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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02.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15)

하룻밤을 자고 나서 결정하라

3월 19일


그동안 고맙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명령조로만 말하던 이 가 갑자기 예의가 발라졌다.

예를 들면,


나: "아침식사는 뭘로 하겠어요?" 하면  
시아버지: "작은 빵이면 좋겠어" 한다.

 

독일 사람들이 아침에 즐겨먹는 바삭바삭한 작은 빵 브뢰첸을 말한다.


나: "이따가 음식을 만들어 드릴게요"
시아버지: "넌 음식을 항상 맛있게 만들어"


점심에 배추와 양파와 호박을 바둑판처럼 네모지게 썰어 기름에 넣고 볶다가 간장과 설탕을 넣어 닭고기로 음식을 만들었는데  소금을 평소보다 약간 덜 넣었다. 독일인들은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보다 짜게 먹는다. 짭짤한 것을 좋아하는 시아버지가 맛이 없다고 잔소리를 한다.


나: "다음에 주의할게요"


하지만 시아버지는 나를 또 부르고 또 부르고 하면서 이마에 내 천자를 그리며 찡그리고 닭고기가 싱거워 맛이 없었다고 해서 세어보니 다섯 번이나 됐다. 그리고 가만히 두면 앞으로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힐 것 같아 나는 참다못해,

 

나: " 이젠 그만 하세요, 그만하면 알았어요."

 

뭐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한번 뭔가 시작하면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 우리를 짜증 나게 한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이런 이를 어른 대접할 수 있을까? 아님 내가 참을성을 더 키우고 더 존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할까?

아! 모르겠다. 내일 생각해보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끝장면에서 비비안 리가, 내일일은 내일 생각하자, 란 명언을 나는 좋아한다. 오늘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붙잡고 머리를 썪이는게 언제나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사물이 달라 보이거나, 크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갑자기 작아 보이거나, 저절로 쉽게 문제가 풀릴 수도 있으니까!

독일 사람들은 결정할 중요한 일이 있으면 하룻밤을 자고 나서 결정하라고 한다. 소뿔도 단숨에 빼야 한다는 성미 급한 한국사람들의 격언과는 다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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