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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06.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19)

콩 하나 방귀 하나

3월 23일


나: "새로 온 간호원 이름이 뭐예요?"
시아버지: "{단기 기억상실증 때문에 생각이 나지 않자 핑계를 댄다. 핑계 대는 데는 선수급이다.} 이 안경이 나한테 안 맞나 봐! 잘 안 보여서 모르겠어" 
나: "그럼 그 안경으로 나는 알아보나요?"
시아버지: "그럼 내가 너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떻게 하라고!"


오후에 78세 된 러시아에서 온 조용하고 착한 할머니 엘리자벳이 왔다. 시아버지가 병들기 전에 그 할머니한테 꽃도 선물하고 그 할머니를 좋아했다. 두 분 다 열 살만 더 젊었다면 결혼했을지도 모른다. 이 할머니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것을 시아버지는 제일 먼저 내게 말했다. 시아버지는 조용하고 착한 여자만 좋아한다.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세상에 드문 착한 사람이었다. 내가 그 얘기를 남편 앤디한테 하자 남편은 자기 아버지를 금방이라도 뺏기는 줄 아는지 펄쩍 뛰었었다. 그 엘리자벳 할머니가 있는데 시아버지가 소리가 나도록 방귀를 뀌었다.

독일에 콩 하나 방귀 하나라는 말이 있다. 콩을 먹으면 가스가 많이 차서 방귀를 자주 뀐다는 얘기다. 나는 오늘 짭짤한 햄을 넣고 말린 파란 콩을 불려서 만든 죽을 드린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민망해진 남편이 나무라듯 한마디 한다. 


앤디: "아빠 예의를 지키세요"
시아버지: " 나더러 어쩌란 말이야! 방귀를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데"


하면서 손으로 허공에 원을 그리며 뭔가 잡는듯한 흉내를 낸다.

부끄러움을 담당하는 뇌의 세포도 망가진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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