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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Jan 03.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53)

왼손만 둘 / '주치의의 칭찬'아님 '반만 쳐 먹어라'

10월 5일

# 왼손만 둘


오늘은 남편 앤디가 우리 집에 가서 작은 방에 도배를 하고 돌아왔다. 

앤디: "아빠 옛날 생각나요? 아빠가 도배할 때 언제나 식구들이 다 잘 때 혼자 했지요?"
나: "아 그래요? 아버지가 도배를 혼자 했어요? 나는 아버지가 왼손만 둘인 줄 알았어요"

인류의 대부분은 (90퍼센트가 오른손잡이이고 일부 양손잡이를 포함한 나머지 10퍼센트만 왼손잡이란다. 그러니까 열 명 중 아홉 명은 오른손잡이이고 한 명만 왼손잡이이다.) 오른손잡이한테 왼손은 오른손만큼 재주나 순발력이 없고 운동신경이 없기 마련인데 누군가 왼손만 둘이 있다 소리는 솜씨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제대로 쓸 수 있는 오른손이 하나도 없고 왼손만 둘이 있다는 것이니까. 그러면서 농담을 하기 좋아하는 독일 사람들은 왼손을 쭉 내밀면서 동시에 오른손을 뒤집어 보여 왼손과 똑같이 보이게 한다.

그렇게 왼손만 둘이니 무슨 일을 하겠느냐면서 말이다. 



12월 14일

# '주치의의 칭찬'아님 '반만 쳐 먹어라'


여자 주치의 트롬 씨가 왔다. 트롬 씨는 머리를 제대로 빗지를 않는지 언제나 머리가 헝클어져 있고 옷도 제대로 차려입지 않아 모르는 사람은 그 여의사를 농사꾼 아줌마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주에 한 번씩 와서 시아버지를 진찰도 하고 처방도 해주고 간다. 우리들더러 아버지를 아주 잘 간호한다며 칭찬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성의껏 아버지를 돌보지 않았거나 아버지가 양로원에 계셨다면 벌써 돌아가셨을 것이란 말도 했다. 그러면서 병간호하는 게 쉬울 것으로 생각했느냐고 묻는다. 

나: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오를 대단히 했었어요. 그래서 처음 몇 달을 빼곤 각오한 덕분인지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하다고 하는 편이 낫겠네요. 이제는 아주 괜찮아요"

트로머 의사가 가고 나서,  

시아버지: "그 여자가 아양 떠는 것 봤지? 경쟁을 하려고 그러는 거야!"
나: "경쟁요? 누구 하고요?"
시아버지: "누구는 누구? 얀슨 의사 하구지! 그렇지만 우리 주치의 바꾸지 말고 트로머 씨가 계속 오게 하자"

우리는 아버지가 사람들 마음을 읽을 정도의 지능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런 말을 해서 믿기지 않아 귀를 의심했다. 얀슨 의사는 시아버지와 우리의 전 주치의의였는데 항상 콧노래를 부르는 명랑한 의사인데 법에서 금지한 살 빼는 약을 뚱뚱한 환자들한테 팔았고 두 명의 여자가 그로 인해 사망했다고 해서 의사 자격증을 잃었었다. 고용주보다는 고용인 편에 서서 사람들이 병이 나면 집에서 쉴 것을 요구하는 진단을 끊어줘 고용주의 미움을 샀고 워낙 환자들에게 인기가 좋아 다른 의사들의 미움을 독차지해 다시 의사 자격증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여러 해를 기다려서야 다시 의사 자격증을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그 의사한테 갈까 봐 트로머 의사가 우리한테 비위를 맞추려고 한다는 아버지의 발언이다. 내가 봐서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과 후를 생각할 줄 아는 시아버지의 영리함에 우리는 놀랐다. 아버지가 순진하지만 어떤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무 통속도 모르는 바보는 아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이 생각이 깊은 뜻밖의 소리를 하면 입을 열고 놀라 다물지 모르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 얀슨 의사는 얼마 전에 T.V를 통해서 환자들이 살 빼기를 원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기자들이 묻자, 먹던 양의 반만 먹고 운동을 하라고 하겠다고 했다.

반만 먹어라 라는 독일어 막말을 한국말로 직역하면 반만 쳐 먹어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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