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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06.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17)

잔인한 현실

매일 아침마다 눈을 뜨면 나 일어날 거야! 나 밖에 나갈 거야! 나 옷 입혀줘! 하면서 침대 창살을 붙잡고 안간힘을 다 하지만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 시아버지는 아직도 병에 졌다고 포기하지 않고 병과 투쟁하려 한다. 하지만 막강한 힘이 있는 적인 병이 이미 시아버지를 압도하고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진노하면서 자포자기하는 것을 반복하며 괴로워하는 시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며 병 앞에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요즘이다.

약을 먹으면 잔인한 현실과 자신의 처지를 잊고 조금 무디게 살게 해 주는 게 시아버지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는 거다. 의사도 이런 사람은 진정제를 어쩔 수 없이 먹게 해야 한다며 양이 안 찬다고 생각하면 늘려서 많이 주라고 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사탕이나 초콜릿을 먹듯이 시아버지는 넉넉한 양의 진정제를 매일 먹는다. 진정제를 먹어도 자신도 힘들어하고 우리도 힘들게 하는데 진정제 없는 삶을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 

저녁에 앤디는 친구 집에 가고 나 혼자 집에 있었다. 남편한텐 오랜만에 나들이다. 시아버지는 심심한지 단 일분도 혼자 안 있으려 하며 나를 끊임없이 불러 나를 화나게 한다. 그러면 유감스럽게도 시아버지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만다. 화가 연민의 정을 압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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