두 전쟁을 피부로 겪었고 폭탄이 떨어질 때 지하에서 가슴을 조마조마해하며 굉음이 그치기를 기다리던 기억들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때 겪었던 일을 평생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때 일들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일게다. 

시아버지도 이차대전 때 탱크를 운전했다는데 

전쟁 중에 키가 작은 사람들을 주로 탱크 운전수로 뽑았다고 한다. 키 작은 사람이 운전석에 앉고 탱크 뚜껑을 덮을 수가 있어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키가 작은 시아버지는 탱크를 운전하며 적(당시 연합군)과 싸우다가도 전투가 잠깐이라도 멈추면 프랑스 군인들과 들판에서 축구를 하며 놀았다고 했다. 보통사람들은 싸우기를 원하지 않고 전쟁 중에도 그렇게 인간적으로 재밌게 지낼 수 있는데 그렇게 수천만 명이 죽어가는 전쟁을 한 것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아는 선하고 부드러운 한 남자는 외갓집에서 컸단다. 알고 보니 독일인 엄마가 소련군한테 강간을 당해 그 남자가 태어나게 되었는데 그 후유증으로 엄마는 그 아들을 낳고 죽어 그 아이를 외갓집에서 키웠단다. 

엘리 할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딸과 사위의 간호를 받고 사는데 딸과 사위가 여행을 떠나면 같은 집에 사는 손녀와 손녀의 남편이 보살핀다. 그래서 딸과 사위는 일 년에 몇 번씩 여행을 떠난다. 우리에게도 그런 가족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가끔 생각해보지만 그런 가족이 없는데 부러워해 봤자 기분만 상할 것 같아 그런 생각을 색종이 접듯이 접어두고 엘리 할머니 딸과 사위를 마음속으로 응원해 주기로 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엘리 할머니를 양로원으로 안 보내고 칠십이 다 되어 자신들도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부모를 모신다고 애쓰고 있으니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매일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일어나 시아버지 방에 들어가 마실 것을 주고 아침먹이고 간호원이 왔다 가면 청소하고 그다음에 점심 먹이고 빨래하고 나면 간식 주고 층계를 수십 번씩 오르락내리락하고 나면 저녁 주고 저녁에 잠을 자도록 돌봐주고 나면 하루가 간다. 일은 단조로운데 하루가 너무 빨리 가 책 볼 시간조차 없다. 양로원에서 일을 하는 한국 간호원들이 아직도 독일에 꽤 많은데 그들이 노인네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도 내 이야기를 들으면 동정의 눈길을 보내며 얼마나 힘드냐고 한다. 자신들은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른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하루 종일 꼼짝없이 매어 있어 정신적으로 자유가 없을 거라면서 말이다. 사람 몸에 있는 아홉 개의 구멍에서 나오는 것은 뭐든지 불유쾌한 것이고 여자보다 남자 환자가 일이 훨씬 더 많단다. 남자 환자는 면도해줘야지 눈썹이나 귀 그리고 코에 생기는 털 깎아 줘야지, 대개 남자 환자는 여자 환자보다 더 무거워 다루기가 힘들단다. 

그러면 경험이 없는 나는 처음부터 힘든 환자를 돌보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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